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지도 모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언론재단이 9월초 중·고교생 4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류 언론, 특히 조·중·동에 대한 불신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 및 사회기관 30개를 선정해 '전혀 신뢰하지 않는 경우 0점, 중립적인 신뢰는 50점, 매우 신뢰하는 경우 100점'으로 해서 점수를 매기게 한 결과 MBC(59.2), KBS(55.69), 네티즌(55.05), 포털(54.57), '한겨레'(52.87)가 1위에서 5위를 차지했다. 반면 '중앙일보'는 36.42로 22위, '동아일보'는 34.82로 24위, '조선일보'는 33.81로 25위에 그쳤다.
10대가 대학생이나 성인이 됐을 때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뉴스매체로 46.1%가 인터넷 포털을, 24.8%가 지상파TV를, 11.5%가 인터넷 신문을 꼽은 반면 무료신문은 6.9%, 신문은 4.9%에 불과했다.
현재 10대가 학교에서 가장 많이 읽는 신문은 '한겨레'(35.1%)였고 이들이 성인이 돼 스스로 신문을 구독하게 될 경우 선택할 신문도 '한겨레'(22.5%)가 1위였다.
이 연구결과에 가정 즉 '지금의 10대가 성인이 되면'이란 가정이 덧붙어져 '그럴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온다. 언론지형에 지각변동이 올지 모른다고, 조·중·동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추측이 나온다.
하지만 예단할 수 없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돼 있다.
그 이유 역시 가정에 있다. '지금의 10대가 성인이 되면'이란 가정이 너무 허술하고 유동적인 게 문제다.
지금의 10대가 성인이 되는 건 부동의 진리다. 하지만 지금의 10대가 성인이 돼서도 지금의 의식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건 부동의 진리가 아니다.
적절한 예가 하나 있다.
'한겨레'가 창간된 시점은 1988년 5월. 87년 6월항쟁의 기운이 여전하던 그 시절에 6월항쟁의 거름을 받고 태어났다.
승승장구했다. 판매부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었고, 심지어 당시 대학생 일부는 '한겨레'를 교재 삼아 세미나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멈췄다. 판매부수 증가가 멈췄다. 그리곤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다. 크게 늘지도 않고 크게 줄지도 않는 판매부수를 보이고 있다.
조·중·동은 어떨까?
당시의 20대에게 조·중·동은 규탄대상이었다. 집회장에서 종종 붙태워지는 신문이 조·중·동이었고 취재거부를 당하기 일쑤였던 기자도 조·중·동 소속이었다(세 신문에 대한 태도에 편차가 있긴 했다).
하지만 변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판매부수 면에서 여전히 부동의 1위를 견지하고 있고 조·중·동은 굳건히 신문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왜일까? '한겨레'에 우호적이고 조·중·동에 적대적이던 386세대가 신문시장의 주류인 40대(신문시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연령대를 40대로 설정한다. 이들이 가정이나 직장에서 신문구독 결정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가 됐는데도 왜 언론지형에 지각변동이 오지 않는 걸까?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인 경품 지급이나, 논조보다 정보를 우선해서 살피는 신문 읽기 방법 등의 요인이 선호도와는 일정하게 다른 구독 패턴을 낳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어쩌면 가장 본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요인이 있다. 계층의식이다. 이것이 세대 의식을 대체한다.
세대 의식은 한정적이다. 그 시대 그 세대에게서나 의미를 갖는 의식이다. 연령대로 묶인 세대 의식은 나이가 들어 사회에 진출하고 생활조건·환경을 달리하면서 계층 의식으로 분화한다. 더불어 그 때의 세대 의식은 희미해진다. 일시적이고 유동적인 세대 의식은 어느 순간 희미해지고 그 자리에 강고한 삶의 논리에 포박당한 계층 의식이 들어선다.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서민층은 신문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인구 분포로는 서민층이 절대 다수를 점하지만 신문 시장에 유효한 영향을 미치는 층은 중상층이다. 그리고 기업과 관공서다.
의식은 그리 중요한 요인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실질 구매력이다. 그리고 실질 구매력은 계층에 따라 달리하는 지갑의 두께와 비례한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살피자.
시대가 바뀔수록 매체 선호도가 바뀌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매체가 어느 세대에겐 라디오일 것이고, 어느 세대에겐 TV일 것이며, 또 다른 어느 세대에겐 신문 또는 인터넷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매체 종류에 따라 흥망성쇠를 달리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아니 그럴 가능성을 높이 보는 게 타당하다.
그렇다고 기계적으로 갈라선 안 된다. 신문사와 인터넷에, 신문사와 지상파 또는 케이블TV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을 설정하고 선호도와 영향력을 기계적으로 재선 안 된다.
현재의 10대가 선호하는 포털에 콘텐츠를 채워주는 곳 가운데 한 곳이 조·중·동이다('다음'은 빼고). 언론사 사이트별 조회수만 놓고 따져도 조·중·동의 조회수와 '한겨레'의 조회수에는 수백만의 격차가 나타나고 있다.
어느 순간 조·중·동이 10대가 상대적으로 선호하는 지상파 또는 케이블TV에 등장할지 모른다. 그러면서 문어발식으로 현재의 10대를 끌어안으려 할지 모른다.
초를 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연구결과를 폄하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유동 상태임을 강조하기 위해 하는 말이다. 인터넷 : 방송 : 신문이라는 구분법으로 선호도와 신뢰도를 재는 게 지금 이 시점에서도 완벽하지 않고 앞으로는 더욱 더 불명료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언론지형의 지각변동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보다 냉철하게 현실을 보라고 고언하기 위해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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