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자신의 주 종목이 아니었음에도 진종오 선수는 공기권총 10m 부문 은메달에 그쳐서 "국민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진종오에 이어 동메달을 딴 북한의 사격 영웅 김정수도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해 섭섭하다"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예 메달권 경쟁 자체가 어려운 종목에 나선 선수들 정도만이 "출전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출전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는 한 광고 카피는 그마저도 인정하길 거부하고 있다.
비단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시상대에서 박태환 옆에 선 중국의 수영 스타 장린의 표정은 확연히 티가 날 정도로 어두웠다. 장린은 이날 자유형 400m에서 중국 기록을 갈아치웠다. 아시아 선수가 백인들이 독식하던 수영 자유형에서 메달권에 든 사실 자체가 올림픽 역사 48년 만에 이뤄진 쾌거다. 그럼에도 장린은 금메달을 못 따 너무 아쉽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남자 유도 60kg급 결승전에서 최민호에 패한 오스트리아의 루드비히 파이셔는 확실히 다른 태도를 보여주었다. 혹시 한판으로 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 서럽게 울던 최민호를 파이셔는 따듯하게 토닥여줬다. 양자 인사가 끝난 후에도 파이셔는 최민호의 손을 번쩍 들어 그가 세계챔피언임을 온 관중들에게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누가 승리자고 누가 패배자인지 그 장면만 놓고 봐서는 판단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파이셔는 올해 유럽선수권대회 우승자다. 우리 기준으로 봤을 때 단순히 결승전에 올랐다고 감격할 수준의 선수가 아닌, 오스트리아의 유도 영웅이다. 그런 선수가 은메달에도 만족한 모습을 보이고 승자의 눈물을 닦아 줄 여유를 가졌다.
왜 한국과 중국, 북한의 선수들은 이렇게 금메달에 목을 맬까? 왜 유럽의 유도 스타는 결승전 패배를 쉽게 받아들임으로써 역설적으로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고 있나?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차이는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의 존재 유무에 있다. 중국은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프로젝트119'라는 국가적 메달 달성 프로그램을 짠 나라다. 노골적으로 말해 올림픽 메달을 따 미국을 꺾겠다는 국가적 사명 달성을 위해 스포츠에 자질이 있는 아이를 어릴 때부터 스파르타식으로 훈련시켜 운동기계로 만들었다. 이렇게 된 마당에는 일등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대회가 올림픽이든, 세계선수권대회든 말이다.
우리나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스포츠 권력도 학벌로 판가름나는 우리나라 학원스포츠 시스템에서 선수의 장래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은 오직 메달이요, 순위다. '특정 스포츠는 특정 대학으로' 가야 장래가 결정되는 우리 스포츠의 고질적 병폐는 이미 유도와 태권도, 쇼트트랙 등 다양한 부문에서 익히 봐 온 터다.
우리나라 축구의 고질적 문제점인 문전처리 미숙과 아시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개인기가 학원스포츠의 병폐에 기인한다는 것은 국민적 상식이다. 이런 체제 하에서 올림픽 참가에만 의미를 둘 선수가 나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스포츠를 국민적 과업의 하나로 생각한다는 점, 즉 국가적 이데올로기의 현실화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도 중국이나 한국 등 민족주의 과잉 국가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중국의 누구, 일본의 누구가 금메달을 딸 때마다 한·중·일 삼국의 인터넷 게시판은 난리가 난다. 예컨대 박태환에 무성의한 태도를 보인 중국 언론을 두고 한국 누리꾼들이 "중국은 역시 안 된다"는 투의 글을 올리는 것이나 일본 누리꾼들이 "왜 일본은 한국을 이길 수 없는가"하는 투의 글을 써대는 현상이 이를 입증한다.
특히 아시아 국가 정부가 스포츠 행사를 국가 발전의 상징으로 이용했다는 데서 혐의는 짙어진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은 일본이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음을, 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이 개도국 이미지를 벗고 세계 무대의 일원이 되었음을 상징하고자 만든 정치 행사였다.
이는 '새로운 제국주의를 갈망하는 중국인의 염원이 과도하게 분출된다'고 비판받는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마찬가지다. 국가적 행사가 성공하기 위한 제1의 조건이 자국에서 열리는 행사에 걸맞은 좋은 성적 내기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올림픽 등 거대한 스포츠 행사에서 일등을 얻지 못했음은 곧 '조국을 대표한 나'가 조국이 바라는 기대상을 채워주지 못했다는 인식으로 선수를 괴롭히기 마련이다. 일등이 아니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영국의 다니엘 고든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천리마축구단>을 보면 매우 이질적인 모습이 자주 나온다. 박두익 등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신화의 주인공들이 하나 같이 "조국의 과업"내지 "(김일성) 장군님의 성원에 힘입어…" 따위의 말을 자주 내뱉는 게 그것이다. 이들은 스포츠에도 '장군님'의 지시를 현실화하려 하고 '조국 인민'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심장이 터져라' 그라운드를 누빈다.
금메달에 목메는 우리의 모습도 이들과 다르지 않다. 이들은 그저 신념을 언어로 구체화할 정도로 학습됐고 우리나 중국의 스포츠팬들은 그렇지 않다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지난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음에도 은메달에 만족할 줄 알던 장미란의 인터뷰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이유는 그가 은연중에 내제된 우리 안의 일등주의를 가벼운 말 몇 마디로 깨버린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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