경제개혁연대는 30일 논평을 내 최근 수년 간 가열된 시중은행 간 덩치 경쟁이 이번 원화유동성 위기를 낳은 근본원인이라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은행간 덩치키우기 경쟁, 과도한 대출로 이어져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총자산 증가율은 지난 2002년부터 오르기 시작했고 특히 2005년부터 폭이 커졌다. 덩치 키우기 경쟁이 본격화됐다는 의미다.
2005년은 은행 창구에서 보험 판매가 가능한 방카슈랑스가 본격화했고 정부의 동북아 금융 허브 바람이 일면서 각 은행장이 경쟁적으로 '글로벌 경영'을 외치던 해다. 은행 간 인수합병(M&A) 바람이 거세게 불던 때이기도 하다.
시중은행이 덩치를 키운 주요 수단 중 하나는 외화대출 늘리기다.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국내 4대 시중은행의 외화대출 증가율은 지난 2002년에서 2004년 사이만 해도 -2.75%로 과거보다 줄어들었으나 2005년에서 2007년 사이 28.62%로 급증했다. 반면 원화대출 증가율은 같은 기간 17.19%에서 13.72%로 줄어들었다.
2004년 이전만 해도 외화대출을 꺼리던 국내 시중은행이 금융산업 재편에 대비해 덩치키우기를 본격화하면서 외화대출도 마구잡이로 늘린 것이다.
외화대출이 급증하면서 대출자금 원천으로 외화차입도 크게 늘어났다. 외화예수금만으로 대출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빚을 끌어다 대출로 돌린 것이다. 2005년까지만 해도 외화예수금과 외화차입금, 외화사채를 합한 외화부채 증가율은 6.90%에 그쳤으나 2006년에는 갑자기 14.01%로 급격히 높아졌다. 이에 따라 2005년말 55조2000억 원이던 외화부채는 올해 6월말 현재 90조6000억 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는 외화예수금만으로 외화대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은행이 자산규모를 늘리기 위해 무리해서 부채를 떠안고 덩치키우기에만 전념했음을 입증한다.
원화대출 역시 부실하게 증가했다. 시중은행은 예대마진(예금과 대출금리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은행의 고전적 수익원천)을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원화조달시장에서 빚을 내 이를 대출로 돌렸다.
원화대출금 잔액은 지난 2005년 말 405조9000억 원에서 올해 6월말 현재 571조8000억 원으로 165조9000억 원 증가했다. 그런데 이 기간 중 원화예수금 증가분은 56조4000억 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약 109조 원은 자금조달 시장에서 시장금리를 지불하고 끌어와야만 하는 양도성예금증서(CD)와 원화사채다.
이처럼 예금 증가분 이상으로 시중은행이 대출을 늘림에 따라 시중은행의 예대비율(대출금을 예금으로 나눈 비율)은 최근 들어 급격하게 증가했다. 지난 2003년만 해도 대출금을 예수금으로 나눈 비율이 96%에 불과했지만 올해 6월말 현재 이 비율은 127%로 급증했다. 이는 은행이 시중에 대출해 준 돈이 고객이 은행에 예금한 돈보다 1.27배 더 많다는 뜻이다.
지금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만일의 경우 회수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따라서 더 높아진다. 대출 나간 것이 예금보다 많은 상황에서 자칫 회수가 어려운 대출금이 생기면 이를 예금인출자에게 돌려주기가 힘들어질 가능성이 생기는 셈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했다는 점에서 이런 우려가 커진다. 지난 24일 이성남 민주당 의원이 금융위원회에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내년에 거치기간이 만료돼 원금상환을 시작해야 하는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33조5000억 원에 달한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와 같은 점을 지적하며 "은행이 무모한 규모확장을 위해 조달 비용이 높은 자금에 과도하게 의존한 게 최근 원화유동성 위기를 낳은 근본원인이며 개인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급상승을 초래한 근원"이라고 밝혔다.
은행 덩치키우기 경쟁과 부동산 거품은 패키지
이처럼 무모한 시중은행의 덩치 경쟁은 최근 건설업 거품을 키우는 데도 일조했다.
시중은행의 기업여신 중 건설업과 부동산·임대업에 대한 여신잔액은 지난 2005년 45조2000억 원에서 지난해 88조5000억 원으로 거의 두 배가 늘어났다. 이처럼 건설·부동산 관련 대출을 시중은행이 늘림에 따라 미분양주택 증가→건설사 재무구조 악화→은행 부실채권 증가로 이어지는 최근 금융시장 불안의 연쇄고리가 완성된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은행의 방만경영이 큰 문제를 일으켰음에도 단순히 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노력'으로 문제를 덮고 다시 국민 세금을 투입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무모한 덩치 키우기 전략을 추구해 결과적으로 금융위기를 키운 은행 경영진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편 국회는 30일 본회의에서 정부의 지급보증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앞서 정부는 시중은행과 은행 임직원의 보수 삭감 내지 동결, 주주배당 제한 등의 자구노력을 담은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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