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의 나이로 보나, 낙천 후 보인 유유자적하는 풍모로 보나 그가 2년의 당대표 임기를 그 후의 정치 행보를 위한 발판으로 삼아 무리수를 둘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경력과 화합형 리더십 이미지 등을 감안하면 18대 후반기 국회의장 정도의 코스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으나 낙천으로 의원 배지조차 달지 못한 그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런 저런 정황으로 보건대 박희태 전 의원에게 이번 당대표 자리는 글자 그대로 마지막 공직이자 마지막 봉사의 장이 될 수밖에 없겠다.
이제 막 집권당 대표로 선출된 그의 정치적 한계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짚어보는 것은 더 이상 어떤 정치적 욕심을 부릴 여지가 없다는 존재론적 한계로부터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의에 충실한" 정치 리더십의 가능성을 찾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집권당은 늘 세 곳을 보아야 한다. 국민,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야당이 그것이다.
정권 창출의 주역으로서, 집권당은 우선 정권을 만들어 준 국민을 섬기고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늘 살펴야 한다.
국정 운영의 주체로서, 집권당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대통령과 정부가 힘있게 국정을 운영해 나감에 있어 부족한 점, 미진한 점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또한 정국 운영의 책임자로서, 집권당은 정국을 원만하게 이끌어갈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야당의 주장에 귀 기울이고, 야당의 요구에 부응해 대화와 타협으로 물 흐르듯 정국을 관리해나가야 한다.
이렇게 보면 박희태 대표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의 무게는 결코 간단치 않아 보인다. 가뜩이나 정치력 부족과 소통 부재로 대통령과 집권 세력 전체가 신뢰의 위기와 권위의 상실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국민과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야당을 향한 박희태 대표의 목소리가 어떤 유의미한 반향을 가져올 수 있을지 조차 불투명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모든 꼬임과 혼선의 뒤에 "소아"를 버리지 못한 정치꾼들의 작은 계산들과 작은 욕심들과 작은 교만들이 작동하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이번이 세 번째 당대표지만 아마 제대로 된 당대표를 하기는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앞의 두 번의 당대표가 당이 이런 저런 어려움에 처했을 때 과도기적 상황을 관리할 필요 때문에 "추대"되었던 임시 대표였다면 이번 당대표만큼은 온전히 자신의 의지와 능력에 의해 쟁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의욕이 넘치고 있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추미애·정대철의 단일화 합의를 1차 투표 과반 득표로 일축한 것도, 그의 의욕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동영, 손학규 등 대선 주자들이 물러난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자리매김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 하나 하나에 이전과는 다른 무게와 힘이 실릴 것이라는 관측이 가능하다.
정세균 대표의 강점은 실물 경제와 경제 정책 전반에 두루 밝다는 점이다. "경제를 아는 사람이 제 1야당 대표가 되어야 야당의 수권 능력도 커지고 국가 운영도 균형이 잡히고 활력 있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선거용 주장이긴 하지만 일견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세균 대표의 민주당이 "민생안정"과 "경제 활성화" 이슈를 전면에 내세워 쇠고기 촛불 정국과 국회개원 문제 등 얽히고설킨 난국을 공세적으로 정면 돌파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다.
박희태와 정세균이 이끌어갈 정국은 화려한 공격과 노련한 수비가 어우러지는 한판의 진검승부가 될 것 같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이 유리한 무기로 싸우는 법인데, 이 점에서 박희태 대표나 정세균 대표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무기를 고를 안목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화려한 공격은 경제와 민생으로 무장한 정세균의 몫이, 노련한 수비는 무심과 연륜으로 갈고 닦은 박희태의 몫이 될 공산이 크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박희태와 정세균의 진검 승부에 조연으로 출연할 양당의 최고위원들과 원내 지도부들의 의욕 과잉과 오버 액션이다. 다들 차기나 차차기에 대한 넘치는 의지와 나름의 구도를 갖고 있는 조연들이니만큼, 의욕으로건 욕심으로건 뒷줄에 서 있을 사람들이 아닌 건 둘째 치고, 이들이 과연 박희태, 정세균을 주연으로 인정해줄 것인지 부터가 확실치 않은 것이다.
이 점에서 박희태, 정세균 두 사람 모두 당내 지도력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것과는 별도로, 상대를 먼저 살려줌으로써 자신이 더 크게 사는, 제대로 된 "상생 정치"를 통 크게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박희태, 정세균 두 사람이 그것이 마지막 봉사에 어울리는 길일뿐만 아니라, 차기를 제대로 준비하는 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심전심 공감할 정도는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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