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조선업계 시황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 중 하나인 발틱건화물운임지수(BDI, Baltic Dry Index)는 지난 28일 전날에 비해 66포인트 하락한 982까지 떨어졌다. BDI가 1000밑을 기록한 일은 지난 2002년 8월 13일(999) 이후 처음이다. 이는 조선업이 절정의 호황기를 누리던 지난해 5월 1만1000선을 넘을 때와 비교해 최대 90%가량 폭락한 수준이다. 지난해 운송업체사 운임 수수료로 100원을 받았다면 현재는 10원 정도밖에 못 받는다는 말이다.
BDI는 런던의 발틱해운거래소가 지난 1999년부터 발표해 온 건화물시황 운임지수(수송서비스 가격지수)다. 곡물, 석탄 등 건화물을 주로 운송하는 배가 벌크선(컨테이너로 운반할 필요가 없는 원재료를 포장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 실어 나르는 배)인 까닭에 BDI는 벌크선 시황을 가늠하는 지표로 쓰인다. 따라서 BDI가 이 정도로 폭락했다는 건 곧 벌크선 운임이 떨어져 해운사 이익률이 떨어졌음을 뜻한다. 이는 벌크선을 제조하는 조선업에도 치명타다.
BDI가 떨어진 이유 중 하나는 중국 경기침체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이 동반 경기침체 조짐을 보이면서 원자재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에 운임수수료도 낮아진 것이다. 특히 철광석 수요가 급감한 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벌크선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사가 주로 수주하는 대형선박 경기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 BCI(Baltic Capesize Index)도 전날보다 56포인트 떨어져 1400까지 밀려났기 때문이다. 한국 조선사는 첨단 기술이 필요하고 수익률이 높은 케이프사이즈, LNG선, VLCC(초대형 유조선) 등 대형선박을 주로 수주한다.
해운시장 불황으로 신규선박 수주 자체가 마비되면서 국내에서도 중소형사를 중심으로 부도설이 나도는 등 불안심리가 커지고 있다.
전용범 동부증권 연구위원은 "당장 발주시장 자체가 금융경색 여파로 꽁꽁 얼어붙은 데다 경기여건이 너무 안 좋아 언제 이 상황이 나아질지는 말하기 어렵다. 일단은 금융시장이 안정돼 발주처에서 자금조달이 가능해져야 개선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반도체 경기전망도 암울하다. 반도체 시황조사회사인 타이완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오전 11시 현재 DDR2 512메가 667MHz 제품 현물가격은 전날보다 5.66% 하락해 0.50달러까지 떨어졌다. 낸드(NAND)형 플래시 메모리 8기가 MLC 제품도 1.39% 하락한 1.42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D램과 낸드형 플래시 메모리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주요 수출품목이다.
낸드형 메모리는 내부 구조에 따라 구분되는 플래시 메모리의 한 종류다. 읽기속도가 노어(NOR)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대용량 저장이 가능해 디지털카메라나 MP3플레이어 등에 주로 사용된다. 삼성전자가 인수를 검토했던 샌디스크(Sandisk)가 이 분야 강자다. D램은 주로 컴퓨터의 메인 메모리로 사용되는 반도체다.
반도체 침체는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이선태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지난 7일 낸 보고서에서 "반도체 시황이 더블딥(경기침체가 지속되다 일시적으로 회복한 후 다시 침체에 빠지는 상황)에 빠졌다"고 분석하며 내년 초까지는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3년간의 과잉투자에 따른 공급물량 증가분이 경기 부진을 만나 쉽게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실제 국내 기업체도 타격을 입고 있다. 하이닉스는 채산성이 떨어지는 국내와 미국, 중국 등에 퍼진 라인 4개를 연말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키로 결정했다. 미국 유진공장의 경우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직원 1000명이 전원 해고된다. 생산직의 경우 올해 신입사원 채용 계획을 취소해 사실상 감원에 들어갔다.
자동차 경기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다. 쌍용차는 비정규직 직원 350명을 대상으로 유급휴업을 실시키로 했다. 이 기간 노동자는 평소 월급의 70%만을 지급받는다. 자동차 업계에서 경영상 휴직 조치는 지난 외환위기 때 현대차가 무급휴직 제도를 실시한 이래 처음이다.
현대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현대차는 올해 연말까지 미국 공장 생산량을 1만5000대 감산한다. 기아차와 르노삼성차 등도 감산을 이미 실시했거나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3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에 비해 70%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이 외에도 금융시장 불안에 따라 각국 산업이 모조리 침체에 빠지면서 그에 따른 여파가 확산되는 상황이라 앞으로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전망 자체가 어려운 지경이다. 지난 27일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국내 300대 기업의 79%는 지금이 IMF 때와 비슷하거나 더 어렵다고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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