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말이 아니다. 이른바 '영수회담'의 한 당사자인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말에 답이 담겨있다.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 정권은 지지하는 사람들하고만 코드를 맞추고, 국민 통합은 않고 분열시키는 일을 책동한다"고 운을 뗀 뒤 "영수회담을 해봤는데 태도 변화를 못 느꼈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마이동풍' 했고 정세균 대표는 '우이독경' 했다는 얘기다.
지적이 안 나올 수가 없다. 그럴 것이 뻔했는데 뭐하러 청와대에 갔냐고, 왜 청와대에 가서 '여당 2중대' 욕을 버냐는 비판이 자연스레 나온다.
물론 결과론으로 몰아갈 문제는 아니다. "지지하는 사람들하고만 코드를 맞추고, 국민 통합은 않고 분열시키는 일을 책동"하는 행태를 이른바 '영수회담' 이전에 알지 못했다면, 이른바 '영수회담'을 하고나서야 알게 됐다면 정세균 대표의 청와대행은 의미를 갖는다.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더라도 그런 행태를 확인하는 것 자체가 소득일 수 있다.
하지만 몰랐을 리 없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줄기차게 지적돼 온 게 바로 '소통'이었고 '통합'이었다. 다른 곳이 아니라 민주당 먼저 그렇게 비판해 왔다.
다르게 보자. 정세균 대표가 이명박 정부의 행태를 알고서도 청와대를 찾아갈 수 있다. 설득하기 위해서, 충고하기 위해서 찾아갈 수 있다. 소통은 양 당사자의 노력이 맞아떨어져야 이뤄지는 것이니까 어느 한쪽이 먼저 노력을 기울이는 걸 뭐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치자. 그래서 찾아갔다고, 회담 자체가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받아들이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찾아가서 만났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 변화를 못 느꼈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꼬인다. 정세균 대표는 미련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여기겠다고 한 말을 버리지 않는다.
정세균 대표가 그랬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도 똑같은 말(국정의 동반자)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박 전 대표에게 한 말은 집안싸움을 정리하는 말이었고, 이건 여야 관계 설정의 문제니까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정부가 어떤 일을 할 때 파트너로서 의견을 존중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모순이라고 지적하는 건 부적합하다. 차라리 코미디라고 규정하는 게 낫다.
본인 스스로 규정한 사실을 부정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지하는 사람들하고만 코드를 맞추고, 국민 통합은 않고 분열시키는 일을 책동"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뒤에 가선 이명박 대통령이 민주당을 "파트너로서 의견을 존중"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애당초 가능하지 않은 일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국정운영의 동반자'에 대한 기대가 '실소' 거리라면 '초당적 협력'에 대한 의지는 '썩소' 거리다.
살펴보면 안다. 정세균 대표는 경제살리기와 남북관계 등에서 '초당적 협력'을 하겠다고 하지만 기실 할 게 별로 없다. 이 분야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 태도는 변화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감세를 밀어붙인다. 미국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글로벌IB 육성책을 포기하지 않는다. 각종 규제를 풀 준비를 하고 있다. 모두 민주당이 반대하는 것들이지만 이명박 정부는 '돌격' 모드를 가다듬고 있다.
남북관계는 또 어떨까? 정세균 대표가 제안한 게 민주당의 '대북 네트워크 활용'이었다. 하지만 이른바 '영수회담'이 열린 바로 다음날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핵무기 포기'와 '개방'을 다시금 요구했다. 민주당이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만든다고 비판한 '비핵·개방 3000' 정책을 다시 읊조린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이 이렇다면 '대북 네트워크'를 활용할 여지는 없다.
그럼 이건 어떨까? 정세균 대표가 강조한 '스몰딜'(정 대표는 "스몰딜이 자꾸 쌓이면 빅딜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추가경정예산안도 우리 의지를 반영했다"고 주장했다)이 '초당적 협력'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또한 가당치 않다. 민주당이 애초에 지적했던 문제, 즉 사기업(그것도 외국자본이 지분을 소유하는)인 한국전력과 가스공사에 국민 혈세를 지원하는 문제를 접고 그 대가로 노인 틀니 지원비를 얻어낸 건 '스몰딜'이 아니다. '스몰'인지 '빅'인지를 계산하기에 앞서 '딜'이라고 볼 수가 없다.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걸 내주고 '생색거리'를 챙기는 걸 두고 '딜'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없다. 상대에 떡을 통째로 내주고 콩고물을 얻는 걸 '거래'라고 인정하는 사람 또한 없다. '딜'은 등가교환일 때에나 쓰는 말이다.
알아야 한다. 정세균 대표는 자신이 어느 길을 걷는지, 자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돌아봐야 한다. 뒤돌아서서 걸어온 길을 훑어봐야 한다.
권하고 싶다. 우선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내용을 다시 들어보길 바란다.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주장이 얼마나 모순돼 있는지, '화자'가 아니라 '청중'이 돼 들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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