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전문가들은 지금의 위기가 앞으로도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견해 여전히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 안정의 첫 고비는 이날 개장할 뉴욕증시와 AIG 등 추가 위기설이 나온 금융기업의 회생 여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증시 폭락…외국인 하루만에 6000억 원 순매도
16일 코스피지수는 전날(12일)보다 90.17포인트(6.10%) 하락한 1387.75로 마감했다. 장중 한 때 100포인트가 넘게 빠지며 1380선마저 붕괴됐으나 장 막판 기관 매수세가 몰리면서 1차 저지선으로 여겨진 1380선을 지켜냈다.
전날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소식이 들린 데다 세계3위 투자은행인 메릴린치마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헐값에 매각됐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이날 증시는 장 개장과 동시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자금경색을 반영하듯 외국인들은 한국증시에 투자한 돈을 대거 거둬들이기 바빴다. 이날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6071억 원을 순매도해 지수 하락을 견인했다. 이날 외국인의 순매도 금액은 지난 6월 12일(9731억 원)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외국인은 지난달 19일부터 이날까지 단 이틀을 제외하고 모두 순매도세로 일관했다.
종목별로도 미국 금융 혼란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간 증권주가 가격제한폭까지 떨어져 '패닉' 상태에 빠진 투자심리를 여실히 보여줬다. 무려 78개 종목이 하한가까지 떨어지는 등 903개 종목이 하락했다. 반면 이날 오른 종목은 57개에 불과했다.
장이 공황에 빠진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코스피시장 선물지수인 코스피200지수선물 12월물이 5% 이상 급락하자 오전 9시 35분경 코스피에는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사이드카는 선물거래시장에서 거래량이 가장 많은 종목이 5% 이상 급등 혹은 급락한 상태가 1분 이상 지속될 때 시장 안정을 위해 5분간 거래를 중지시키는 조치다. 코스피시장에 사이드카가 발동된 것은 올해 들어 세 번째다.
코스닥 시장 역시 올해 들어 네 번째로 사이드카 조치가 내려지는 등 꽁꽁 언 투자심리를 피해가지 못했다. 이날 코스닥지수는 전날보다 무려 37.62포인트(8.06%) 급락한 429.29까지 밀려났다. 개인의 투자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것을 반영하듯 이날 코스닥시장에서는 무려 172개 종목이 하한가로 떨어졌다. 거래소와 코스닥을 합쳐 이날 하루동안 증시에서는 시가총액 51조4231억 원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외국인 엑소더스에 환율 급등…"환율 1200원 갈수도"
외국인 증시 이탈이 이어지면서 환시장도 된서리를 맞았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지난 주말보다 50.90원 폭등한 1160.00원을 기록했다.
환율이 종가 기준으로 1160원대까지 오른 것은 지난 2004년 8월 13일(1162.30원) 이후 4년 1개월 만에 처음이다. 전 거래일 대비 환율 상승폭이 50원을 넘어선 것 역시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1998년 8월 6일의 67.00원 이후 10년 1개월 만에 처음 일어난 일이다.
외평채발행 연기에서 드러난 것처럼 미국 시장에 돈줄이 말라가고 있어 한국시장에 투자한 자금을 외국인들이 황급히 거둬들이는 추세가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의 사망 선고가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를 더욱 높여 이처럼 큰 폭의 상승세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외환당국의 개입이 이뤄져 환율 폭등세가 주춤했던 것으로 현장의 전문가들은 파악한다.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정부의 (환율) 관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얼마나 많은 금액이 시장 안정을 위해 투입됐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라고 언급했다. 장중 환율이 급등하자 정부 당국은 환시장에 구두개입했고 이날 한국은행 역시 환시장 개입 가능성을 열어뒀다.
시장이 쉽게 안정을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직 미국발 금융위기감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AIG와 워싱턴뮤추얼 등이 다음 타깃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계속해서 끊이지 않고 금융시장에 긴장감을 드리우는 상황이라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100년 만에 한 번 올까말까한 사건이 왔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하는 등 미국에서는 지금의 위기가 끝이 아니라 한 가운데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에 끊임없이 쏟아지는 상태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도 이날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금융 문제가 미국에서 시작했지만 아시아, 중국, 영국, 유럽 등으로 확산될 것이다. 지금은 리먼브러더스 얘기를 하지만 또 한 가지 걱정되는 회사는 UBS"라며 구체적으로 금융위기 확산 대상을 꼽았다.
손 교수는 특히 원-달러 환율에 대해 "1200대 정도까지도 갈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꼭 한국경제 문제가 아니고 국제금융시장 문제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적어질 때까지는 투자자들의 미국 도피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 교수는 지난 2006년 <월스트리트저널>이 미국 내에서 가장 정확한 경제전망치를 제시하는 이코노미스트의 한 사람으로 선정한 바 있다.
앞으로 증시 전망에 대해 양경식 하나대투증권 투자전략실장은 "이날 증시에서 어느 정도 리먼브러더스발(發) 충격이 반영됐지만 아직 향후 전망을 하기는 어려운 상태"라며 "미국 FRB가 금리인하 조치를 취하더라도 AIG, 워싱턴뮤추얼 등이 심각한 상황으로 내몰린다면 아무런 조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이럴 경우 국내 증시 역시 저점을 논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양 실장은 "한동안은 저점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라며 "만약 반등하더라도 일시적 반등인지, 바닥을 확인한 것인지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일단 저지선은 1350선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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