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으로는 이번주부터 쇠고기 원산지 표시 의무가 모든 식당과 급식소로 확대되지만 실제 단속 등 행정력이 서민들이 사는 골목골목 작은 식당에까지 미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여론에 떠밀려 일단 원산지 표시 대상을 '모든 음식점의 모든 쇠고기'로 무리하게 늘려놓긴 했지만 막상 시행 시점에 이르자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행정단속 대상과 업무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발을 빼는 모습이다.
특히 100㎡미만 소규모 식당의 경우 정부가 기본적으로 '단속'이 아닌 '계도'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서민들의 '알고 먹을' 권리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예상된다.
여론 달래려 무리수
사실 정부가 쇠고기 원산지 표시 대상을 모든 음식점으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 것은 지난 4월 18일 한미 쇠고기 합의 이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다.
당초 협상 타결 직후인 21일 정부가 발표한 미국산 쇠고기 개방 대책에서는 원산지 표시와 관련, 단속 권한을 보건복지부 뿐 아니라 농식품부에게도 부여하고 농산물품질관리원의 특별사법경찰관리 수를 4천명에서 1천명으로 늘린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여론이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정부는 5월초부터 쇠고기를 취급하는 모든 식당을 원산지 단속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해 결국 같은달 28일 첫번째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 고시 의뢰와 함께 대책의 일환으로 발표했다.
당시 농식품부 등 정부로서는 "100㎡이상 음식점만 원산지를 밝히게 하면 결국 작은 식당에서 돈 없는 사람들만 미국산 쇠고기인지 모르고 먹으란 말 아니냐"는 지적에 큰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원산지 단속 심하면 소비위축"
하지만 추가협상 등 우여곡절 끝에 새 수입조건 고시가 발효되고, 반대 촛불이 다소 누그러지자 정부 내부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일일이 소형식당의 원산지 표기까지 단속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할 뿐 아니라, 아예 경기 등을 고려할 때 엄격히 단속해선 안된다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원산지 표시 제도를 지휘하고 있는 박덕배 농식품부 제2차관은 원산지 단속의 실효성과 관련 "그 많은 식당을 모두 단속할 수도 없고, 모두 단속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처벌.단속 위주로 가면 정책이 실패하게 돼 있다"며 "원산지 표시 좀 안했다고 범죄자 취급을 해서는 안된다. 단속이 심하면 소비위축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해 원산지 단속 수위를 적절히 낮추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이를 지켰을 때 업체들이 이익이 된다고 깨닫고, 우리 음식문화 수준을 한 단계 높인다는 차원에서 업계가 스스로 지킬 수 밖에 없다"며 사실상 원산지표시 확대가 선언적이고 캠페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내비쳤다.
지난 5월말 정부는 6월 한달 계도 기간을 거쳐 7월부터 농산물품질관리법 시행령.규칙 발효와 함께 모든 음식점을 대상으로 대대적 특별 단속에 나서겠다고 밝혔으나, 결국 100㎡미만의 경우 7~9월 3개월 유예 기간을 둔 뒤 10~12월부터 단속 대상에 넣기로 했다. 또 100㎡미만 음식점의 위반 사항은 신고 포상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국.반찬 단속 실효성 없어 반대했다"
여론 추이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정책 기조에 가장 힘든 것은 이 제도의 집행기관인 농산물품질관리원(이하 농관원)이다.
농관원 관계자는 "농관원은 사실 국과 반찬 등까지 원산지를 표시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었다. 실효성도 없고 고기 몇 점 국에 들어간 것까지 알아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광우병 사태 초기에 여론이 좋지 않으니 본부(농식품부)측에서 그렇게 결론을 내더라. 정책 부처가 정했으니 우리는 따르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그 뒤에 식당 업주들의 불만이 터지자 당정 협의 등에서 당분간 소형 음식점에 대한 단속 없이 계도기간을 늘리자고 결정된 것같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100㎡미만 소형 음식점들은 한 달 벌어도 수익 500만 원은 물론 매출이 500만 원도 안되는 경우가 많은데 원산지 표시를 안했다고 최대 500만 원의 벌금을 물리는게 말이 되느냐"면서 "모든 음식점으로의 원산지 표시 확대에 대한 '과잉 행정, 과잉 규제' 논란이 정부 안에서조차 적지 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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