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4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시작해 계룡산 신원사에 이르기까지 장장 200여km 거리를 약 두 달 간 오체투지하며 순례하는 대장정에 나선다. 내년 상반기에는 계룡산에서 임진각까지 간다는 계획도 이미 마련됐다. 정부와 협의해 가능하다면 북한 묘향산까지도 새로운 '길'을 열겠다는 게 가장 큰 목표다.
이날 오후 4시 순례 시작에 앞서 지리산 노고단에서는 천고제가 열린다. 문 신부와 수경 스님 외에도 여러 지인과 취재진이 이 자리에 함께 할 예정이다. 특히 김지하 시인은 대장정의 성공을 기원하는 제문을 손수 지었다. 아래는 김 시인의 제문 전문이다. <편집자>
촛불.
광장의 촛불.
이제 산에 오릅니다.
한반도의 어머니 산들이시여!
우리네 삶의 한(恨) 많은 신명(神明), 쓰라린 중력으로부터만 켜지는 조그마한 초월의 빛을
산이시여!
이 흰 그늘을 받아주시옵소서.
지난 날 쓰라린 고통과 안타까운 희망으로 당신 앞에 슬픈 촛불을 켜든 저 숱한 조상들처럼
지금 여기
우리의 촛불을 다시 한 번 받아주시옵소서.
받아주시옵고 안아주시옵고 그리고 우리의 어두운 영과 캄캄한 삶과 이웃 중생들의 온갖 고달픔과 뒤틀린 우주의 운행을 현실에서 일면 지키며 일면 바로 잡고자하는 대개벽의 한 촛불임을 인정하시고 도와주시옵소서.
감히 아뢰옵나니
물질의 굴레에 갇혀 내내 신음하는 만물의 해방과 자의식의 끝 없는 유전에서 고통받는 우주만유영성의 대해탈과 인간으로부터 비롯되는, 만사가 만사를 깨닫는 후천개벽의 시대를 지금 여기 촛불이 얻고자하고 있습니다.
동서양 모든 선천시대 내내 그저 한낱 보호대상, 훈육대상으로서 꼬래비, 또는 한갓 부엌데기, 노리개감으로서 천덕꾸러기에 지나지 않던 청소년과 여성들, 그리고 어느 시절 어느 세상에서나 변두리로 변두리로만 돌던 쓸쓸한 외톨이 자리 없는 대중들 자신이 이제 그 넓은 광장에 모여 촛불을 켜고 그 역시 천대받던 먹거리들, 생활, 생태, 생명을 맨 앞에 내세우고 오로지 참된 평화 행동을 통해 바로 그 개벽을 이루려고 애써 기도합니다. 생명과 평화의 길을!
촛불.
조용히 타오르는 고즈넉한 개벽.
타오르면서도 또한 제 자리로 돌아오는 촛불은 지금 우주에서도 켜지고 있습니다.
지구자전축의 북극 복귀 이동.
지지극의 지구운동과 자기극의 지구 및 우주연결운동의 상호 이탈.
대빙산의 본격적인 해빙.
뜨거운 해류와 차가운 해류가 교차하는 남반구 해수면 상승, 시베리아 메탄층 폭발로 인한 극지대의 온난화, 온난화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간빙기로 인한 더위 추위의 교차, 화산, 지진, 해일, 침강, 산불, 토네이도 등의 전례없는 착종은 엄청난 생태계 변동과 함께 대병겁을 몰고 와 그야말로 밝고도 어두운 이중적인 후천개벽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과잉배출입니다.
그러나 원자력은 안 됩니다.
우주 자체의 변동입니다.
그러나 지구탈출은 안 됩니다.
바로 이 엄혹한 대사변앞에 우리는 자그마한, 참으로 초라한 촛불을 켜고 있습니다. 혼돈을 인정하되 혼돈을 빠져나가는 혼돈 그 나름의 생명질서의 촛불!
인간도 우주도 또한 사회도 어둠과 빛이 교차합니다.
여기에 어둠과 빛의 통일인 촛불을 켭니다. 중도입니다.
촛불.
이 촛불 하나를 민족의 어머니인 산에 바치고 산이 우리를 껴안아 우리의 모심과 섬김과 돌아감을 받아들이시어 수천 년 전 옛날부터 내내 그리하셨듯이 이 땅, 이 사람들, 이 천대받던 사람들, 이 생령들의 타는 목마름을 해방해주옵소서.
촛불을 켜고 오늘 산에 제사 올리는 저희 두 사람은 동서양 양쪽 나름의 섬기는 사람, 돌아가는 사람이올시다.
한 사람은 불교의 스님이요 한 사람은 천주교의 신부입니다.
이 두 사람이 지나간 선천시대의 옛 동·서 두 종교의 섬김과 돌아감을 이 자리에서 대신하고 또한 두 종교의 혹시 있었을지도 모를 오류들, 오만과 방만의 죄스러움을 함께 뉘우칩니다.
그리하여 오늘 지리산으로부터 출발하여 다음 계룡산, 그리고 다행히 길이 열린다면 북쪽의 묘향산까지 세 영산을 오체투지로 나아가며 내내 섬김과 돌아감의 촛불을 켜 바치려 합니다.
한반도의 산이시여!
당신은 '한'의 터전이신 솟대요 성지요 절이십니다.
당신의 이름은
'한'!
'한'은 오체투지로 촛불을 켜는 동·서양 양쪽의 두 사람의 섬김과 돌아감의 그 '둘'과
그 '둘'이 오체투지로 촛불을 켜고 나아가는 한반도의 신령한 산, 지리산, 계룡산, 묘향산의 제단인 그 '셋' 사이의 바로 밑에 숨어 있는 근원적 차원인
'한'!
하나요 전체요, 온이요 낱이며, 또한 그 중간이기도 한
한!
그 '영원한 푸른 하늘'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한울'이고 '님'이시니
당신은 곧 선명한 하느님이며
텅빈 부처님이십니다.
그리하여 본디부터
한민족의 우주 주제인 신령한 생명에는 그 해명이 없습니다.
'무(無)' 올시다.
셋(천지인)과 둘(음양)과 한(신이요 무)이 한국의 근본 사상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인류와 세계와 지구와 우주의 미래입니다.
세계통일신단의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촛불은 바로 대개벽이라는 이름의 전인류문명사의 대전환이 바로 이 땅에서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는 희망과 투신의 물결입니다.
우리 두 사람 역시 바로 그 믿음에서부터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부디 촛불의 간절한 소망을 가납하옵소서
신이시여!
우리는 잘 압니다.
한의 둘과 셋.
그리고 그 한의 신령함과 텅 빔.
바로 그리하여 오늘 산 앞에서 우리가 바치는 이 촛불, 이 푸른 별의 원만함이 근원적으로 보장된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잘 압니다.
'남쪽 별자리 원만하면
북쪽 은하수가 제자리에 돌아온다.'
북쪽은하수에 관한 이 예언이 바로 민족통일이면서 후천개벽임을 우리는 이미 잘 압니다.
또한 잘 압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오체투지가 머지않은 날 백두산 천지의 텅빈 검은 돌의 캄캄한 그늘을 한라산 백록담의 신령한 붉은 돌의 눈부신 빛과 함께 가까이 느끼는 다섯 산의 예감이라는 것을.
땅과 바다, 끝남과 시작이 함께 있는 남북융합, 동서화해와 선후천통합의 확인이라는 것을.
촛불.
광장의 촛불.
이제 산에 오릅니다.
한반도의 어머니 산들이시여!
부디 우리의 이 흰 그늘을 받아주시옵소서.
단기 4337년
중역 무자년.
서기 2008년
불기 2552년
9월 4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서서
천주교 신부 문규현
불교 스님 수경
함께 촛불을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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