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으로 정보 접근권이나 운용자금 규모가 적은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이 특히 크다. 주요 증권 관련 포털은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 성토 글로 넘친다. 한 누리꾼은 인터넷포털에 '대차거래, 공매도 제도를 폐지하라'는 청원 받기에 나섰다.
그러나 공매도는 지금 하락장에서 '변수'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정도는 아니다. 근본적으로 증시를 짓누르는 외부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매도포지션은 대부분이 공매도
지난달 9일부터 시작된 외국인의 매도공세는 18일에도 이어졌다. 무려 30거래일 내내 이어지는 순매도세다. 이 기간 외국인 처분금액은 8조2983억 원에 이른다.
외국인이 처분한 주식 대부분이 공매도로 보인다. 이 정도로 많이 주식을 처분했음에도 시장에서 차지하는 외국인의 비중은 순매도로 돌아선 때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전날(17일) 외국인의 시가총액 보유비중은 30.4%로 지난달 9일(30.9%)에 비해 약 0.5%포인트 줄어드는 데 그쳤다.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처분한 게 아니라 주식을 빌려 팔아치웠음을 추론 가능하다.
외국인의 공매도가 늘어나고 있음을 추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는 대차거래 규모 증가다. 증권예탁결제원이 지난 4일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주식 대차거래 체결금액은 59조9727억 원으로 지난 해 같은 기간 30조9435억 원에 비해 거의 두 배 가량 증가했다.
특히 상반기 주식대차시장에서 외국인의 차입거래금액은 55조9668억 원으로 전체 체결금액의 93%에 달했다. 대차거래자 절대 다수가 외국인임을 입증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2004년 3조8000억 원이던 공매도 규모는 올 상반기 18조9000억 원으로 불어났다. 이에 따라 시장 전체 매도액 중 공매도 비중은 2004년 1.1%에서 올해 3.1%로 높아졌다.
공매도는 말 그대로 가지고 있지 않은 주식을 시장에 내다파는 거래행위를 뜻한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대주(매도를 위해 주식을 빌리는 행위) 계약 없이 시장에서 반대매매하는 행위(naked short sale)는 금지돼 있다. 개인이 증권사에서 주식을 빌리는 행위는 대주, 기관투자자나 외국인이 주식을 빌리는 것은 대차거래다. 따라서 대차거래 규모가 늘어났다는 것은 곧 공매도 증가로 풀이할 수 있다.
공매도 규모의 증가는 단순히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7일 "헤지펀드와 기타 세련된 거래 주체가 증시 침체기에 이익을 내면서 월가(街)에서 공매도를 위한 대차 비용이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그 규모는 급증하는 추세다. 이 신문에 보도된 런던비즈니스스쿨(London Business School)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6년까지 3년간 공매도 주식 규모는 네 배 늘어나 5조 달러에 달한다. 이에 따라 공매도 수수료도 300% 가량 증가했다.
시장을 저주하는 공매도자
공매도자는 주가가 더 하락하기를 기원한다. 자신이 빌려 판 종목의 주가가 하락해야 이익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투자자 A가 이날 현재가 10만 원인 B종목 주식 10주를 빌렸을 경우, A는 대차거래를 통해 100만 원 어치 주식을 판 것과 같다. 만약 주가가 하락해 B종목 주가가 9만 원이 됐다면 A는 주식 10주를 90만 원에 되사(쇼트커버링) 거래 창구에 갚으면 된다. 10만 원의 이익을 얻는 셈이다.
물론 증시가 상승한다면 반대 현상이 일어나 A는 손해를 보게 된다. 시장이 대세하락기인 지금이 공매도 최적기인 셈이다. 외국인의 공매도가 늘어나는 이유는 그만큼 이들이 우리 증시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자금력이 풍부한 외국인이라면 단순히 주가 하락을 바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마음만 먹는다면 실제로 주가 하락을 부추길 수도 있다. 만약 특정 종목에 단기간 동안 대량으로 공매도가 이뤄져 매도세가 매수세보다 강해진다면 그 종목은 시장가치와 상관없이 시세하락을 연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장에서 끊임없이 '작전세력이 대규모 공매도 후 루머를 퍼뜨린다'는 소문이 나오는 까닭이기도 하다.
연일 계속되는 하락장에 지친 증시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공매도 폐지론이 거론된다. 이날 인터넷포털 다음 아고라 청원방에는 한 누리꾼(알면다쳐)이 '증권시장 병폐화 대차거래/공매도 폐지하라'는 청원글을 올렸다. 오후 4시 35분 현재 1300명이 넘는 누리꾼이 서명한 상태다. 이 청원에 서명한 누리꾼(청솔)은 "대차거래는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주식시장을 돈놀이터로 만들며 투기세력의 배만 불린다"는 입장을 보였다.
"규제가 필요하다"
강한 투기성과 함께 시장의 위기를 부추기는 공매도의 특성 때문에 우리와 마찬가지로 약세장에 골치를 앓는 미국의 관련 당국은 제한조치에 나섰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15일 양대 대출보증 업체인 패니매와 프레디맥 주식에 대한 공매도를 30일 간 제한하기로 했다. 최근 연달아 악화된 실적을 발표한 리먼브라더스,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등 대형 투자은행 주식까지 포함하는 조치다.
SEC는 지속되는 주식시장 급락과 모기지업체를 대상으로 나도는 매각설, 파산설 등의 원인 중 하나로 공매도를 꼽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공매도가 가진 부작용 때문에 강력한 규제조치가 일어났다. 상징적인 사건이 지난 2000년 초 발생한 우풍상호신용금고의 대량공매도 사건이다.
2000년 3월 29일 우풍상호신용금고는 주식운용 손실 만회를 위해 코스닥 상장주던 성도ENG 주식 34만 주를 공매도했다. 당시 성도ENG 유통물량은 28만6000주에 불과했다. 완전히 주가를 뒤흔들 수 있는 분량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부족한 물량이 독이 됐다. 결제대용증 상환일인 4월 4일까지 우풍금고는 13만 주가 넘는 분량을 결제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성도ENG 주식은 결제불이행이 해소될 때까지 무기한 매매거래 정지 처분을 당했고 우풍금고 담당자는 시세조종혐의로 처벌됐다. 이 때문에 금융감독위원회는 그해 두 차례에 걸쳐 거래소 업무규정을 대폭 손질해야 했다.
최근 들어서도 시장 곳곳에서 공매도 급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금감원은 지난 14일 관련 부문 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공매도 때문에 주가 하락한다?
공매도 규제는 특유의 투기적 요인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관련 규제만으로 투자자 피해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지금 증시 침체의 본질적 원인은 글로벌 경기 침체기 때문이다.
최근 유가가 다시 130달러 수준으로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달러 약세 현상이 살아있는 한 불안 요인은 사라지지 않았다. 차익을 실현한 투기자금은 언제고 다시 매력도가 높은 현물시장으로 옮아갈 수 있다. 거기에 달러 약세의 주원인 중 하나인 미국 부동산 시장 침체는 아직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금이 침체의 초엽이라고 진단하는 전문가마저 있는 게 현실이다.
국내 상황도 좋지 못하다. 여전히 환시장은 안정을 찾지 못했고 물가 오름세는 폭발적이다. 하나같이 내수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가하는 요소다. 특히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우리나라 시장 특성을 감안하면, 기획재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점 또한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년 간 지속된 부동산 시장 거품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과 같다.
전체 증시에서 공매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많이 잡아도 10%대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물론 한번에 전체 증시의 10%에 달하는 매도물량이 쏟아진다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굳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논한다면 '공매도 때문에 주가가 하락한다'는 주장보다는 '주가 하락이 공매도 증가를 부추긴다'고 해석하는 게 합당하다. 개인투자자들을 위한 최선의 해답은 증시 되살리기다. 이는 경제가 살아나야 한다. 불행히도 아직은 뚜렷한 신호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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