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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할 때다"

[창간 7주년 기념 강연①] 신자유주의를 넘어 사회 책임 자본주의로

"폭풍우가 지난 후, 보수공사가 끝나면 모두가 옛 상태로 복원되는가? 그럴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변화는 이미 진행되어 왔고 이번 미국의 금융위기는 그 변화의 산물이면서 다시 변화를 극적으로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세계 자본주의가 새판 짜기를 하면서 새로운 진화를 해야 할 때다."

24일 오후 3시 서울시 중구 정동 사회복지공동회 강당에서 열린 <프레시안> 창간 7주년 기념 강연에서 김영호 유한대 총장(국제동아시아공동체 학회 공동대표)이 한 말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불거진 국제 금융 위기로 미국이 주도해 왔던 신자유주의 금융화 흐름에 제동이 걸렸다는 설명이다. 리먼 브라더스 등 월스트리트를 대표하는 대형 투자은행이 대거 문을 닫고 있는 현 상황은 '보수공사'를 통해 원상복귀 될 수 있는 게 아니며, 세계 자본주의의 질적 전환을 유도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


김대중 정권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던 김 학장은 최근의 위기를 둘러싸고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보다 '금융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김 학장은 "국제금융자본의 투명성과 안정성이 상당한 정도로 보장되더라도 가난한 사람이 신용등급이 낮고 그만큼 높은 이자, 높은 담보, 높은 리스크를 부담함으로써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는 현상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므로 이 게임의 참가자는 양극화를 촉진하는데 따른 부담을 져야 한다"고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김 총장의 강연문 초고를 소개한다. <편집자>

"지각 변동이 시작됐다"

요즘 미국 대학에서는 경제이론은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대신, 신문 기사를 주로 읽는다고 한다. 그만큼 변화가 심하다는 것이다. 격변기에는 경제학자보다 현장 애널리스트나 기자들의 말이 더 솔깃하다. 그러나 "카더라" 방송에 귀를 기울이면서 우리 자신의 정확한 시각을 조심스럽게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럴 때일수록 "카더라" 방송의 홍수 속에 우리 자신의 시각이 유실되어 버리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성급한 결론을 경직되게 내세우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2008년 9월 중순의 금융위기는 1987년 블랙 먼데이(Black Monday)에 빗대어 블랙 위크(Black Week)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주가 대폭락과 함께 세계에 군림하던 월가의 초거대 투자은행들이 차례로 쓰러진 것이다. 모기지 회사인 페니매(Fannie Mae), 프레디맥(Freddie Mac)은 국유화되고 리먼브러더스는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메릴린치는 BOA에 합병되고 AIG는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지주회사로 전환됐다. 드디어 7000억 달러 규모의 재정을 투입하여 부실채권정리기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리먼브러더스가 넘어지자 A.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은행제도 의장은 "100년 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큰 위기다. 더 많은 메이저 금융회사가 쓰러질 것이다"고 하여 세계의 놀라움을 대변하였다. 불과 얼마 전 6월에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관련하여 "신용위기 최악의 상황은 끝났거나 곧 끝날 것"이라고 단언했던 그린스펀의 말이고 보니 더욱 크게 보도되었다. 얼른 생각나는 것만 해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J. 스티글리츠(J. Stiglitz), 닷컴 거품연구로 유명한 예일대의 로버트 실러 교수,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미국 자본주의의 탈규제(deregulation) 시장주의가 정부의 재규제(re-regulation) 자본주의로 넘어간 "결정적 전환"(decisive turn)이라고 규정하였다.

"1929년 대공황과 비교하면"
▲ ⓒ프레시안

이 사건은 1929년의 대공황과 비교하여 논의하는 경향이 있다. 사건의 규모와 성격이 대공황에 비교하면 잘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 미국민의 23%가 현재를 공황 상태로 보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처음부터 "1929년의 대공황과 비교된다"고 지적하였으나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대공황은 금융과 실물경제 전반에 걸친 경제위기이었으나 이번 사태는 아직은 금융부분을 중심으로 한 금융위기라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대공황 때는 중소 규모의 금융기관 다수의 도산에 그쳤으나 이번에는 리먼브러더스나 메릴린치 같은 초거대 금융기관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대공황 때는 FRB의 금융완화로 해결의 길로 접어들었으나 현재는 역사상 유례없는 정부의 대규모 개입에도 불구하고 문제해결의 전망은 매우 유동적이다. 구제금융의 효율성에 대한 구조적 결함의 문제도 있고 불경기가 추가적인 지가 하락을 가져오면 추가적인 구제금융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점도 있으며 재정위기의 심화 문제도 있다. 대공황 때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인위적으로 떼어놓았으나 이번에는 다시 두 개를 결합시켜 놓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대공황은 자유자본주의의 종언을 고하고 케인즈적 수정자본주의에로의 전환을 가져왔으나 지금의 대 사건은 새 시대로의 전환의 전망이 극히 복잡하고 애매하다는 점이다.

"폴슨, 제2의 케인즈인가?"

지금 문제해결의 열쇠는 재무장관 헨리 폴슨과 버냉키 FRB 의장이 쥐고 있다. 그런데 폴슨은 '제2의 케인즈'(J.M. Keynes)인가?

지금 일반적으로 폴슨 장관과 처리 당국은 정부의 규제 자본주의로 전환하는 작업반이라고 보는 분위기가 강하다. 앞서 본 WSJ의 "결정적 전환론"도 그러하며, 금융자본주의 종언 혹은 신자유주의의 종말이라는 평가도 여기에 속한다.

시티그룹의 한 시장 정보지는 "환영 미 사회주의합중국" (Welcome to the United States Socialist Republic)이라는 표제를 썼다. 머리글자 USSR은 옛 소련의 약자이다. 마치 폴슨을 레닌으로 과장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폴슨은 '제2의 케인즈'가 아니며 '제2의 레닌'은 더욱 아니다. 그는 골드만삭스에서 성장하여 CEO에 이른 인물이며 그의 자문그룹인 폴슨팀의 핵심 멤버 역시 골드만삭스 출신이다. 그는 철저한 시장주의자다. 그는 리먼브러더스의 구제를 거부하면서 "세금을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 왜 그 직후 태도를 바꾸게 되었는가? 그는 "만약 당신이 바추카(휴대용 대전차 로켓 발사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다면 당신은 바추카를 쓸 일이 없을 것이다"고 말했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바추카를 쓰는 입장이다.

타이타닉호가 조난당했을 때 보트에 태우는 우선순위처럼 정부의 구제금융을 던지는 풀슨 룰은 ① 주택론과 연금 등 국민에 영향이 큰 사업, ② 파산한 경우 금융시스템에 영향이 큰 것, ③ 자금 사정이 급격히 악화된 경우 등이다.

그러나 베어스턴스, 주택공사, AIG는 구제되고 리먼브러더스는 안되느냐의 구별의 일관성은 명확하지 않다. 이른바 폴슨 룰의 명확성, 일관성의 결여 문제이다. 이것은 시장주의자가 정부 개입 정책을 추진하는 비상조처 과정에 생겨난 현상으로 보인다. 투자은행 애호가가 투자은행 위기를 다루게 될 때 눈앞에 쓰러지는 위기의 중환자를 살리기 위하여 우선 정부 재정투입이라는 비상조치를 취한 것이다.

투자은행이 사라졌지만 단독 투자은행이 사라진 것이지 상업은행에 병합되어 투자은행의 기능만은 여전히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투자은행의 기능 중 기업공개(IPO), 인수합병(M&A) 자문 매매서비스 등은 물론 파생상품의 경우도 규제와 감독의 강화의 중요성은 커졌지만 완전히 그만두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부의 구제 보트로 살려내어 다른 형태로 재생, 재활하게 하려는 방침일 가능성이 크다. 이미 지난 3월 파산위기의 베어스턴스를 J.P.모건체이스에 인수시켜 290억 달러 구제금융을 제공하여 부활하게 한 전례가 있지 않은가. 부시 대통령 역시 2000년~2003년의 닷컴 거품 붕괴 때 "장부 위조, 진실 회피, 법규 위반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으나 그것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투자은행의 파생금융상품 속에 그대로 재현되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의 종언, 금융자본주의의 종언이라는 결론은 아직은 성급하다. 미국은 제조업은 붕괴되었고 금융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다. 이 거위를 죽일 리가 없다. 정부의 규제금융과 재규제 시책은 거위를 건전하게 살리려는 비상조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의 <Economist(이코노미스트)>가 이와 비슷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도, <Financial Time(파이낸셜타임즈)> 22일 자의 P. Augar의 "IB의 죽음을 과장하지 마라"는 칼럼도 그러한 견해의 대표적 사례이다. 다만 금융부분 특히 투자은행 부분의 축소, 투명성 제고를 위한 규제 강화 등은 충분히 예상된다.

해법은?

그러면 폭풍우가 지난 후 보수공사가 끝나면 모두가 옛 상태로 복원되는가? 그럴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변화는 이미 진행되어 왔고 이번 미국의 금융위기는 그 변화의 산물이면서 다시 변화를 극적으로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세계 자본주의가 새 판 짜기를 하면서 새로운 진화를 해야 할 때이다.

우선 단기적 전술적 조치로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부실 자산을 정리하는 조처 등이 있다. 현재 미 재무성과 FRB가 취하고 있다. 아울러 금융자본주의의 탐욕과 불투명성을 제어하기 위한 장치의 확립 문제가 있다.

장기적 전략으로는 주택거품의 붕괴, 금융시장의 위기, 인플레의 세계적 전개, 달러의 폭락이라는 여러 요인의 결합에 의한 구조적 복합 위기에 대한 구조적 복합 대응이 중요하다. IMF의 D. 스트라우스 칸 총재의 표현을 빌리면 "시스템적 위기는 시스템적 솔루션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세계금융자본주의의 새 판 짜기는 투자은행이 상업은행과 결합한다든지 지주회사로 전환한다든지 하는 것 외에 이번 미쓰비시 UFJ가 모건과 제휴하고 노무라가 리먼의 아시아와 유럽법인을 인수하는데서 보이는 미일 금융자본의 급속한 제휴도 주목할 만하다.

새로운 시장 모델을 모색하자

투자은행이 파생금융 상품과 증권화 상품을 고안하여 리스크·비즈니스를 통하여 먹이사슬의 저변에 위험을 전가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덮어둘 수는 없다. 이것은 이윤은 은행 특히 간부들의 몫이고 손실은 미국 시민과 세계 시민의 몫으로 전가(buck passing)하는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다.

스티글리츠는 금융상품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심의위원회와 금융시스템을 감독하고 과도한 차입을 방지하는 금융시스템 안정위원회를 둘 것을 제의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S&P나 무디스 같은 신용평가(Rating) 회사가 오히려 금융상품의 부정직성과 불안정성을 뒷받침해주었던 사실에 비추어 크게 기대할 수 없다.

한국의 IMF 위기 때 IMF에 맞서 개최한 '대구라운드'에 참석한 바그와티(J. Bhagwati) 교수는 "월가, 워싱턴, IMF 복합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이젠하우어의 '군산복합체'에 견준 말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월가의 금융자본과 폴슨은 한통속이다. 한통속에게 월가 이외 혹은 미국 이외의 국제시민사회는 얼마만큼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는 대구라운드에서 채무자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와 함께 채권자의 모럴 해저드 문제를 제기한바 있다. 지금은 채권자와 같은 반열에 있는 투자자의 모럴 해저드의 문제를 자본수입국의 모럴 해저드의 문제와 함께 제기해야 할 시점이다.

금융회사의 금융상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IMF와 국제자본으로부터 모럴 해저드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받은 것처럼, IMF와 국제자본, 그리고 그 본산인 월가에 모럴 해저드 문제를 국제적 목소리로 함께 제기해야 할 것이다. 어느 한 쪽이 아니라 쌍방의 모럴 해저드의 극복이 새로운 국제금융 아키텍처(구조)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제금융의 리스크 비즈니스에서 피해를 입는 시민사회의 소리가 워싱턴의 새판 짜기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국제금융자본의 투명성과 안정성이 상당한 정도로 보장되더라도 가난한 사람이 신용등급이 낮고 그만큼 높은 이자, 높은 담보, 높은 리스크를 부담함으로써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는 현상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게임의 참가자는 양극화를 촉진하는데 따른 부담을 져야 한다. 이것이 금융의 사회적 책임이다.

토빈 교수는 필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토빈세(稅) 부과를 IMF 회원 가입조건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의한 바 있다. 이번 금융위기는 국제 공통적으로 투기자본에 토빈세를 부과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유엔의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해도 좋을 것이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 EU 시민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오늘날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금융위기보다 지구온난화 문제라는 대답이 두 배로 많았다. 토빈세는 국제금융의 리스크 비즈니스에서 최후의 리스크를 안은 사람들의 구제금융으로 사용하면서 아울러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응하는 그린 마샬플랜의 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금융의 모럴 해저드의 극복이나 토빈세보다 금융과 기업과 소비자 및 정부의 사회책임(SR)에 기대하고 싶다. 신자유주의는 사회책임투자(SRI), 사회책임기업(CSR), 사회책임소비(SRC), 사회책임정부(SRG) 등에 의한 사회책임 자본주의로 서서히 대체되어가고 있으며 이번 금융위기를 통하여 더욱 촉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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