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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세계=자유롭게 착취하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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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세계=자유롭게 착취하는 세계?

[뷰포인트] 켄 로치 감독의 2007년작 <자유로운 세계> 리뷰

<자유로운 세계>의 제목은 아이러니하다. 구 공산권 국가들에 대비되어 자유와 풍요가 보장된 '자유국가'로서 자유로운 세계이기도 하지만, 대처리즘이 할퀴고 간 뒤 신자유주의의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이 세계는 켄 로치 감독에 의하면 '자유롭게 다른 이를 착취할 수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이 영화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영국 런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약속의 땅 미국에 어떻게든 뿌리내리기 위해 발버둥치며 불법이민과 영주권을 위한 위장결혼도 불사하는 인물들이 우리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심심찮게 등장했던 게 불과 90년대의 일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 서울 시내 어디에서건 한국말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을 보기가 어렵지 않아졌고, 한국의 서울 역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기치 하에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이주노동자의 인권문제도 우리 사회의 중요 쟁점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주노동자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 그리고 이것이 전제하는 바 인종적 편견의 시선(그것이 인종차별인지 인식도 못한 채)이 횡행한다.
자유로운 세계
노동자들의 친구 켄 로치는 언제나 노동자들의 편에서 영화를 만들어왔지만, <자유로운 세계>는 조금 다르다. 이 영화에서는 생존을 위해 위험스레 국경을 넘은 이주노동자가 아닌, 그들을 착취하는 여성, 앤지를 주인공으로 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한 것은, 앤지라고 탐욕으로 똘똘 뭉친 대단한 자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앤지 역시 나름의 고충과 사정이 있음을 절절히 묘사하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실업자 신세가 된 남편과 이혼하고 부모에게 아이를 맡겨놓은 싱글맘 앤지 역시 직업소개소에서 피고용인의 입장이며, 여성이기에 성희롱을 당하고 이에 저항했다가 부당해고를 당한다. 친구와 함께 직업소개소를 열고 직접 뛰며 동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하지만, 그녀 역시 자신이 알선한 공장에서 돈을 떼인 신세다. 아이와 함께 살기 위해, 그리고 번듯한 사무실을 내고 제대로 사업을 하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뛰는 앤지 역시 냉혹한 자본주의의 먹이사슬에서 그리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는 못 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앤지의 고충과 고통을 묘사한다 해서 그녀의 행동과 선택을 모두 두둔하거나 변호하고 있는 건 아니다. 영화는 그녀가 애초에 동정심에서 불법이주자에게 일자리를 알선했다가 점차 탐욕으로 타락해가는 과정을 세심하게 묘사한다. 처음엔 나름의 변명거리가 있었던 그녀도 나중으로 갈수록 점차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이의 목숨 따위는 상관없다는 식의 선택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의 사정과 논리에 십분 공감했던 관객이라도 그녀가 이민국에 전화를 하는 시점까지 되면 친구인 로즈도 치를 떨듯 그녀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버렸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본래 심성은 착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착취자가 돼가는지, 그들을 그런 괴물로 만드는 약육강식의 야만적인 문명사회의 일면이란 게 무엇인지 똑똑히 목격하게 된다. <자유로운 세계>가 불편한 것은 바로 자신을 가해자보다는 피해자로 자신을 위치짓는 게 일반적인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이 이 자본주의의 먹이사슬에서 얼마든지 다른 이들을 착취하는 위치에 놓일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사실을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작은 선의마저 더욱 가증스러운 위선과 잔혹한 가해가 될 수 있다.
자유로운 세계
누구든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10대 때, 혹은 20대 때 옳지 않다고 여겼던 일들을 스스로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도 피해를 당했기 때문에,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한 어쩔 수 없다고, 밟지 않으면 밟히니까, 윤리적 판단 같은 건 체념하며 그저 살아남기에만 골몰할 것인가. 켄 로치가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자 한 것도 우리 모두 착취자라는 식의 '대책없는 죄책감'은 분명 아닐 것이다. 오히려 '죽거나 죽이거나'의 극단적 선택을 강요하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비극의 시스템을 직시하기를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거기엔 비록 다른 노장감독만큼 부드럽거나 자애롭지는 않다 해도, 분명 무한 경쟁의 야만의 시대를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안쓰러운 염려와 걱정이 묻어 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예리하고 파워풀하며 '짱짱한' 영화를 만들고 있는 켄 로치 감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진정 존경할 만한 아버지 감독'의 풍모를 전해주고 있다. 제발 앞으로도 오래오래 영화를 만들어 주시기를. 9월 2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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