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41개 인권단체로 구성된 인권단체연석회의는 30일 서울 종로구 외교통상부 청사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전자여권은 개인정보를 생중계하고 있다"며 "이미 발급한 전자여권을 전량 리콜하고 2010년 예정된 지문날인 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전자여권이 개인정보를 생중계하고 있다"
김승욱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지난 29일 리더기로 전자여권의 칩을 읽어 정보를 유출하는 시연을 해보였다. 그는 "현재 칩을 통해 쉽게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낮다"며 "한국에서 비자 발급할 때 여행사에 여권을 맡기는 일이 많고 외국에 나가서도 호텔이나 가이드에게 여권을 맡기는 일이 많아 정보 유출의 위험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 관련 기사 : "전자여권, 10분이면 감쪽같이 '해킹'")
외교통상부는 칩을 통해 유출되는 정보가 여권 내의 정보와 다를 바 없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전 세계적으로 전자여권이 도입된 지 1년 가량 지난 현재까지 칩 속의 정보 유출로 여권을 위·변조한 사례가 직접적으로 발견되지 않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김승욱 활동가는 "정보가 쉽게 유출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또 기술의 발달이 뒷받침되면 원거리 유출, 위·변조 등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유럽연합에서 공식적으로 자금을 제공받고 있는 보안전문가 그룹 FIDIS는 보안 문제와 신분 위조의 위험성을 들어 지난 2006년 "빠른 시일 안에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현 전자여권 표준을 폐기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지문 유출되면 평생 남용될 위험"
전자여권에 지문을 수록하게 되면 문제는 더 커진다. 지문과 같은 생체정보는 평생 바뀌지 않아 한 번 도둑맞은 생체정보는 오랜 기간 동안 남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여권에 지문을 수록한 국가는 독일, 싱가폴, 말레이시아, 태국 등 4개국. 유럽연합 국가는 2009년 지문을 수록할 예정이고 미국과 일본은 전자여권에 지문을 넣을 계획이 없다.
연석회의는 "외교통상부는 '유럽 국가도 하고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데 이것은 유럽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유럽은 현재 국경이 통합되어 서로 간에 출입국 심사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특수성 속에서 유럽연합의 통합신분증으로서 '전자여권+지문'이라는 제도를 고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문날인을 외국 출입국 시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유럽연합의 테러리스트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려는 목적이라는 것.
이들은 "그렇기 때문에 유럽연합은 전자여권에 수록된 지문을 유럽연합 외부의 국가에서는 읽어보지 못하도록 법적, 기술적 장치들을 마련해놓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만 차별적으로 지문 날인받게 할 건가"
또 연석회의는 외교통상부가 말하는 '지문 확인의 양국 간 상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굳이 어느 나라가 지문 날인을 해서 자국민이 외국에서 지문 날인의 번거로움과 차별적 대우를 감수하게 하겠냐"며 "지문 인증을 많이 하면 할수록 한국인은 외국에서 차별적으로 지문 날인을 받을 것이고, 만약 지문 인증을 하지 않으면 굳이 애초에 필요하지 않은 지문을 수록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최근 영국에서 탈북자 망명을 신청한 사람들이 탈북자인지 한국인이지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 정부에 지문 정보를 요구한 것에 외교통상부가 응해준 사례를 들며 "이제 한국 여행자들은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조금만 의심돼도 지문 날인을 해볼 수 있다는 말"이라며 "전자여권과 지문 수록으로 이런 상황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은 "외교통상부가 국회에 출석해 보안에 특별한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고 시행하기 위해서 지문 날인을 2년 유예한다고 설명했던 만큼 보안에 심각한 문제가 발견된 이상 직접 한 말을 지켜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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