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에 대한 반발이 학내외에 거세게 불고 있다. 히브리중동학과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이스라엘 지역학을 가르치는 학과라는 희소성이 있어 폐과는 학문의 다양성을 크게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여기에 졸속적이고 일방적인 결정 과정에 대한 비난이 더해져 학내에서는 불과 이틀 만에 폐과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학생 3000명이 참여했다.
'대학'사회에 이어 학문에까지 불어닥친 신자유주의적 경쟁이 인문학을 고사시키고 있다는 위기 의식이 확산되면서 건대 문과대학 차원에서 대책위가 꾸려지는 등 히브리중동학과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적극 전개되고 있다.
"아시아 유일의 이스라엘 학과를 없앤다고?"
현재 국내에서 아랍 지역 전공이 있는 대학은 한국외대와 명지대, 조선대, 부산외대 등 4곳이지만 이스라엘 지역 전공은 건국대가 유일하다. 중동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연구 없이 진행되는 중동 연구는 '반쪽짜리'라고 말한다.
홍미정 외대 연구교수는 "이스라엘은 중동 갈등의 중심에 있어 중동의 현대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한 축"이라고 설명한다. 홍 교수는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영국과 미국의 대리인으로서 정치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해왔다"며 "부시의 중동 민주화 정책도 이스라엘을 알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긴급한 상황이 발생한 뒤에야 비로소 지역 전문가의 중요성을 깨닫는다는 게 문제다. 2005년 김선일 씨 피랍 사건이나 지난해 샘물교회 사건 등이 터졌을 때 한국엔 중동 전문가가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 때 뿐이었다. 중대한 사건이 터졌을 때만 아쉬운 소리를 하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전문가를 육성하려는 노력은 그리 하지 않고 있다. 시장성 운운하며 뒷걸음치는 것이다.
이 과의 최창모 교수는 오랫동안 구상해 왔던 '중동연구소'를 지난해 드디어 설립했다. 홍미정 교수, 박찬기 고려대 강사 등이 연구소를 함께 꾸려가고 있다. 이 연구소는 올해 학술진흥재단에서 10년 동안 80억을 지원하는 인문한국(HK) 사업의 '연구소 지원 사업'분야에 신청을 했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최 교수는 "중동학과 히브리학을 연계해 언어, 문학, 종교, 정치, 역사 등의 연구 결과물을 내고 이것을 외교와 교육 등에 있어 밑거름으로 이용하는 것이 목표였다"라며 "지금 학교 측이 그 싹을 자르려 하고 있어 정말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폐과 결정 이틀 전까지 수시모집…졸속 결정 논란
폐과 조치가 학교 측의 졸속적인 행정으로 이뤄졌다는 것도 문제다. 이 학교 김기흥 교무처장은 지난 8월 14일 해당 학과 재학생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어려운 재정 상황에서 학교 당국으로서는 해당 전공을 지원할 만한 여유나 의지가 없는 형편"이라며 "교수님들에게는 가능한 한 희망에 따라 소속을 변경해 드릴 것이고, 학생들에게도 사범대나 수의학과 등 법이나 규정상 진입이 제한된 경우가 아니라면 학과 변경을 희망에 따라 해줄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메일을 받을 때까지 학과장은 물론 단과대 학장조차 이 방침을 전혀 몰랐다. 최 교수는 "학교에 나오는 학생들이 적고 관심이 덜한 방학을 틈타 학교 측이 얼렁뚱땅 폐과를 하려던 것"이라며 "어떻게 단 두 달 만에 밀실에서 17년 된 과를 뚝딱 없애버릴 궁리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9일 학교 측은 교무회의에서 공식적으로 폐과 결정을 내리고 이 건을 종결하려 했지만 교수와 학생들의 강한 반발에 직면해 무산됐다.
폐과 조치가 얼마나 졸속적인 결정이었는지는 해당 학과의 후기 수시 모집이 끝난 바로 이틀 뒤 이 같은 폐과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학교 측은 이 과에 수시 지원한 학생들이 반발하자 "들어와서 원한다면 전과하라"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최 교수는 "최소한 지난 2005년 학제개편을 할 때는 충분한 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쪽에 자구책을 만들어 보라는 등의 유연한 태도를 취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학교 측에서 막무가내로 일방적 통보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학칙에 따라 전공 재학생 수(2~3학년)가 3년 연속 30명 이하인 경우에 전공 폐지 요건에 해당한다"며 "해당학과 학생들의 전과율이 64%에 달한다"고 말했다. 또 이어 "학제개편안에 관해 소속 교수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토론회도 가졌으며 이메일 통보 이후 학생들과의 공청회도 열었다"라고 해명했다.
"홍보할 때는 언제고…돌아서면 끝"
히브리중동학과가 지금은 찬밥 신세지만 지난 2005년까지만 해도 학교 측은 국내 유일의 과라는 홍보를 아끼지 않았다. 9.11사태 이후 2005년도에 히브리과가 중동학까지 포함하는 확대개편을 단행해 히브리중동학과로 재편됐다. 이 때 학교 측은 중동학이 추가됐으니 교수 충원까지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중동학을 가르칠 시간 강사만 채용했을 뿐 더 이상의 지원은 없었다. 정작 학교 측에서는 교수 충원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면서 '교수 수가 적다'는 등의 이유로 폐과하라는 말은 모순이다.
히브리중동학과의 유성환(4학년) 군은 "학교는 홍보할 때만 우리 과를 써 먹고 막상 지원은 없었다"며 "학생들을 데리고 실험하는 것이냐"고 불만을 표현했다. 문과대 학생회장인 박명민 양도 "무리한 경영은 학교가 해놓고 재정이 없다는 이유로 지원을 안해주면서 책임을 학생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이스라엘 연구'처럼 중요하고 필요한 학문이라면 육성하고 키워내 학문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 바로 대학의 의무"라며 학교 측의 토사구팽은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인문학의 위기는 없다"
학교 측이 제시하는 명분은 역시 '시장성'이다. 인기에 따라 과의 존폐를 결정하는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으로 경영학이나 경제학 등 수요가 많은 소위 '인기학과'들만 제자리를 안전하게 지키고 있다. 이런 과들과 구분해 학교 측은 히브리중동학과를 '영세학과'라고 부른다.
그러나 단순히 시장경쟁력으로 학문을 재단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태도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홍미정 교수는 "히브리중동학을 포함한 인문학은 우리 사회에서 돈으로 쉽게 환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며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했다.
최 교수도 '인문학이 위기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인문학은 시대에 따라 학문의 중심에 놓였는지 아니면 변방에 놓였는지의 차이만 있었을 뿐 시대를 이끄는 동력으로 작용해 왔다"며 "인문학이 뒷받침하는 인류 사회가 진정 건강한 사회다"라고 강조했다.
대학이 '직업학교'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마지막 보루는 바로 '인문학'의 보호육성을 통해 학문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학문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건국대 히브리중동학과는… 1991년 신설되어 지금까지 총 45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한국이 이스라엘과 축산농업 교류를 활발하게 진행하면서 관련 학과가 개설됐다. 당시 예루살렘에서 유학을 하고 있던 최창모 교수가 첫 번째로 영입돼 17년 동안 이 과를 지켜왔다. 최창모(崔昌模) 교수는 연세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한 후,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과정에서 이스라엘 역사(제2차 성전시대사)와 히브리 문학(유대 묵시문학) 및 초기 유대교와 기독교를 비교 연구했다. 외환 위기 이전까지 과에서는 매년 방학마다 이스라엘 정부의 지원을 받아 키부츠에 가서 현지 문화를 체험하고 언어 연수를 했다. 매년 1~2명의 이스라엘 국비장학생도 배출했다. 그러나 1998년 학부제가 되면서 학과 간의 양극화가 시작됐다. 당시 인기학과였던 영문과 등에 밀려 학교 측의 표현대로라면 '영세학과'가 되었다. 현재 2~4학년 재학생 총수는 22명이다. 최창모 교수는 "한국에는 아직까지 중동 지역만을 공부한 반쪽짜리 전문가만 있어왔다"며 "내가 이스라엘 연구의 1세대였고 이제 양쪽 지역(이스라엘과 중동)을 합친 전문가를 만들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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