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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한국에 이병철ㆍ정주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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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한국에 이병철ㆍ정주영은 없다"

글로벌 금융화는 역전 불가능한가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여공들은 24시간 봉제공장에서 일했고, 우리 근로자들은 중동에 나가서 달러를 벌어서 위기를 극복했다"고 회고하면서 1970년대에 대한 향수를 드러냈다.

현대건설 CEO를 지내 기업들의 생리에 대해 나름 일가견이 있다고 자신하던 이 대통령이 '욕먹으면서 규제 완화도 하고, 일부 재벌총수들 사면까지 시켜줬는데 이게 뭐냐'고 재계에 언짢은 심정을 드러낸 일에서도 이 대통령의 70년대식 사고를 읽을 수 있다.

한국 경제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금융화에 편입됐다. 그 결과로 그동안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며 빠른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실물경제는 한없이 왜소해졌다. 고용 없는 성장, 투자 없는 성장이 이미 고착화됐다.

외환위기를 놓고 국내의 문제에서 원인을 찾는 내인론과 세계 자본주의의 흐름에서 원인을 찾는 외인론을 놓고 논란이 일었지만 분명한 것은 외환위기를 통해 한국 경제가 새로운 체제로 탈바꿈했다는 점이다.
▲ 글로벌 금융화에 포섭된 한국에서 더 이상 순수한 의미의 산업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은 지난 98년 소떼를 이끌고 방북하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이찬근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인천대 교수)는 29일 서울 경희대에서 열린 2008 한국사회포럼 쟁점토론 '투기자본과 민주주의'에서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 신자유주의적 워싱턴 콘센서스가 확산되면서 국내외 자본의 성격이 일제히 금융자본적 속성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익숙한 70-80년대식 기업 논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제 더 이상 한국에 이병철(삼성 창업주), 정주영(현대 창업주)은 없다. 또 박정희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중들의 '박정희 향수'는 이윤이 고용과 투자로 이어지던 실물경제시대가 끝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라고 해석했다.

글로벌 금융경제에 포섭됨에 따라 우리 사회는 기업 활동으로 창출된 부가가치 배분에 있어 자본과 노동간 분배율이 급격히 변화했으며, 자본에 있어서도 대자본과 소자본, 노동에 있어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민주 정부'라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금융화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였다.

글로벌 금융화, 불평등한 공포의 균형 체제

이찬근 대표는 "글로벌 금융화는 매우 강고한 구조"라며 이를 무작정 부정해서는 진보적 대안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브프라임 위기 속에서 최근 달러화가 다시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미국의 금융중심국으로서 지위가 얼마나 강고한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글로벌 금융화는 금융의 미국과 실물의 중국이 상호 의존하고 협업하는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에 값싼 상품을 공급하는 신흥국들의 경상수지 흑자가 다시 미국의 금융상품 구입을 통해 미국으로 유입돼 미국의 재정적자를 메워주는, 불평등하기는 하지만 서로가 재미를 보는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관련기사 : 달러화 강세, '제2차 브레튼우즈 체제'의 연장? )

이 대표는 "선진국의 시장과 신흥국의 권위주의적 정권, 그리고 신흥국의 노동자들간에 외견상 '행복한 결혼'이 바로 글로벌 금융화"라며 "이 지구 제국의 순환 메커니즘에 참여하는 모두가 이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이를 깨려고 하지 않는다. 매우 불평등한 공포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를 대체하는 정체성, 소비자.투자자

그는 "글로벌 금융화는 이미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있다"며 "소비자로 값싼 중국 제품을 즐기고 있고, 투자자로 중국에 대한 열을 올리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소비자이면서 투자자인 복합적 정체성은 자본의 이해관계와 일치한다는 것.

그는 "이미 우리 의지로 다스릴 수 있는 일국적 국민경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금융자본적 속성이 강해질수록 자본의 탈국적화는 강해진다"며 "더 이상 순수한 의미에서 한국의 산업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복지국가는 산업화와 일국적 국민경제에서 가능한 대안이었다"며 "복지국가에 대한 기대도 새로운 성찰이 필요하다. 복지국가를 가능케한 사회민주주의 정신을 기억해야겠지만 세부적 메커니즘에 대한 향수는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자본에게 자발적인 사회적 책무를 유도해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는 환상도 버려야 한다"며 "자본은 더 큰 부가가치와 성장을 위해 역주할 뿐이며 형평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정치와 시민사회의 몫"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불행한 변양호가 나와선 안 돼
▲지난 2006년 검찰은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과 외환은행장인 변양호 씨와 이강원 씨 등이 론스타 측과 유착돼 규정과 절차를 지키지 않고 비정상적으로 추진했다고 밝혔었다. ⓒ뉴시스

그는 이어 정치와 시민사회에서 해야할 첫 번째 과제로 "파워엘리트와 자본의 유착을 끊어내는 것"을 제시했다. 단순히 개인의 도덕심을 강조하는 방식이 아니라 파워엘리트가 자본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본과 유착되는 고리를 끊어내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 그는 "더 이상 불행한 변양호가 나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현대차그룹 로비스트 김동훈 씨로 뇌물을 받은 혐의가 인정돼 법정구속된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인수 사건에도 연루돼 있다.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이찬근 대표의 '금융화의 역전 불가능성' 주장에 대해 "미국의 유연한 금융시장과 발전된 금융산업을 기반으로한 금융순환과 상품무역순환을 보건대 일정한 현실적 근거가 충분히 있다고 인정한다"며 "미국, 동아시아, 유럽, 중동 등 사이에서 평등하지 않지만 일정한 이해의 합치가 있고 이런 흐름을 갑자기 끊어낼 때 우리 경제에도 굉장한 충격이 닥칠 것으로 보인다"고 일정 정도 공감했다. 그러나 이 연구위원은 "하지만 금융화의 역전 불가능성에 대한 대안으로 정치와 시민사회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시민사회가 결코 만병통치약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문제제기했다.

최병모 변호사도 "과연 시민사회가 자본에 대항 세력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시민사회의 자본 감시운동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국민국가는 여전히 건재한다"며 "투기자본에 대한 법적 규제를 만드는 것은 국민국가의 책임이고 권리"라고 국가의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복지국가에 대한 이 대표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종태 연구위원과 최병모 변호사는 반대했다. 최 변호사는 "복지국가는 어떤 하나의 이상적인 모델이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 나라가 하나하나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지금도 보편적 복지국가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신자유주의 때문에론'과 '신자유주의 반대론'을 극복해야

글로벌 금융화에 대항하는 정치세력화를 위해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진보세력이 '신자유주의 때문에론'과 '신자유주의 반대론'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자유주의 때문에론'과 '신자유주의 반대론'은 다른 나라도 다 세계화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식으로 민주파의 실패를 정당화하는 알리바이가 되거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한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는 일종의 탈부채감의 언어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화운동세력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거시적 힘에 대응해 민주주의의 가치와 이념을 발전시킬 수 있는 실천 가능한 대안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며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습관적으로 신자유주의 반대를 말하고 체제에 참여한 운동권을 비난하면서 스스로의 순수성만을 주장하는 것은 공허하다"고 말했다.

그는 "진보세력은 통치세력이 될 수 있어야 하고, 유능한 정책엘리트가 될 수 있어야 하고, 재벌과 같이 거대사익 집단에 대해 법의 지배를 실현하면서 대안적인 경제체제를 발전시켜가지 않는 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우리사회 가난한 서민들에 고통을 전가하는 일이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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