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6조 제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 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헌법에 의해 국제 인권관련 조약인 '시민적·정치적권리규약'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권리규약'을 우리나라는 비준했다. 즉 이들 국제인권조약은 헌법에 의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녀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와 관련 '국제인권법의 국내이행에 있어 문제점 및 대안'이란 주제로 27일 오후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주제는 '헌법에 규정된 대로 비준받은 국제인권조약이 법생활에서 적용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였다.
***법관들 국제인권법에 대한 소양과 충분한 논의 부족**
주발제자 김태천 판사(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장)은 일차적 원인을 국제인권법에 대한 국내 법조계의 관심 부재에서 찾았다. 김 판사는 "국내에서 지금까지 이뤄진 국제인권법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개별협약에 대한 소개 수준에 머물렀다"며 "국제인권법에 대한 학문적 연구 및 재판과정에 있어서 국제인권법실무는 초보적인 단계에 불과하다"고 고백했다.
이명웅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역시 "국제인권법이 우리 법정에서 재판규범으로 제대로 적용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된다"며 "변호사와 법관의 국제인권법에 대한 소양 부족이 원인이다"고 말했다. 이 연구관은 이어 "소양 부족이 일차적 원인이기는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국제인권법의 국내법적 효력에 관한 학계와 실무계의 충분한 논의가 없었던 점도 지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즉 헌법에 규정하고 있듯이 비준된 국제인권법은 국내법과 같은 규범성을 가져야 하지만, 법관, 변호사 등 법 전문가들이 이에 대한 전문성과 관심 부족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비준된 국제인권법은 '반드시' 적용돼야"**
이들은 헌법에서 국제인권법을 국내법으로 규정한 만큼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이 연구관은 "법관은 국제인권법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면 해당 사건에서 '반드시' 적용해야 하고, 소양 부족을 이유로 회피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정경수 순천대 교수도 "국제인권법의 국내화는 관련 국가들의 정치적·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법적 의무'"라고 강조했다.
***난제, 국제인권법과 국내법이 충돌할 경우, 국제인권법 적용 우선순위의 문제...**
하지만 이들은 근본적 문제점으로 "국제인권법을 국내법 효력을 가진다는 헌법조항이 여러 가지로 해석할 여지를 남기고 있어 논란의 여지는 매우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먼저 '헌법-법률-조례-규칙'으로 서열화된 법체계를 가진 이상 국내법이라고 했을 때 국제인권법은 과연 어떤 위치에 있는지부터가 논란이 대상이 된다. 또 국제인권법과 국내법 사이의 충돌이 발생할 경우 어떤 것을 우위에 둘 것인가란 문제도 간단치가 않다.
이들에 따르면 법원은 국제인권법을 헌법의 효력, 법률의 범주에서 파악하는 등 상호 혼재된 모습을 보여왔다.
예컨대 올해 초 양심적병역거부자에 대해 기각 판결을 내려 관심을 모았던 서울 남부지법 이정렬 판사의 판결은 국제인권법을 우선순위에 둔 대표적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 김 판사의 지적이다. 반면 2001년 대구지방법원은 신법우선의 법칙을 적용해, 국가보안법이 국제인권법 비준 이후에 개정됐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국제인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김 판사는 이에 대해 "국제인권법과 국내법이 충돌할 경우 해소할 만한 기준이 법조계에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법관, 국제인권법 적극 적용 의지 필요"**
김 판사는 "재판과정을 통한 국제인권법의 국내적 적용 문제는 각국의 헌법 규정 및 관행에 관한 국내 법원의 해석에 따른 것으로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중요한 것은 법관이 재판과정에서 국제인권법을 적극적으로 적용하여 실시하고자 하는 정치적 결단을 가지고 있는 여부이다"고 주장했다.
이명웅 연구관도 "국제인권법의 국내법적 효력에 대한 학자들의 보다 활발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고, 소송 당사자와 변호사들의 적극적인 주장-원용이 필요하다"며 "또한 국제인권법의 정신과 법적 효력에 대한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인식이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헌법이 국제인권법의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보장하지만,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해결이 쉽지 않은 부분이 있는 만큼 관련 당사자인 법관, 변호사 등 법조인들이 난제 해소를 위한 충분한 토론을 통한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이날 토론회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하고 강명득 인권위 사무총장직무대리의 사회로 김태천 판사, 이명웅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정경수 순천대 교수, 박찬운, 차지훈, 유혁 변호사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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