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단체 행동에 나선 이유는 경영여건 악화 때문이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은 23일 중소기업 경영난의 3대 요인으로 원자재가 폭등과 환헤지 파생상품 손실, 이자부담 가중을 들었다. 이 때문에 정부 당국과 금융기관, 대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새사연은 지적했다.
3중고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중소기업에 가장 먼저 타격을 준 것은 원자재 가격 폭등이다. 물론 이는 어느 정도 우리의 통제 범위 밖의 일이다.
문제는 원자재 가격은 상승했지만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올려주지 않는데 있다. 일례로 철스크랩(고철)과 선철(쇳덩어리) 가격은 각각 190%, 121% 올랐지만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납품하는 주물제품 가격은 20~30% 밖에 인상되지 않았다. 중소기업인들이 하도급 계약서에 원자재 가격 반영을 명시하는 납품가 연동제 법제화를 요구하는 까닭이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납품단가 조정협의제를 제안했다. 하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곧바로 나왔다. 사실상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한 중소기업에 대기업과 동등한 교섭력을 가질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올해 초 정부가 고집한 고환율정책이 불난 데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새사연은 "고환율 때문에 5월에는 환율에 의한 수입가격 추가 상승분이 무려 17%에 달했다"며 "이 때문에 가뜩이나 32%까지 오른 달러표시 수입가격 상승률을 49%까지 끌어올리는 역할을 고환율 정책이 담당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올해 2월 이후부터 원화가치가 평소보다 더 급격히 하락한 주원인은 결국 정부의 고환율 정책이라는 얘기다.
작년 말 붐을 이룬 키코(KIKO)도 중소기업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원인이 됐다. 올해 2월까지 키코 상품계약을 맺은 대부분 기업이 올해 환율상한선을 950원선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키코는 대표적인 환위험 헤지용 옵션거래 상품이다. 시장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 머무르면 옵션 만기 시 행사환율과 시장환율의 차액만큼 이득을 볼 수 있지만 환율이 급등하면 가입 기업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올해 상반기 환율은 최고 1043원 선까지 폭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도 중소기업의 기대만큼 하락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새사연에 따르면, 1/4분기 중소기업 환헤지 파생상품 손실액은 1조6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와 업계에서 가장 큰 손실액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하는 2/4분기 평가손실 규모는 두 배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여기에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자 상환부담마저 중소기업의 목을 죄고 있다.
작년 말 기준 중소기업의 단기차입금 상환 능력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이다. 특히 현금흐름 이자보상 비율이 100% 미만에 그쳐 현금 수입으로 이자비용도 충당하지 못하는 기업이 31.3%로 늘어났다. 3개 기업 중 1개는 돈을 벌어봤자 이자도 갚지 못한다는 얘기다.
정부, 대기업, 금융기관도 책임 있다
중소기업의 위기는 대기업 위기보다도 고용 면에서 보면 더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 고용의 88%를 중소기업이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수 진작의 첫째 요인으로 새사연은 중소기업 살리기를 꼽았다.
문제는 중소기업이 원자재·키코·금리의 3중고에 시달리며 회생할 여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새사연은 이는 단순히 중소기업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밝혔다.
고환율을 조장한 정부와 납품가에 원자재가 인상분을 반영하지 않는 대기업, 환헤지 상품 판매에만 집착하는 금융기관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다.
새사연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환율정책의 실책에 책임을 지는 한편 대기업과 은행으로 하여금 중소기업 지원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는 대기업을 위한 출총제 폐지나 법인세 부담 경감 등의 정책을 추진하기보다 중소기업을 규제하고 있는 세 가지 덫을 시급히 풀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병권 새사연 연구센터장은 보고서에서 "3대 악재에 대한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며 "해결의 실마리는 중소기업인이 제시한 해법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