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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에게 이주 노동자는 '남의 일'인가"

[토론회] 70만 이주 노동자 시대, 노동계는 어디에?

어느덧 69만 명이다. 정부 통계로 그렇다. 이제는 공단 지역 뿐 아니라 점심 시간 찾은 식당에서도 손 쉽게 이주 노동자를 만날 수 있다. 1993년 시작된 이주 노동자 역사는 어느덧 15년이 됐다.

그 사이 제도도 바뀌었다. 산업연수생 제도 아래 △인력 선발 과정에서의 송출 비리 △불법체류율 증가 △인권 침해 등의 등의 문제가 '그늘'로 꾸준히 지적됐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제도를 뜯어 고쳤다. 노동부는 "각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2004년 8월 고용허가제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고용허가제 도입이 4년을 넘겼다. 이주 노동자와 함께 해 온 짧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낯설음을 감추지 않는다. 단지 '다르다'는 차이를 강조하는 것 뿐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차별해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은 여전하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의 말대로 "정부나 국민의 차별적인 인식이 질적인 변화가 있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동정적인 시선조차도 약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 진실일지 모른다.

그런 가운데 이주 노동자를 철저히 타자로 보는 일반인들의 시선도 문제지만, 조직된 노동단체들도 이들의 고통을 '남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비판이 17일 제기됐다. 이주노조와 민주노총이 주최한 토론회 '이주 노동자 송출입 과정과 민주노총 개입 과제'에서 발제자로 나선 황필규 변호사는 이날 이주 노동자 문제를 대하는 민주노총의 문제를 지적했다. 실질적 효과를 내지 못하는 형식적 연대와 조직에 그침으로써 사실상 이주 노동자 문제를 '방치'했다는 비판이었다.

이는 주로 정부의 정책과 집행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이제까지의 이주 노동자 문제에 대한 사회 담론과 달리 노동계의 대응 방식과 태도를 돌아보는 것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민주노총은 이주 노동자에게 제공할 다국어 안내 책자 하나 없다"
▲ 민주노총은 정부의 정책 방향 수립 과정은 물론이고 법제화 과정에서도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정부는 "'외국인과 더불어 사는 열린 사회 구현', '다문화'의 탈을 쓰고 이주 노동자에 대한 통제를 조직화, 체계화, 강화"시켜 나갔다.ⓒ프레시안

"일회성", "소극적", "방기", "책임 단위의 부재".

황필규 변호사가 이날 내놓은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의 주어는 정부가 아니라 민주노총이었다. 황 변호사는 "스스로의 역할에 대한 자리매김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민주노총의 이주 노동자 정책과 실천을 종합적으로 평가했다.

국내 양대 노총 가운데 하나인 민주노총의 이주 노동자 정책은 "실무자 중심의 법제 개선에 대한 논의"에 그쳤고, "구체적인 사업을 통한 연대가 아닌 일회성의 국제 교류에 그친 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이주 노동자 개개인이 죽거나 다치거나 쫓겨나거나 하는 사건 중심의 대응을 하는 것도 버거웠다. 큰 그림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심지어는 "민주노총이 제공할 수 있는 지원에 관한 다국어 안내책자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민주노총은 정부의 정책 방향 수립 과정은 물론이고 법제화 과정에서도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정부는 "'다문화'의 탈을 쓰고 이주 노동자에 대한 통제를 조직화, 체계화, 강화"시켜 나갔다.

황필규 변호사는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은) 정부의 정책을 방치했다"고 꼬집었다.

'남의 의제'로 보는 소극적 접근, 노동운동에 부메랑 될 것"

최근 열린 한국사회포럼에서 '이명박 정부의 이주민 정책과 인권 운동'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한 정정훈 변호사도 "이런 방식의 접근은 결국 노동운동 자체에게 부정적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노동운동의 역사는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조직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노동조합이 이주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미담 기사로 언론에 보도될 정도니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황 변호사는 특히 민주노총이 이주 노동자 조직화에 있어서 미등록 이주 노동자에만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비록 "미등록 이주 노동자가 이주 노동자 가운데서도 가장 취약한 집단"이기는 하나, 합법적으로 일하는 이주 노동자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현장에 기반한 실질적 노조 운동의 방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황 변호사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 중심의 이주노조와의 연대라는 전투적이고 가시적인 활동을 통해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부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기존의 틀에 대한 진지한 재고가 먼저다"

물론 그렇다고 민주노총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네팔의 카트만두에서는 이주노조가 주최하고 민주노총이 후원한 '송출국 노동자와 한국 이주 노동자 운동의 연대를 위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 국제회의에서는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소통과 공동행동을 위해 국제 이주 노동자 연대 네트워크의 결성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오는 노동자들에 대한 사전 교육과 선전 △이주 노조 합법화를 위한 캠페인 전개 △이주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 등의 권고 사항이 채택됐다. 또 이와 같은 국제 회의를 1년에 한 차례씩 열기로 했다.

황필규 변호사는 "이 회의 결과는 민주노총에게 네팔노총 등과의 연대를 통한 본격적인 이주 노동자 관련 활동의 전개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기존의 틀에 대한 진지한 재고 없이는 기존의 오류를 반복하게 될 위험성이 많다"고 내다봤다. "실질적인 이주 노동자 운동을 벌이는 계기가 되기 보다는 스스로 또 하나의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는 충고다.

결국 '남의 문제'를 넘어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첫 출발점부터 다시 시작해, 책임단위의 상설화와 체계적인 조직화 및 현장성의 확보, 지속적인 프로그램의 실행이라는 개별 나사들이 잘 어우러진 "큰 그림" 아래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사망까지 이르게 하는 '토끼몰이식' 단속 "법적 근거 없다"

고용허가제 시행 4년이 넘었지만 산업연수생 시절의 문제점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과도한 현지 송출비용은 지금도 이주 노동자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베트남 현지의 보도에 따르면, 산업연수생의 법정 송출비용의 6배가 넘는 미화 8000달러의 고용허가제 송출 수수료를 부담하고 있었고, 필리핀 출신 노동자들도 정부가 밝힌 공식 수수료 미화 380달러보다 4배 이상의 돈을 현지에서 주고 국내로 들어왔다.

이 같은 추가 비용은 국가청렴위원회 조사 결과로도 드러난 바 있다. 청렴위가 지난 2005년 필리핀, 태국, 베트남 3개국 출신 외국인 근로자 14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0.3%가 공식 비용 외에 400~600 달러의 추가 비용을 브로커나 담당 공무원에게 줬다고 대답했다.

국내에 들어오기까지도 문제지만, 들어와서 발생하는 각종 차별과 인권 침해도 여전했다.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의 가입률은 크게 늘어났지만, 고용허가제도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이라는 고질적 고통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이주노동자인권연대'의 면접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134명 가운데 42.4%는 1일 평균 12시간, 주당 최소 60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달 내내 하루도 쉬지 못한다는 대답도 7.6%나 됐다. 그에 반해 전체의 16.2%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을 받고 있었다.

특히 미등록 이주 노동자에 대한 단속 과정에서의 과도한 물리력 행사는 때로 끔찍한 인명 사고로까지 이어지면서 꾸준히 지적돼 왔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황필규 변호사는 이 같은 '토끼몰이식' 단속이 "법적 근거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출입국관리법상으로도 출입국관리공무원이 불법체류 외국인의 단속을 위해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점유하는 방실에 관리자 또는 주거권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무단으로 진입할 수 잇는 권한을 부여하는 근거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황 변호사는 "출입국관리법 뿐 아니라 경찰관직무집행법 등 기타 어떤 법령을 봐도 경찰이 체류자격 없는 외국인에 대한 행정절차인 보호에 물리력을 동원해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은 찾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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