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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준, 최후 대출자가 최후 투자자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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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준, 최후 대출자가 최후 투자자 됐다"

<NYT> "'월가쇼크'로 막대한 지급준비금 날려"

공황에 휩쓸린 월가(街)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현금세례'가 이어지고 있다. 연준은 이제 베어스턴스 채권을 담보로 가진데 이어 약 80%에 달하는 AIG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하지만 리먼브러더스에 대한 차별 구제 논란이 월가를 한바탕 시끄럽게 달군데다 본연의 역할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비판까지 제기되면서 연준은 이제 정체성 우려에 시달리는 지경으로 전락했다. 미국 언론은 연준의 최근 행보를 두고 "루비콘강을 건넜다"라고까지 표현할 지경이다.

돈 펑펑 써가며 문제 회사 담보 잡는 '주식회사' 연준

18일 <뉴욕타임스>는 "연준의 새로운 임무: 최후의 투자자(the investor of last resort)"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근 이어진 연준의 행보를 비꼬며 "연준은 앓아누운 금융기관을 위해 수천억 달러의 모기지 증권을 떠안은 데다 AIG 지분까지 인수하면서 하룻밤 사이에 스스로 'Fed주식회사'로 변모했다"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가 이와 같이 연준을 비판한 이유는 무엇보다 연준이 '시장 안정'을 위해 안전자산을 지나치게 축냈기 때문이다.

1년 전만 하더라도 연준은 약 8000억 달러(약 928조 원)에 달하는 지급준비금을 세계 최고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로 쌓아놓았다. 하지만 이는 지난주를 기준으로 4800억 달러까지 줄어든 상태다. 약 2000억 달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이 연준이 투자은행을 위해 마련한 대출프로그램 TSLF(Term Securities Lending Facility)에 사용됐고 850억 달러(약 98조6000억 원)는 AIG를 살리는 데 쓰였다.

특히 이중 담보 설정이 없는 국채는 3000억 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나머지 대부분은 부실 금융기관이 발행한 증권을 담보로 설정한 대출금이다.

과거 연준은 미국의 시장경제 체제가 고장났을 때 마지막 남은 '최후의 대출자(the nation's lender of last resort)'였다. 그러나 AIG 지분 보유와 베어스턴스 구제 과정을 거치면서 연준은 본래 성격에 시장이 막장에 다다랐을 때 투자하는 주식투자자 성격까지 가지게 돼 버렸다. 연준이 가졌던 막대한 지급준비금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소진돼 버렸다.

카네기멜론대 앨런 멜처 교수(경제학)는 "이전에 연준은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적이 없다"며 "농부가 파산하고 의회는 책임을 회피하는 법을 배우던 1921년에도 연준은 항상 '우리와는 상관없습니다'라고 해명하며 단 한 번도 스스로를 '모든 목적에 부합하는 기관'으로 여긴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과거 책임 회피자였던 연준이 지금 와서는 지나치게 여러 일에 개입함을 비꼰 것이다.

연준의 시장개입 다변화로 지급준비금이 축나자 재무부도 나섰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17일 연준에 추가 현금 공급을 위해 400억 달러 상당의 특별 '보충' 채권을 발행했다. 재무부는 18일에도 600억 달러 어치 증권을 추가로 시장에 내놓았다. <뉴욕타임스>는 재무부의 이와 같은 행동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오랜 기간 연준의 시장조치를 연구해온 루 크랜달 라잇슨 ICAP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이 다음 탄원자를 구제하기에 충분한 지급준비금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시장이 의구심을 가지는 상황을 원하는 이는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연준이 앞으로도 전통적 의무였던 '현금 공급 감시자'를 넘어선 시장의 '백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실탄 마련이 이뤄져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셈이다.
▲FRB의 최근 행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시장 상황상 정부 자금이 투입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가 많다. 하지만 FRB를 칭찬하는 측에서도 구제금융 대상에 일관성이 없었다는 지적은 빠지지 않고 나온다. ⓒ로이터=뉴시스

앞으로 더 늘어날 연준의 위험 담보

지금 연준의 행보가 뒤얽히게 만든 첫 사례는 지난 3월 찾아왔다. 세계5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를 살리기 위해 연준이 재무부와 함께 JP모건체이스의 베어스턴스 인수를 이끌면서 구제금융 290억 달러를 투입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루비콘강을 건넌 첫 번째 단계였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앞으로 다가올 사례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세계 최대 보험사 AIG마저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앞으로 시장의 일은 시장에 맡기겠다"던 연준은 또 한 번 과감한 주식투자자가 됐다.

서브프라임모기지와 관련된 신용부도스왑(CDS)에 투자해 천문학적 손실을 기록한 AIG를 사실상 국가운영 체제에 편입시키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은 것이다. 연준은 이 회사 주식 80%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3개월 만기 리보(Libor) 금리에 8.5%포인트의 프리미엄을 얹어 12% 금리를 설정한 대출 지원을 결정했다.

연준은 이처럼 높은 대출금리가 AIG가 최대한 빨리 부채를 갚고 정상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듯하다. 그러나 만약 조기 정상화에 실패한다면 연준은 더 깊숙이 이 문제에 개입해야할지도 모른다. 과감한 결정이 헤어날 수 없는 늪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결정에 대해 "사실상 연준을 부동산 투자자나 헤지펀드 매니저와 같은 처지로 전락시켰다"라고 해석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연준의 구원을 받지 못하고 파산한 리먼브러더스도 앞으로 연준의 6개월짜리 대출프로그램을 이용해 100억 달러 가량을 빌릴 것으로 관측한다. 크랜달 이코노미스트는 리먼을 비롯한 여러 투자은행이 이미 지난주부터 500억 달러 규모의 대출을 타진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월가 위험증권시장의 중요한 권력이 돼 가는 연준이 "이제껏 그들이 이미 인수한 것보다 더 위험한 담보를 가지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연준의 불투명한 행보가 어디로 이어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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