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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 소녀시대의 음악이 두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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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 소녀시대의 음악이 두려운 이유

[대중음악의 오늘을 보는 시선 ②]

대중음악은 대중과 가장 가까운 문화임에도 피상적으로 다뤄져 왔다. 특히 위기에 처했던 한국의 대중음악은 최근 산업적으로, 내용적으로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평은 대중음악의 활력을 더욱 높이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프레시안>은 음악비평웹진 <보다>와 함께 대중음악의 현실을 짚어보는 기획을 12회에 걸쳐 연재한다. 김민규, 김봉현, 서정민갑 등 젊은 음악평론가들이 참여하는 이번 기획에서는 아이돌, 리메이크, 인디음악, 음악페스티벌 등 대중음악계의 주요 키워드를 차례로 짚어본다.

현재 <프레시안>에 고정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보다>의 일원인 나도원 대중음악평론가는 "대중음악의 음악적·환경적 지형을 살펴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고 대중음악 전반을 밀도 높게 그려내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번 기획은 매주 2편씩 <프레시안>과 <보다>(
http://www.bo-da.net )에 동시에 연재된다. <편집자>

샘플링, 오마주의 패러디

원더걸스는 작년 5월, '텔 미(Tell Me)'의 뒤를 잇는 '소 핫(So Hot)'을 발표했는데, 그 직후 재미있는 소식이 이어졌다. 우선 네티즌 사이에서 '소 핫'이 유리스믹스(Eurythmics)의 '스윗 드림즈(Sweet Dreams)'를 '샘플링'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는 "유사점이 거의 없으며, 그렇게 유명한 노래를 무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뉴스가 흥미로운 이유는 '소 핫'이 스테이시 큐(Stacey Q)의 '투 오브 하츠(Two of Hearts)'를 샘플링 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텔 미'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차이인가.

우선 이제는 낯설지 않은 '샘플링'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아보자. 샘플링은 이미 존재하는 녹음 결과물을 새로운 음악적 작업에 사용하는 방법을 말한다. 예를 들어, 빅뱅의 '크레이지 독(Crazy Dog)'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에서 따온 신디사이저 소리가 그대로 깔려있다. 이 곡을 예로 드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곡의 유명한 사운드가 변형 없이 그대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정의대로라면 이승철의 '소리쳐'가 후렴 부분에 대한 표절 논란을 겪을 때, '그것은 표절이 아니라 샘플링'이고 원작자에게 로열티를 주기로 '사후계약' 했다고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사후 계약'이라는 것이 양식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따질 필요도 없이, 어떤 멜로디가 비슷한 것은 샘플링이 아니라 단순하게 그냥 비슷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곡 어디에도 '리슨 투 마이 하츠(Listen to My Hearts)'에서 온 '샘플'은 없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경제 논리였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서 한국 가수들의 노래와 무대를 '카피'하는 것에 대해서 부러 소송이나 기타의 조치를 취했다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네티즌 사이에서 원더걸스의 '소 핫'이 유리스믹스(Eurythmics)의 '스윗 드림즈(Sweet Dreams)'를 '샘플링'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는 "유사점이 거의 없으며, 그렇게 유명한 노래를 무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eurythmics.com

이것이 단순히 용어상의 혼란에 불과하다면 '텔 미'와 '소 핫'이 특별히 흥미로울 이유는 없다. 물론 샘플링이 하나의 작법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심지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것도 간과할 부분은 아니다. 잘 쓰인 샘플링은 좋은 악기 연주나 노래 실력, 혹은 훌륭한 곡 쓰기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곡을 구성하는 창의(創意)의 일부다. 하지만 '말하자면 편곡입니다' 식의 잘못된 설명을 넘어, '표절 아니면 샘플링' 같은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의식은 현대 대중음악의 주요한 작업 방식을 '훔쳐다 쓰는 것'이나 '미리 밝히면 그나마 양심은 있는 정도'의 행위로 끌어내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최근 이런 경우들이 반복되면서, 샘플링이 표절 논란을 회피하거나 사전 차단하는 대응 논리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샘플링 여부를 공식적으로 밝힌 '텔 미'에 '투 오브 하츠' 샘플이 얼마나 사용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샘플이 아예 없어도 논의는 달라지지 않는다. 많은 네티즌들, 특히 스테이시 큐의 원곡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딱 들어보니 스테이시 큐 생각이 났다'거나 '이거 비슷하긴 비슷한데 이런 것이 샘플링인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텔 미'와 '샘플링'으로 검색한 결과를 아주 잠깐만 훑어봐도 알 수 있다.

아쉽게도 이런 느낌이 '투 오브 하츠'에서 가져온 샘플에서 비롯한다고 하긴 어렵다. 둘 사이에는 이유가 다른 유사점이 훨씬 많으며, '아아아아아 니쥬'를 '테테테테텔 텔미'로 바꿔서 그렇다는 이야기는 우스개로 남겨두는 것이 옳겠다. 미리 밝혔다는 것을 제하면 '소 핫'과 다를 바가 없다. '소 핫'이 '스윗 드림즈'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논란이 일고 다수의 사람들이 동일한 인식을 하는 과정이 같다는 말이다.

이승철과 원더걸스의 경우가 표절인지, 아이디어 수준의 활용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판단하는 것은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그들을 비난하거나 그들만을 이야기할 생각도 없다. 예는 이미 무수하다. 이 글의 목적은 그들의 곡은 샘플링을 활용하지 않았거나, 혹은 그 단어만 이상한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뮤직비디오 표절은 '오마주' 혹은 '패러디'라고 주장하고, 무대 및 퍼포먼스 베끼기는 '아이디어 차용'이나 급기야 '재연' 같은 단어를 들먹이는 것과 동일하다.

곧 대중예술과 관계된 용어의 의미를 혼동하거나 의도적으로 악용하고 있으며, 그에 관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 법리(法理)와 객관이 아니라 양심과 창의의 문제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모든 오마주와 패러디와 재연과 샘플링은 그것의 바탕이 된 원전(原典)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알려주기 전에 본인이 먼저 아는 법이다. 쿨의 '이 여름 Summer'는 재미있고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는 우스운 이유가 그렇다. 확실히 요즘의 샘플링은 아이비 측이 오마주라고 주장했던 광경을 패러디하고 있다.

리메이크가 '다시 만들어' 내는 것

그런데 지금까지의 귀찮은 과정을 한 번에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보통 리메이크라고 한다. 다른 가수의 노래를 다시 부르고 자신의 개성을 담거나 '재해석'하는 작업을 일컫는다. '커버(Cover)'라는 일반적인 단어를 제치고, 주로 영화나 텔레비전 등의 영상매체에서 쓰이는 용어가 한국에서는 유독 음악계에서 사랑 받는 이유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그냥 다시 부르는 것이라고 하면 노래 못하는 사람 찾기 힘든 한국에서 그다지 매력적인 상품이 되지는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일단 노래방에 가도 다른 사람들 노래는 안 듣고 자기 부를 곡을 찾아 검색 삼매경에 빠지는 우리가 아닌가.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던, 과거의 좋은 노래들을 다시 소개하고 새로운 감성을 불어넣는 작업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좋은 리메이크 작업은 아티스트의 취향과 영향을 드러내고 자신의 선택과 개성을 통해 청자들에게 새로운 음악적 경험을 제공하는 '큐레이팅'의 의미까지 가질 수 있다. 여기서 굳이 '큐레이팅' 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故김광석의 '다시 부르기' 시리즈 같이 극히 모범적인 예시를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부르기'의 곡들이 원래 누구의 어떤 노래인지 모르더라도, 그것들을 소개받고 발견했으며 감동과 위안을 얻었다. 그 곡들이 이미 존재하던 곡들이라고 해서 김광석의 음악적 열정이나 창의적 활동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요컨대 샘플링과 마찬가지로 리메이크 자체에 대해서 좋고 나쁘다는 가치판단을 할 수 없다. 음악은 물론이고 모든 창작 활동에서 빼어남이란 단순히 새로운 어떤 것(newness)이 아니라 창조력(creativity)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 그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아쉬운 것은 일종의 동업자 의식, 혹은 최소한의 상도덕이다. 작년에 큰 화제가 되었던 김동률의 '하소연'을 중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김동률홈페이지

그러나 '다시 부르기' 이후 10년이 넘도록 비슷한 경험을 찾기는 어렵다. 근래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 '리메이크 앨범'들은 이미 구축한 인지도와 익숙한 곡들을 합쳐 손쉬운 상업적 결과를 얻고자 한다. 그래서 앞서 말한 노래방 이야기는 농담이 아니다. 그저 스튜디오에서 잘 녹음된 것에 불과한, 노래방 CD나 다름없는 앨범들이 무수하다. 물론 그것이 어떤 나쁜 일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분명 대중들의 선택을 받고 있는 옛 노래들이 있고, 누군가 그 필요를 채워주고 있다. (원인과 결과 사이의 전후 관계를 따져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려운' 음악계에서 소소한 투입비용 대비 적절한 성과를 얻어내고 있으며, 시장이 불러낸 현상인 만큼 시장이 원치 않으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아쉬운 것은 일종의 동업자 의식, 혹은 최소한의 상도덕이다. 작년에 큰 화제가 되었던 김동률의 '하소연'을 중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남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면 법적으로 권한을 위임 받은 저작권협회에 연락을 취하고 정해진 대가를 치르면 된다. 그 노래를 만든 사람이나, 원래 불렀던 이에게 의사를 타진할 필요조차 없다. 이 시스템적 결함은 우리 사회가 창작을 얼마나 가벼이 여기는지에 대한 상징과도 같다. 그것은 아주 뿌리가 깊어서 스스로 아티스트를 자처하는 이들마저 때때로 타인의 작품을 값만 치르고 가져다 쓴다.

무엇을 위기라고 부를까

부족한 창조력이 약간의 부주의와 소홀한 양심, 교묘하게 구축된 변명의 논리와 만날 때 대중음악은 위기에 처한다. 누구도 그 가치를 배려하지 않는 창작물이 대중으로부터 버림받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샘플링과 리메이크가 그 자체로 어떤 원인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요즘 음반에는 대부분 피아노라는 악기를 쓴다고 '피아노의 전성기'이라고 하지 않듯이, 현재의 상황이'샘플링과 리메이크의 범람'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둘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선택지이고, 오직 그 결과로만 판단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오해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왜곡한다. 다음으로는 노래가, 연주가, 작곡이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작은 구멍을 크게 밝히는 돋보기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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