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임박한 27일 새벽 한진중공업에서 50대 중반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이란 직업이 정말로 무섭다"며 자살,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올해 2월 박일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가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싶다"고 외치며 분신한 이래 두 번째 비정규노동자의 안타까운 자살이다.
***한진중 비정규 노동자, 27일 새벽 목숨 끊어**
한진중공업 마산공장에서 이날 오전 6시50분께 이 회사 촉탁직 노동자로 근무하고 있던 김춘봉(50)씨가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됐다. 김씨의 죽음을 최초 발견한 이 공장 청소원 옥모(65)씨는 발견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옥씨는 "아침에 출근해 청소를 하러 도장 공장 쪽으로 가다가 2층으로 가는 계단에 사람이 목을 매 있는 것을 발견했다"며 발견 당시 상황을 말했다.
편지지 5장에 남긴 김씨의 유서에는 김씨가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떤 차별과 사측의 회유가 있었는지 상세히 기술돼 있다.
유서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20여년간 한라중공업에서 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지난해 4월 사측의 수차례의 퇴직권고와 마산공장을 운영할 때까지 계속 촉탁근무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희망퇴직서에 서명한 뒤 같은해 5월1일부로 마산공장 사내 가스창고 관리업무를 하는 촉탁계약직 노동자가 됐다.
당시 김씨는 현장에서 작업중 다리를 다쳐 병원생활을 10개월 한 뒤 산재 9급 판정을 받았고, 이에 사측은 김씨에게 "재보상금을 지급하는 대신 명퇴를 하면 돈이 좀 작더라도 마산공장 운영할 때까지 촉탁형태로 고용해주겠다"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사측은 약속을 깨고 지난해 5월말경 마산공장에는 수리선 인원만 남기고 부산공장으로 대부분 이전하고 수리선 부분마저도 외주를 주면서 김씨에게 올해를 끝으로 재계약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했다.
김씨는 약속 위반을 지적하며 수차례 관리직들과 면담을 했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고 "안 된다"는 차가운 답변만 돌아왔다. 김씨는 21일째 냉기운이 도는 회사 사무실에서 기거하며 재계약을 위해 사면팔방을 뛰어다녔지만 희망을 발견할 수 없어 끝내 자살의 길을 택한 것이다.
***"비정규직이란 직업이 정말로 무섭다"**
김씨는 유서 끝에 "한진중공업에서도 비정규직이 죽었다는 것을 알면 현재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은 좋은 대우를 해주겠지"라며 "다시는 이러한 비정규직이 없어야 한다. 비정규직이란 직업이 정말로 무섭다"고 말을 맺었다.
현재 한진중공업 노조와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긴급회의를 통해 대책마련 및 상황파악에 주력하고 있고, 민주노총은 상황파악이 끝나는 대로 성명을 내는 등 투쟁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전창현 민노총 경남본부 사무처장은 "고인은 1980년에 한진중공업 정규직으로 입사해 20여년간 근무했다. 지난해 구두로 재계약을 보장받고 촉탁계약직이 된 후 사측이 약속을 번복해 올해를 끝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한 것을 안다"며 "고인의 죽음에는 8백만 비정규노동자의 한과 설움이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 사체는 발견 직후 119 구급대와 경찰에 의해 마산삼성병원에 안치중이다.
다음은 김씨가 남긴 편지지 5장 분량의 유서 전문이다.
***고 김춘봉씨 유서 전문**
24년간 이 회사를 위하여 몸과 청춘을 받쳤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이렇게 밖으로 쫒겨나게 되었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미워할 수도 없지만,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을 정말로 죽이고 싶다. 돈없고 힘없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해도 좋다는 말인가.
그 당시 마산 및 울산 공장에서는 많은 동료들이 명퇴를 하였다. 타의든 자의든 생활건이 멀리 떨어져 불안한 마음으로 명퇴를 하고, 또 나이가 많다고 명퇴시키고 근무지가 편안하다고 명퇴를 시켰다.
나 역시 그 중 한 사람이다. 2002년과 2003년 두차례 시달리며 명퇴 권고를 받았다. 그 당시 관리부장 김XX, 노무차장 이XX 두 사람이 나에게 수없이 권고하였다. 또한 그 당시 산재환자도 보상을 해주면서 일괄정리하자고 하였다.
나는 이곳 현장에서 작업 중 다리를 다쳐 병원생활을 10개월 하였다. 그 후 노동부로부터 9급이라는 산재 등급을 받았다. 회사 노무팀에서 나에게 이러한 제안이 들어왔다. 산재보상보다는 명퇴를 하고 돈이 좀 작더라도 마산공장 운영할 때까지 촉탁근무를 해주겠다고 하면서 나에게 권하였다.
나 역시 많은 생각끝에 촉탁근무로 하기로 하고 명퇴를 하였다. 그 후 2003년 5월1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마산공장 운영시까지 촉탁을 연장시켜 준다는 문구가 없어서 아니된다고 하니 관리부장, 노무차장이 회사 규정상 그러한 문구를 삽입할 수 없으니 이해하여 달라면서 저희 두 사람이 책임지겠다고 하면서 서명을 권하기에 믿고 도장을 찍었다. 그 후 두 사람은 회사 공금을 착복하여 회사에서 해고당하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 나가라고 하니 정말로 미치겠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관리자들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올 6월부터 공장장 이XX, 시설차장 이XX, 관리 김XX 과장 등 관리팀에서는 외주(성광기업)를 주기로 구두 계약을 하며 성광에서 고압가스 교육을 가도록 하였다.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11월23일 면담을 해보니 모두가 끝난 상태였다. 회사는 자기 편한대로 또한 자기들 하고 친하다고 이렇게 할 수 있냐? 한 사람 가정이 파탄하는 줄 모르고...
그 후 공장장 이XX, 김XX 등 많은 면담을 해보았지만 안되었다. 절대 못나간다. 차라리 여기서 죽겠다고 수차 이야기를 하여도 도와주지도 보지도 않았다. 힘없고, 돈없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되어도 되는지 정말 회사는 너무하다.
현재 마산에서는 촉탁근무자가 나 외에 6명이 더 있다. 이들 역시 나처럼 나가라고 하겠지. 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이유로 명퇴 촉탁을 하였다. 부탁도 하고 애원도 해보았지만, 모두 허사다. 계약 만료일만 되면 쫒아 내겠지. 다시는 이러한 비정규직이 없어야 한다. 나 한 사람 죽음으로써 다른 사람이 잘 되면...비정규직이란 직업이 정말로 무섭다.
벌써 혼자서 집에 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잠을 자며 생활한지도 21일째다.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않는구나. 나도 지쳐간다. 저번에 다친 허리가 왜 이렇게 아픈지...꼭 이렇게 하여야만 회사는 정신을 차리는지...
지금 밖에서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고 있다. 꼭 그 사항이 이뤄지길 간곡히 원하고 싶다. 그렇게 하여야만 나같은 사람도 인간대접 받을 수 있지...한진 중공업에서도 비정규직이 죽었다는 것을 알면은 현재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은 좋은 대우를 해주겠지.
차 지회장님, 그리고 권용상, 김동웅, 이홍오, 나의 이러한 고충을 잘 알고 있으리라 믿으며 꼭 이 문제를 풀어주길 바랍니다.
2004년 12월 26일
김 춘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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