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미적지근했고 응답은 두루뭉술했다. 최고의 핫이슈인 불교계 반발이나 재논란 조짐을 보이는 대운하에 대한 특화된 질문이 없었고 방송정책을 둘러싼 공방도 질문에서 빠졌다. 응답은 원론으로 일관했고 여기에 자화자찬이 더해졌다. 그나마 구체적인 내용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것들이 태반이었다.
'대화'가 '김 빠진 사이다'가 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형식이 문제였다.
100분간 20개가 넘는 질문을 소화하려 한 게 무리다. 대통령의 모두 발언과 마무리 발언시간을 빼고 사회자의 이음 멘트를 빼고 나면 항목당 질문·응답 시간은 길어야 3∼4분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질문에 날을 세우고 답변에 알멩이를 채운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봤자 질문과 응답 모두 단문형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버릴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니까, 국정의 최고책임자이니까 정치·경제·외교·안보·사회·문화를 두루 다뤄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런 형식을 고수하는 한 누가 패널석에 앉든, 누가 주빈석에 앉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모든 걸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결과를 빚는다.
특화해야 한다. 대통령과 정말 진지하게 '대화'하려면 주제를 특화해야 한다. 그래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가능해지고 맥락과 실태를 두루 아우르는 응답을 유도할 수 있다.
전범이 없는 게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줬다. '검사와의 대화'에서, 그리고 '기자실 통폐합 토론'에서 보여줬다. 국가적 이슈가 된 하나의 사안을 놓고 심도 있는 '대화', '끝장 토론'을 벌이는 장면을 연출한 바 있다. 이 형식을 차용해야 한다.
반론이 나올지 모르겠다.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주무부처 장관이 설명하면 된다는 반론이다. 그래야 더 구체적이고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흘려버릴 얘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주장도 아니다.
개별 정책이 말 그대로 정책의 범주 안에서 논란이 되는 건 장관이 설명해도 된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하다. 언론과의 개별 인터뷰를 통해, 기자 간담회를 통해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얘기하는 국가적 이슈는 그런 게 아니다. 개별 정책이 정책 범위를 벗어나 정치 쟁점이 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그건 장관이 답변할 사안이 아니다. 정책 요소 외에 정무 요소를 아울러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하나 더 있다. 특정 장관이 전권을 갖고 모든 걸 말할 수 있는 사안은 그리 많지 않다. 한 사안에 여러 부처의 권한과 책임이 얽혀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미국산 쇠고기의 경우 농수산식품부와 외교통상부가 얽혀 있고, 방송정책의 경우 문화체육관광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얽혀 있다.
특정 장관을 불러다 앉혀놓고 국가적 이슈를 다루는 건 문제가 있다.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홍보하는 자리가 아니라 '대화' 과정에서 쏟아지는 국민 여론을 수용해야 하는 자리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건 정책 권한과 함께 정무 권한을 함께 갖고 있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말해야 하고 들어야 한다.
'대화'를 소통의 한 양식으로 설정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일방적 홍보와 훈계가 아니라 꼼꼼히 설명하고 찬찬히 듣고자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소통을 하려면 절대적인 양이 필요하다. 충분한 시간과 풍부한 근거 말이다.
제한되는 것을 염려할 필요는 없다. '대화' 주제가 한 이슈로 국한되는 걸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건 '대화'를 '자주' 하면 풀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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