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일간 <더 타임스>가 외환당국의 환시장 개입 실패와 한국은행의 투자채권 평가손실로 한국의 금융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이른 시일 내 만기가 도래하는 단기채 비율에 비춰볼 때 우려스러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CLSA 이코노미스트 "외환시장 개입,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게임"
1일 <더 타임스>는 "한국이 골치 아픈 원화로 인한 문제가 쌓이면서 '검은 9월'로 향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와 같이 밝혔다.
이 신문은 "한국 정부의 패니매, 프래디맥에 대한 과도한 투자와 기타 미국의 공사채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5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과도한 유동성 잠재 위기가 생겼다"며 "일부에서는 서울이 더 이상 원화의 고공비행을 막을 탄약을 갖고 있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한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무익했다'고 평가하며 그 근거로 지난 7월에만 200억 달러의 외환을 시장에 퍼부었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점을 들었다.
실제 환율 상승세는 9월 들어서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날 장중 원-달러 환율은 1100원 선을 넘어설 정도로 폭등하며 3년 10개월 만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더 타임스>는 이와 같은 실패에 대한 크레디 리요네 증권(CLSA) 이코노미스트와 브로커의 말을 인용하며 "지난달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44개월 만에 최저치로 내려갈 정도로 흔들리고 있고 중앙은행의 외환시장 개입 강도는 점차 작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CLSA 이코노미스트들은 "한국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게임"이라고 말했다.
상황은 더욱 드라마틱하게 나빠질 수도 있다고 이 신문은 전망했다. 67억 달러에 달하는 외채 만기가 이달부터 도래하는데 이들 중 상당액이 만기 즉시 해외로 빠져나간다면 원화가치 인하(환율인상) 압력은 더 커진다는 얘기다.
외환보유고 자체가 문제
<더 타임스>는 한국 정부가 "문제없다"고 공언하는 한국의 외환보유고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적정수준 이하라는 지적이다.
이 신문은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2470억 달러다. 그런데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이머징 마켓 경제는 9개월 분 수입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의 외환을 보유해야 한다. 이는 약 3200억 달러 정도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외환보유고 수준 자체가 외환 유동성 위기에 충분히 대처할 만큼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편 한국 금융 당국자들은 이 신문의 지적과 함께 한국 내 금융권에서도 심상치 않게 떠도는 이른바 '9월 위기설'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1일 김종찬 금감원장은 주례임원회의에서 "국내.외에서 여러 잠재 리스크 요인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금융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위기설을 부인했다. 그는 또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중장기 외화 유동성 차입에는 애로가 있지만, 단기자본의 차환 연장에는 문제가 없다. 과거와 같은 위기가 올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같은 날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도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저는 9월 위기설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며 경제 불안 심리 확산을 경계했다. 이 당 이한구 예산결산위원회 위원장 역시 "(9월 위기설에) 상당히 근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다만 "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좀 오해받을 소지는 많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한국 당국자들의 부인과 달리 <더 타임스>는 앞선 주장에서 나아가 한국의 단기채비율 대비 외환보유고 수준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에 올해 안에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은 2156억 달러로 현재 외환보유고를 생각하면 100% 커버가 가능하지만 패니매와 프레디맥 사태로 촉발한 미국발 금융위기 추이에 따라 이는 착각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 신문은 그 근거로 홍콩상하이은행(HSBC)의 프레데릭 뉴먼 아시아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를 들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이 보유한 외환보유고의 상당액이 미국 국채가 아니라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모기지 담보 증권이다. 이는 패니매와 프레디맥 사태의 상황이 어떻게 변하는가에 따라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비유동성 자산이 돼 한국을 외부 충격에 더 취약한 국가로 전락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CLSA의 선임 이코노미스트 샤밀라 휠런 역시 "한국이 심각한 경상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환시장 개입의 위험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또 최근 고객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투자자들이 한국의 실질 외환보유고 수준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깨닫는다면 그들은 한국을 버릴 것이며 이는 원화가치 추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진짜 위험(The risk)"이라고 밝혔다.
샤밀라 이코노미스트의 말을 근거로 <더 타임스>는 "비록 지난 1997년 한국을 강타한 것과 같은 금융위기를 예상한 이는 거의 없지만 최근 몇 주는 아시아 3번째 금융대국의 취약함을 노출시켰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최근 날아오르는 인플레이션과 집 소유주들의 대규모 대출은 추가로 강력한 불안정성의 층을 더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 신문은 또 정부 내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과거 월가(街)를 강타했던 자가생산된 결정적인 신용 위기가 한국의 은행 시스템을 유린할 수 있는 '확실한 위험(credible risk)'이 존재한다"고 경고했다.
이 신문은 마지막으로 앞으로 한국 경제에 나타날 현상에 대해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을 근거로 "연체율이 늘어나고 채무불이행과 파산도 증가할 것이며 한국 내 대형 상호투자은행 일부도 파산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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