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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의 길에서 중국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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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의 길에서 중국을 읽는다

[화제의 책] <레드로드 - 대장정 13800km, 중국을 보다>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변화의 중심엔 물론 '자본주의'가 있다. 중국은 금융, 산업 등에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 '권위주의'와 '민족주의'를 강화함으로써 개방이 몰고 올지 모를 혼란을 잠재우려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중국식' '개방적' 이라는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로 분류되며 '당-국가 체제' 를 가지고 있다. 체제변동의 혼란 속에서도 사회주의 체제가 부정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많은 이들은 '중국 공산당의 정당성'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구 소련이나 북한과 달리 중국 공산당은 인민들로부터 직접 정당성과 신뢰를 부여받았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과정이 바로 '대장정'이다. 대장정을 통해 수립된 중국공산당의 정체성은 이후 반 세기 이상 중국을 이끌어오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지난 3월부터 50일간 자동차로 대장정의 길을 직접 이동하며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변화가 혼재해 있는 대장정의 현장에서 중국의 오늘을 발견하고 이해하고자 했다. 중국인이 아닌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대장정 기행에 나선 것이기도 하다.

지난해 <마주피추 정상에서 라틴 아메리카를 보다>를 펴내며 '손호철의 세계를 가다' 시리즈의 첫 테이프를 끊은 손 교수는 그 후속작으로 <레드로드-대장정 13800km, 중국을 보다>를 들고 돌아왔다.

1934년엔 무슨 일이 일어났나
▲ 레드로드 - 대장정 13800km, 중국을 보다(이매진 펴냄)

대장정은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등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노동자와 농민 8만 5000명을 이끌고 장제스와 국민당군의 추격을 피해 1934년 10월 16일부터 368일간 1만km를 도주한 것을 말한다.

쑨원의 사망 이후 국민당의 실세가 된 장제스는 1934년 5차 공산당 토벌을 일으키며 100만 대군을 이끌고 장시성으로 쳐들어왔다. 수적 열세와 자원의 부족을 직시한 홍군은 루이진의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임시정부를 버리고 머나먼 대장정의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대장정에 나선 홍군은 스물 네 개의 강과 열여덟 개의 산을 넘는 험난한 여정을 펼쳤다. 종착지인 산시성 옌안에 도착했을 때는 남은 인원이 고작 8000명에 불과했다.

서양인 최초로 홍군을 인터뷰해 서양세계에 대장정을 알렸던 에드거 스노우는 <중국의 붉은 별>에서 대장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모험, 탐사, 발견, 인간의 용기와 연약함, 환희와 승리, 고통, 희생, 충성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점철하는 수만 명 젊은이들의 꺼질 줄 모르는 열정과 결코 좌절하지 않는 희망, 그리고 그저 경이롭기만 한 혁명적 낙관주의 이것들 모두가, 아니 그 이상의 것들이 근대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웅장한 이 장정의 역사 속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 같았다"

홍군의 엄격한 규율

대장정은 국민당의 추적을 피하는 '행군'의 시기인 동시에 중국 공산당의 교리를 실행하고 정립하는 '혁명'의 시기이기도 했다. 홍군은 농촌을 이동하며 게릴라전을 펼쳤고 이 와중에 지주들을 재판에 회부에 처형하고 회수한 토지를 농민들에게 분배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으레 혁명군들이 저지르기 쉬운 만행들을 홍군은 저지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원과 군사력, 미국으로부터의 원조를 등에 업은 국민당군이 고작 8만에 불과한 홍군을 쉽게 제압하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홍군은 농촌에 머무를 때 엄격한 규율을 지켜 농민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그들 중 일부는 홍군에 편입되기도 했다.

마오쩌둥이 만든 규율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가령 '민가를 떠날 때는 (잘 때 사용한) 문짝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잘 때 사용한 짚단도 묶어서 제자리에 갖다놓는다', '빌려 쓴 물건은 모두 돌려준다', '농민과 한 거래는 신용을 지킨다', '위생에 신경 쓰고 변소는 민가에 피해를 주지 않게 멀리 떨어진 곳에 세운다' 등과 같은 것이다.

필자는 "언제 읽어보아도 그 구체성에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며 "한국의 진보운동도 다시 대중의 신뢰를 되찾으려면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여덟 가지 주의사항처럼 구체적인 행동지침이 필요한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오지에서 보여진 중국의 문제

손 교수의 대장정 기행은 과거의 흔적 위에 덧씌워진 현재의 중국을 읽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대장정의 행로는 소수민족이 사는 마을과 오지 등이 포함돼 대외적으로 부각되는 중국의 대도시와는 다른 면모들이 드러났다.

혁명의 유적지는 관광산업으로 탈바꿈하여 마을 주민의 주요한 소득원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연계된 관광상품의 부재로 그 곳을 찾는 이들은 드물었고 주민들은 가난했다. 중국의 국주인 '마오타이'가 생산된다는 마오타이 마을조차도 주류회사에게만 이득이 돌아가 주민들의 원성이 높았다.

중국의 빈부격차 문제는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빈부격차를 나타내는 지수인 지니계수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빈부격차가 가장 작은 나라는 스웨덴으로 지니계수가 0.211이고 빈부 격차가 가장 심한 미국은 0.368이다. 중국은 개혁개방 전 0.2 수준이던 지니계수가 1981년에는 0.3, 2000년에는 0.417를 기록했고 2005년에는 0.496이라는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도농 격차와 양극화 문제 외에 환경문제와 에너지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저자는 가는 곳마다 도로 공사로 자연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었고 오지에도 제대로 된 강이 남아 있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또 아무 곳에나 쓰레기가 버려지고 매연이 심해 숨쉬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저자는 가는 곳마다 경유를 사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는 모습을 보았다. 또 많은 지역에서 정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저자는 대장정의 기행을 마치며 이 같은 중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이 대장정의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있다고 제언한다.

"점점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 민족문제, 민주주의 등 21세기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 수단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답하려면 많은 논쟁이 필요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중국이 불평등을 해소하고 화해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농민을 수천 년의 압제와 수탈에서 해방시키고자 한 장정의 정신 바로 그것이라는 사실이다.

21세기 중국에 필요한 것, 그것은 74년 전의 장정 정신에 바탕을 둔 화해사회를 향한 '21세기의 신장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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