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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올림픽', 주객이 뒤바뀐 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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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올림픽', 주객이 뒤바뀐 베이징

[기자의 눈] 부시 대통령의 '인권 사랑'을 보며

스포츠 속에는 정치가 숨어 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올림픽은 더욱 그렇다.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라고만 불리기엔 그 안의 여러 나라들 간의 정치적인 각축전이 치열하다.

실제로 많은 나라들이 올림픽과 월드컵 개최국이 되려고 열을 올리는 것도 국가적 자부심, 국제사회의 지위, 국가의 부활 등을 얻기 위한 것이다.

올림픽 개최를 통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중국의 정치적 욕망도 크지만, 중국을 일명 '올림픽 서클' 안에 편입시켜 미국식 '가치'로 압박하고자 하는 미국의 의도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베를린, 서울, 멕시코,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 역사상 올림픽을 정치적 수단으로 가장 잘 이용한 사람은 역시 히틀러였다. 독일은 히틀러와 나치가 권력을 잡기 훨씬 전인 1931년 올림픽 개최국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이후 집권한 히틀러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통해 나치 독일의 부상을 과시하고 정치체제와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적극 이용했다.

멕시코는 1968년 국가의 자부심을 고취하고 대외적 신인도를 높이기 위해 올림픽을 개최했다. 당시 멕시코는 빠른 경제성장을 경험한 후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처음으로 올림픽을 개최했다. 그러나 올림픽이 개최되기 열흘 전 정부가 폭력적인 학생탄압에 저항하는 학생 500여 명을 대량학살하는 등 정치적 불안정이 잦아들지 않았다.

한국도 1988년 서울 올림픽을 통해 대외적 이미지를 제고하고 공산국가들과의 '스포츠 외교'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을 개최하는 중국 역시 올림픽 개최에 열을 올린 것은 정치적 이유가 크다. 서양이 오랫동안 인정하지 않았던 중국의 존재를 인정받고 당당히 세계의 일원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욕구에서다.
▲ 부시 대통령은 베이징 올림픽 개막을 하루 앞둔 7일 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의 인권 탄압 행위를 강하게 비난한다"며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뉴시스

주객이 전도된 베이징 올림픽

올림픽에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측은 이처럼 주로 개최국 정부였다. 하지만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개최국 중국 만큼이나, 손님으로 온 나라들 역시 정치적 의도를 잔뜩 품고 올림픽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구 참가국들은 티베트 문제, 미얀마 문제, 다르푸르 문제, 중국의 민주화 문제 등을 거론하며 이참에 자신들의 '착한' 민주주의를 중국에 이식하겠다는 듯 각종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있다. 부시 대통령은 베이징 올림픽 개막을 하루 앞둔 7일 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의 인권 탄압 행위를 강하게 비난한다"라며 포문을 열었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은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며 자유로운 노동의 권리와 집회 소집의 자유 등을 주장한다"며 "중국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은 자유를 확산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반체제 인사들과 인권 변호가들, 종교 활동가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구금 행위를 강하게 반대한다'며 "미국은 중국의 개방을 바라고 있으며 저버리는 행위가 아닌 정의를 원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시장 개혁이 자유화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미국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가?

부시 대통령은 부인 로라를 태국에 있는 버마(미얀마) 난민 캠프에 보냄으로써 버마 문제도 건드렸다. 로라는 버마 군정의 학대를 피해 국경을 넘은 소수민족 카렌족(族) 3만8000명이 수용된, 태국 내 멜라 난민 캠프를 방문했다. 버마 군정의 뒤를 봐주는 중국에 대한 무언의 시위였다.

중국의 반발로 경국 무산돘지만 부시 대통령은 개막식 이후인 10일 베이징의 기독교인 집에서 예배를 보며 '종교의 자유'를 설파한다는 일정을 잡기도 했다.

미국은 수단 다르푸르의 난민 출신 육상선수 로페스 로몽을 올림픽 개막식에서 대표단 기수로 선정했다. 학살극을 벌이는 수단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온 중국으로선 심기가 불편해질 부분이다.

부시 대통령이 지적한 문제들은 물론 중요하다. 성화 봉송 기간 유럽 국가들과 일본, 한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불상사는 국제사회가 중국에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중국은 그같은 요청을 외면해선 안 된다.

그러나 미국이, 그것도 부시 대통령이 그같은 일에 앞장서는 것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그 안에는 인권과 민주주의 확산을 명분으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적 의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다르푸르에서 수십만 명이 학살될 때는 사실상 방관하다가 이제와 수단 출신을 기수단으로 내세우며 다르푸르 인권의 파수꾼인양 하는 것도 어색하다. 수단의 석유 자원을 둘러 싼 서구 열강의 각축이 다르푸르의 비극을 낳았다는 점에서 미국 역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동서 냉전의 대결장이었던 1960년 로마 올림픽,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며 서구권 국가들이 참가를 보이콧했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그에 대한 동구권의 '복수 보이콧'이 있었던 1984년 LA 올림픽. 올림픽의 역사는 이처럼 정치적 대결로 얼룩졌었다.

그러나 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초강대국 미국과 부상하는 강국 중국이 그 어느 올림픽보다 치열하게 정치적 대결을 펼쳤다는 오명을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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