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량면에서는 한국 선수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지만 유난히 주목을 받는 선수도 있다. 오는 22일 여자 태권도 67kg 이하급에서 황경선(22·한국체대)과 상대하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셰이카 마이타 모하메드 라시드 알 막툼(28)이 그 주인공이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공주님'이기 때문이다. 그는 2년 전 도하 아시안게임 쿠미테(일본식 공수도의 일종) 종목에서 은메달을 땄다. 처음 공수도로 시작한 공주의 격투기 도전사는 지난 2004년 태권도로 주종목을 바꾼 후 이번 올림픽까지 이어졌다. 그는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에서 전지훈련을 하던 도중 기자회견까지 갖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현빈을 좋아한다"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기량차이가 워낙 많이 나 황경선을 이기고 2라운드로 진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공주는 "첫 번째 상대로 황경선과 같은 최고의 선수와 대결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상위 라운드 진출은 어렵겠지만 동메달 결정전에는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낸 것이다.
귀한 집 아이들 국가대표 선수로
UAE는 엄밀히 말해 영국이나 태국과 같은 입헌군주정 국가는 아니다. 알 막툼 가문을 비롯한 7개 부족으로 이뤄진 연합 국가다. 알 막툼가(家)는 석유자본의 힘으로 '사막의 기적'의 상징 두바이를 다스리는 집안이다. 이 때문에 통칭 이 가문 자녀들은 왕자나 공주로 불리운다.
어릴 때부터 배운 엘리트 체육교육 덕분에 이 가문 자녀들은 이번 올림픽에 자국 대표선수로 출전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UAE 선수단 9명 중 4명이 알 막툼 집안 자녀다. 하지만 좋은 성적을 기대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아흐메드 알 막툼 왕자(45)와 사에드 알 막툼 왕자(32)는 각각 클레이사격 남자 싱글·더블트랩과 스키트에 출전했다. 둘은 사촌형제 지간이다.
아흐메드 왕자는 어릴 때부터 사냥을 위해 총을 잡았다. 서른네 살이 돼서야 사격을 스포츠로 시작한 그는 지난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조국에 올림픽 첫 금메달을 안겨줬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싱글트랩에서 110점을 기록해 전체 30위에 그쳤다. 더블트랩에서도 7위에 그쳐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실제 아흐메드 왕자는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왕족답지 않게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훈련을 두 달밖에 못 했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금메달을 목표로 온 건 아니다. (내 인생에) 금메달 하나면 족하다"고 말했다.
세 번째로 올림픽에 참가한 사에드 왕자 역시 114점을 쏴 전체 선수 중 22위에 그쳤다. 사에드 왕자는 지난해 쿠웨이트에서 열린 아시아챔피언십 대회에서 이 종목 3위에 오른 바 있다.
셰이크 무하마드 빈 라시드 알 막툼 UAE 부통령 겸 총리의 아들인 사에드 왕자는 지난 해 벨로루시의 한 호텔종업원과 결혼해 화제를 뿌린 주인공이기도 하다.
넷 중 막내인 셰이카 라티파 알 막툼 공주(23)는 승마 개인종목에 출전했다. 그는 지난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그 역시 오빠, 언니처럼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사에드 왕자와 마이타, 라티파 공주는 모두 남매지간이다.
올림픽 통해 인연 맺은 왕가의 자손
'고귀한 피'가 올림픽에 출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일전에도 각국 왕가의 자손들은 다양한 종목에 출전해 '평민'들과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며 자국 국민들에게 승부의 세계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UAE의 사에드 왕자와 마찬가지로 브루나이의 제프리 볼키아 압둘 하킴 왕자 역시 남자사격 스키트 종목에 출전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사에드와 마찬가지로 메달권에 들지는 못했다.
지난 2000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한 스페인 남자 핸드볼팀 주장 이나키 우르단가린은 공작이었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참가해 자국 대표팀을 4강으로 끌어올린 우르단가린은 이 대회에서 만난 스페인 크리스티나 공주와 열애 끝에 결혼식을 올려 귀족의 작위를 얻게 됐다. 처음 둘이 열애소식이 알려진 건 지난 97년 스페인 민영방송인 <안테나3>을 통해서다. 하지만 당시 스페인 왕실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올림픽을 통해 왕가의 혈통이 사랑에 빠진 사례는 또 있다. 덴마크의 왕권서열 순위 1위인 프레데릭 왕자는 시드니 올림픽에 요트 대표선수로 참가했다 평생의 짝인 메리 왕세자비를 만났다. 프레데릭 왕자는 왕세자비를 위해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한 호주 대표단을 격려차 방문하기도 했다. 메리 왕세자비는 호주인이다. 둘 사이에 태어난 크리스티안 왕자(3)는 아이답지 않은 근엄한 표정으로 세계 누리꾼 사이에 유명한 스타다.
굳이 선수로 뛰지 않더라도 스포츠 행사에 관여하는 이는 많다. 시드니 올림픽 당시에는 영국의 앤 공주가 영국올림픽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참가한 바 있다. 이번 올림픽에는 모나코의 알버트 왕자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수영대표 선수 출신의 연인 샤를린 위트스톡과 함께 승마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왕가의 혈통이 꼭 좋은 모습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핸드볼 아시아 예선에서 부정 시합 파문이 일어난 근본 원인은 아시아핸드볼연맹(AHF) 회장인 쿠웨이트의 셰이크 아흐메드 알파하드 알사바 왕자 때문이다.
AHF가 왕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쿠웨이트팀에 유리하도록 편파판정을 했다는 상대국의 주장은 결국 스포츠중재재판소로까지 이어졌다. 결국 국제핸드볼연맹이 파견한 심판의 판정 아래 한국과 쿠웨이트의 재시합이 이뤄졌고 한국은 쿠웨이트를 손쉽게 눌렀다. AHF는 끊임없이 "뇌물로 경기 결과를 조작한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역도 메달리스트 국회의원님은 채식주의자? 왕실 자손은 아니지만 '걸어다니는 입법기관' 국회의원도 올림픽 현역 선수로 참여했다. 남자역도 무제한급(105kg 이상)에 출전해 합계 448kg을 들며 동메달을 따낸 라트비아의 빅토르스 스케르바티스(35)가 주인공이다. 이 종목 금메달리스트는 죽은 아내에게 금메달을 바쳐 화제가 된 독일의 마티아스 슈타이너. 스케르바티스는 라트비아농민통합당(Latvian Farmers' Union party)의 현역 국회의원이다. 그의 올림픽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97년 세계선수권대회부터 현역 선수로 활약하며 꾸준히 메달권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인간 기중기' 후세인 레자라데(이란)에 이어 은메달을 땄다. 국회의원의 메달 획득 소식에 라트비아는 열광하고 있다. 그가 따낸 동메달이 라트비아가 이번 올림픽에 처음 얻어낸 메달이기 때문이다. 180cm 키에 몸무게가 146kg이나 나가는 스케르바티스는 거대한 덩치와는 달리 한때 채식주의자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그가 속한 당을 녹색당으로 착각한 한 일본인 기자의 오보 때문에 잘못 알려진 정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기자회견장에서 한 일본인 기자가 '당신은 녹색당원이니 당연히 채식주의자일 것이다. 어떻게 단백질 섭취를 하는가'라고 묻자 스케르바티스는 킬킬거렸다"고 보도했다. 스케르바티스는 '국회의원'하면 떠오르는 근엄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 다음 올림픽을 준비할지 가정을 꾸려야 할지 고민된다"고 말했다. 소박한 말에서 국회의원에게 기대하는 진중함이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그는 솔직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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