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중:공공의 적1-1 | |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돈을 버는 것과 인생을 즐기는 것을 명확하게 가르는 선이 있다. 진정한 비즈니스맨은 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하며 산다. 그 두 가지의 경계가 무너지는 법이 없다. 국내에서 최고학부를 나온데다 미국 유학을 가서조차 '엄청난' 학부를 나와 현재 일류 변호사로 생활하고 있는 친구가 그런 충고를 한 적이 있다. "돈은 말야, 니가 잘 할 수 있는 일에서 벌려지게 돼있어. 그리고나서 그 돈으로 니가 하고싶은 일을 하는 거지. 근데 사람들은 종종 반대로 해. 하고싶은 일로 돈을 벌려고 해. 그런 다음에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하고. 근데 그러다가는 쪽박차기 십상이야. 대부분 쪽박을 찼어." 그 얘기를 들을 때 그것 참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이 하는 일, 그들이 추구하는 이른바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건 쉽게 말해서 그런 개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IT계열의 일을 통해 수조원을 벌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 곧 자선사업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워런 버핏도 마찬가지다. 정확하게 그 둘을 구분해서 산 사람들이다. 그래서 존경받는다. 그렇다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잘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명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만들고 싶은 영화가 시대적 가치가 빛나는 예술적인 영화라 해도 정작 잘 만들 수 있는 영화가 일반장르의 영화라면 먼저 손을 대야 하는 것은 후자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걸로 돈을 벌고 나서 그 돈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 곧 작가주의 영화를 만들면 속된 말로, 누이좋고 매부좋은 얘기가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어쩌면 이런 세상사의 일반법칙을 너무 무시하고 살았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문제는 영화란 일이 세상사의 일반론과는 조금 다른 궤도를 돈다는 데에 있다. 세상사에 너무 섞이면 예술이 안되고 세상사와 너무 동떨어지면 장사가 안되는 기기묘묘한 존재라는 것이 문제다.(하기사 모든 예술이 다 그렇다.) 변호사 친구와 소주 한잔을 먹고 돌아 온 날, 멀뚱멀뚱 누어 그 얘기를 곱씹어 보면서 결국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그건 마치 곧 개봉될 영화 <트레이터>에서 주인공인 돈 치들이 하는 대사를 연상케 한다. 영화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알려고 하지 마시오. 진실은 너무 복잡한 것이오." 맞는 얘기다. 답이 없는 것이다. 이 시대에 영화가 무엇인지, 이렇게 아수라장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영화를 가지고 꾸역꾸역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인지, 그 진실은 복잡한 것이다. 강우석 감독의 영화 <강철중:공공의 적1-1>에서 정재영이 맡은 조폭 이원술의 캐릭터가 매력적인 것은 그 복합성때문인데, 어느 날 그는 목소리를 탁 깔고 부하 직원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니들 그걸) 해보기나 해봤어?!" 요즘 것들, 도통 시도도 안해 보고 무조건 안된다,안된다 하는 소리만 해대는데, 일단 해보라기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 영화 속 대사는, 마치 강우석 감독(혹은 시나리오를 쓴 장진 감독)이 지금의 영화판을 두고 하는 말같아서 흥미롭다. 영화계가 안된다 안된다, 이런 영화 저런 영화 만들면 망한다 망한다고 하는데, 당신들 도대체 해보기나 하고 하는 소리냐는 것처럼 들린다. 정말 우리는 요즘 '해보기나 하고' 떠들고 있는 것일까.
다크 나이트 | |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들어 사람들이 '놀란' 영화 <다크 나이트:배트맨 비긴즈2>에서 조커(히쓰 레저)의 대사도 오랫동안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조커는 자기 때문에 얼굴이 반이나 타버린 고담 시의 수석검사 하비 덴트(애론 애커하트)에게 낄낄대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혼돈이 좋은 것, 딱 한가지가 뭔지 알아? 혼란은 적어도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다는 것이야!" 모두가 돈이 없다고, 망해 간다고, 이제는 시대정신이 담긴 영화 같은 건 만들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고 아우성이지만, 그건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고 있는 얘기가 아닐까. 그러니 자꾸 징징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징징대서는 안되는 일이다. 우리시대에 영화란 무엇인지는 결국 '잘 할 수 있는 일'과 '하고싶은 일'을 끊임없이 매치시키려는 자기노력과 같은 것이다. 적어도 영화는 그 간극을 메울 수 있게 하는 존재다. 영화는 인생과 세상에 대해서 꿈을 갖게 한다. 동시에 영화는 종종 사람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자극제 같은 역할을 한다.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일이 되도록 하게 만든다. 영화야말로 그런 존재다.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그 두가지의 간극에서 양쪽을 손에 쥐려고 노력해야 한다. 잘 할 수 있는(돈벌 수 있는) 영화만 해서는 안된다. 그건 일반 비즈니스다. 결코 하고 싶은(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게 하는) 영화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다만 그 '하고 싶은 영화'의 규격을 '잘 할 수 있는 영화'의 규격과 똑같이 생각하려는 착각에서만큼은 벗어나야 한다. 10억짜리 영화를 만들면서 50억짜리 영화의 프로덕션 매뉴얼을 갖다 대서는 안된다. 그건 심지어 죄악이 된다. 돈 치들과 정재영과 히쓰 레저의 대사를 뒤섞으면 요상한 답이 하나 나온다. 지금의 혼돈은 어쨌든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다. 혼돈의 실체는 너무나 복잡한 것이다. 하지만 이 혼돈을 이겨 나가기 위해서는 결국 '해보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어느 날 (역시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하니까 영화투자에 꽤나 경험이 있다는 어떤 사람이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거 참 평론가들이란 영화를 보면서 이상한 생각들을 하는 사람들이구만." 하지만 지금껏 그게 문제였다. 앞으로는 영화투자를 할 때 자꾸 이상한 생각을 많이 할수록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시대에 영화란 이상한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에든 영화란 늘 이상한 그 무엇이었으며 그것이야말로 존재이유였기 때문이다. (*이 글은 격주간 엔터테인먼트 잡지 '프리미어'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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