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회생하는가 싶었다. 환율을 방치한 책임 때문에, 촛불집회를 미온적(여) 또는 강압적(야)으로 대처한 책임 때문에 자리에서 쫓겨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살아남았다. 두 사람 모두 대리경질 덕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중경 차관이 대리경질 된 덕에, 어청수 경찰청장은 한진희 서울경찰청장이 대리문책(주성영 한나라당 의원 표현)된 덕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달…. 다시 백척간두에 섰다. 강만수 장관은 금융 패닉의 책임론에 시달리고 있고 어청수 청장은 불교계의 원성에 흔들리고 있다.
이런 걸 두고 동병상련이라고 하던가? 반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두 사람이 '붕어빵 경험'을 공유했으니 다른 말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팔자소관은 아니다. 되풀이 되는 우연은 더 이상 우연이 아닌 법, 두 사람이 같은 기간에 같은 경험을 했다면 거기엔 필시 곡절이 있게 마련이다. 뭘까? 두 사람을 '상련' 지경으로 내몬 '동병'이 뭘까?
다른 데 있지 않다. 두 사람의 인사권을 쥔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이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강만수 장관은 경제철학을 공유하는 '동지'이자 신앙을 공유하는 '친구'다. 강 장관이 여론의 뭇매를 맞은 환율 방기도 따지고 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747'을 달성하려다가 빚어진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어청수 청장은 통치철학을 집행하는 '충신'이자 아픔을 잊게 해준 '구원자'다. 어 청장이 물대포를 쏘고 조계종 총무원장의 승용차를 과잉 검문검색하는 사태를 연출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법치'를 실현하려다가 빚어진 일이다.
자를 수가 없다. 이런 사람들을 단 칼에 베는 건 인정상 할 일이 아니다. 도리가 아니다.
감상적이라고 일거에 내칠 일이 아니다. '인정'과 '도리'는 잘 디자인 된 포장지다. 그 '인정'과 '도리'가 이명박 대통령의 '전략'을 감싼다.
강만수 장관은 'MB노믹스'의 화신이다. 'MB노믹스'는 이명박 정부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전략과제다. 그래서 자르기가 어렵다. 강만수 장관을 자르면 'MB노믹스'가 조정될지 모른다.
어청수 청장은 '법치'의 집행자다. '법치'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집행의 효율성을 담보할 핵심 전략과제다. 그래서 솎아내기가 힘들다. 어청수 청장을 자르면 '법치'의 일선조직이 흔들릴지 모른다.
확연해진다. 강만수와 어청수, 두 사람의 사퇴를 둘러싼 공방엔 상당히 무거운 정치적 함의가 깔려있다. 이명박 정부를 끌고가는 두 수레바퀴, 즉 'MB노믹스'와 '법치'의 속도와 수위를 둘러싼 이견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속단하지는 말자. 이런 진단이 이명박 대통령의 '사퇴 불가'를 선언할 것이라는 전망으로 곧장 연결되는 건 아니다.
다른 방법이 하나 있다. 이미 써본 방법이다. 대리 경질하는 것이다. 'MB노믹스'를 대리 구현할 수 있는 인물, '법치'를 대리 집행할 수 있는 인물만 있다면 대리 경질하면 그만이다. 본질은 놔둔 채 분위기만 바꾸는 차원에서 그렇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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