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알려진 것이었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전국에서 계속 악화되고 있다. 이 문제는 이 나라가 대단히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아니, 단순히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은 병에 들어 크게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온 나라가 골프에 열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골프는 조금 웃기는 운동이다. 쇠막대기로 작은 공을 쳐서 작은 구멍 안에 넣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물론 골프를 즐기는 사람의 처지에서 보면 골프는 타고난 감각과 고도의 훈련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운동일 것이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골프도 분명히 여러 난점과 장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골프는 다른 어떤 운동보다도 커다란 생태적, 사회적 비용을 요구한다. 이 문제는 무엇보다 골프장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골프장은 나라를 근원적으로 망치는 시설이기 때문에 극히 신중하고 엄중하게 건설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는 야구나 축구에 열광하듯이 골프에 열광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골프장이 만들어진 것은 100년쯤 전 원산에서의 일이다. 그러나 골프장이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의 일이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골프장 건설을 그야말로 정권 차원에서 적극 촉진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비리와 부패가 발생했다.
이 때부터 바로 골프장의 생태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게 되었다. 그러나 골프장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으며, 2000년대에 들어와서 골프장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노무현 정부는 골프장을 대폭 늘려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황당한 '골프장 공화국' 구상을 발표했다가 엄청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가 와르르 몰락한 데에는 이런 식의 무능이 크게 작용했다.
2007년 10월 당시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이 문화관광부의 자료를 분석해서 발표한 결과를 보면, 전국의 골프장 수는 263곳으로 2004년에 비해 무려 73곳이나 늘어났다. 여기에 시범 운영 중이거나 건설 중인 골프장 수를 더하면 366곳이었으며, 또한 문화관광부의 집계에서 제외된 군부대 골프장 33곳을 더하면 모두 399곳이었다.
현재 전국의 골프장 수는 아마도 400곳을 넘을 것이다. 골프장이 가장 많은 곳은 경기도로서 2008년 4월 현재 106곳이 운영되고 있으며 24곳이 건설되고 있다. 특히 김문수 도지사는 골프장 증설을 너무나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골프를 치지 않기 때문에 '골프 지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맞는 주장이다. 그는 '골프 지사'가 아니라 '골프장 지사'이다. 그래서 더 문제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취임 이후 2년 동안 승인한 골프장 면적이, 전임 도지사 3명이 11년 동안 승인한 면적보다 2.2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소속인 김희철 민주당 의원이 12일 경기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김문수 도지사는 2006년 7월부터 2008년 7월까지 2년 동안 23개 골프장 건설을 승인했으며, 그 넓이가 모두 1802만㎡에 이르렀다. 반면, 손학규 전 지사의 재임 4년 동안 골프장 승인 건수는 9개였고, 면적으로는 518만㎡에 그쳤다. 임창렬 전 지사의 경우 4년 동안 3개 골프장(91만㎡), 이인제 전 지사는 2년2개월 동안 3개(208만㎡) 골프장 건설을 승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 2008년 10월 13일)
골프장은 어떤 문제들을 낳는가? 첫째, 골프장은 엄청난 파괴를 낳는다. 산과 들을 완전히 파괴해서 잔디밭을 만드는 것이 골프장이다. 골프장은 수자원의 원천이자 생명의 서식지인 산과 들을 대대적으로 파괴하고 만들어진 녹색의 사막이다. 다시 경기도를 보자.
골프장 건설로 훼손되는 산림 면적도 김문수 지사 취임 연도 이후 급격히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골프장 때문에 사라진 경기도내 산림 면적은 2003년 8만㎡, 2004년 50만㎡, 2005년 124만㎡였으나, 지방선거가 있던 2006년에는 243만㎡, 지난해에는 376만㎡로 급증했다. 올해는 상반기 동안 114만㎡의 산림이 훼손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 2008년 10월 13일)
둘째, 파괴되는 것은 자연만이 아니다. 골프장은 마을과 유적들을 대대적으로 파괴하고 들어선다. 골프장은 지역 사회와 지역 문화를 크게 훼손하는 것이다. 가야산 해인사처럼 세계적인 도량조차 골프장의 광풍을 피할 수 없었다. 셋째, 골프장은 많은 유독 농약을 사용해서 지하수를 비롯한 생태계를 심각하게 오염시킨다. 2008년 8월에 발표된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의 '경기도 골프장 농약 오염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62%인 70개 골프장의 잔디와 토양에서 농약이 검출되었는데, 이것은 2006년의 8%와 2007년의 40%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이다.
넷째, 골프장은 모든 시민들이 누려야 할 자연을 소수의 상류층이 독점하도록 한다. 골프장은 양극화를 더욱 악화시키는 심각한 불평등 시설인 것이다. 다섯째, 이렇듯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보니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해 숱한 비리와 부패가 공공연히 저질러진다. 이번에 치악산 지역에서 적발된 엉터리 사전환경성평가는 빙산의 일각도 되지 않는다.
골프장 광풍으로 나라가 망하게 되는 문제는 일본에서 먼저 나타났다. 사토 마코토의 <리조트열도>(이와나미, 1990)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1987년부터 갑자기 '열광적인 리조트 원년'이 시작되었다. 골프장과 스키장 건설을 핵심을 하는 이 '리조트 붐'은 엄청난 파괴와 투기와 부패로 이어졌다. 그 바탕에는 거품경제가 자리 잡고 있었으며, 또한 '리조트 붐'은 거품경제를 이끄는 견인차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골프장 망국론>, <무서운 골프장>, <골프장 폐잔기> 등 골프장의 문제를 밝히는 책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출간되기도 했다. 지금 한국이 가고 있는 골프장 붐의 길은 일본이 이미 진하게 겪은 파괴의 길이다. 아니, 지금 한국은 일본의 실패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오히려 더 심한 파괴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골프장의 파괴적 문제에 비추어 보면, 정치인들이 앞서서 골프를 즐기는 것이야말로 커다란 망국적 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골프장이 나라를 크게 망치는 시설이라는 사실은 여러 자료들로 명백하게 알 수 있는데, 나라를 지키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정치인들이 가장 즐기는 운동은 놀랍게도 골프이다.
2006년 3월에 당시 이해찬 총리는 3·1절에 골프를 쳤다가 결국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2008년 8월에 한나라당의 김태환 의원과 허태열 의원은 광복절에 일본까지 가서 골프를 친 사실이 알려져 큰 물의를 빚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허태열 의원은 2006년 3월 6일 KBS 1라디오 <라디오 정보센터 박에스더입니다>에서 이해찬의 3·1절 골프를 강력히 비판했던 장본인이다. 이해찬과 허태열은 두드러진 예일 뿐이다. 이 나라에서 골프는 어느덧 정치인과 공직자의 상징이 되었다.
쌀 직불금 불법 수령 문제로 온 나라가 뒤집히다시피 했다. 정말 한국 정치인과 공직자의 바닥을 보는 것 같다. '강부자'가 얼마나 파렴치한 존재인가를, 한국의 부자가 왜 비난의 대상인가를, 이 사건은 너무나 잘 보여준다. 그러나 골프장 문제도 이에 못지 않다.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황금빛 들판을 가로질러 푸르른 잔디밭으로 들어가서 '나이스 샷'을 외치는 정치인과 공직자에게 햇빛에 그을리고 농약에 찌들고 빚에 쪼들린 농민은 보이지 않을 것이며 온갖 생태적 및 사회적 파괴와 오염의 문제를 안고 있는 골프장의 실태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늘에서 보노라면, 거대한 초록색 송충이들이 국토를 마구 파먹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골프를 즐기는 정치인과 공직자여, 너희들은 신나게 놀면서 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