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강경진압의 역설, 'MB 가두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강경진압의 역설, 'MB 가두기'

[김종배의 it] 유폐된 무인도엔 '누더기 실용'만…

이명박 대통령은 너무 많은 걸 잃었다. 쇠고기 협상 이후 지금까지 너무 많은 걸 잃었다. 지지율을 까먹었고 자신의 주요 정책을 민심 무마카드로 내놨다. 집권 초기의 프리미엄은 고사하고 530만 표 차 당선이란 프라이드마저 잃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값어치 있다고 여겨온 자산을 잃었다. 바로 '실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창해온 '실용'의 핵심은 '초월'이다. 이념의 대립구도를 초월해 오로지 성과와 이익을 강조하는 효율주의다. 본인과 그 주변이 주장해온 바에 따르면 그렇다.

이 '실용'이 무너졌다. 쇠고기 협상에 '졸속' '굴욕'이란 딱지가 붙는 순간 '실용'의 거품은 터졌다. '실용'은 고사하고 '실력'조차 의심 받는 처지에 몰려 버렸다.
▲ ⓒ프레시안

설상가상이다. 여기에 또 한 번, 아니 결정적으로 '실용'을 훼손하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급한 마음에 꺼내들었지만 결국 자신을 덫에 가둬놓을 자충수다. 강경진압이다.

잘 둘러볼 필요가 있다. 여권이 며칠 동안 주장해온 바와 강경진압은 호응하지 않는다.

스스로 그렇게 말했다. 추가협상 후 민심이 촛불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촛불집회는 이제 극렬 좌파·반미 전문이 주도하는 것으로 변질됐다고 장담했다.

여권이 정말 이렇게 확신했다면 강경진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내버려두면, 조금만 참으면 자멸할 집회였다. 순수하고 선량한 국민 다수가 등을 돌려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질 집회였다. 그런 집회에 물대포를 쐈고 소화기를 뿌렸으며 심지어 돌까지 던졌다. 그렇게 강경진압 함으로써 자기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자기 손으로 '실용정부' 간판을 떼어내고 '실력행사' 담화문을 갖다 붙였다.

왜였을까? 조금만 참으면 됐을 텐데 왜 이렇게 서둘러 강수를 둔 걸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정치적 파장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자멸'의 길을 유도하지 않고 정치적·도덕적으로 부담이 큰 '진압'의 길을 택한 것일까?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아이러니 하게도 여권의 '촛불집회 변질' 주장이 올가미가 돼 버렸다.

그런 주장이 강성 우파에 명분을 주고 말았다. 촛불집회가 변질됐다면 두고 볼 게 뭐가 있냐고, 당연히 힘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논리에 기름칠을 해 버렸다. 촛불집회장에 극렬 좌파·반미 전문만 남았다면 당연히 '비타협적으로' 맞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우파의 대결논리가 득세하게 만들어 버렸다.

더불어 이명박 대통령은 갇혀 버렸다. 좌우 이념을 초월하기는커녕 우파, 그것도 강성 우파에 갇히는 신세가 돼 버렸다. 촛불집회에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강성 우파의 목소리에 눌려버렸다.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강경진압을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쯤으로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건 착각이다. 그렇게 진압하고 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기대하는지 모르지만 그건 미몽이다.

'착각'과 '미몽' 반대편에서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 ⓒ프레시안

중립지대에 공동화 현상이 발생한다. 정책적 사안이 아니라 도덕적 사안 때문에 중립성향의 국민이 이탈한다. 여느 사안보다 탄력성이 작은 도덕 문제 때문에 중립지대의 국민이 이명박 정부로부터 등을 돌린다. 탄력성이 작다는 건 한 번 마음먹으면 쉬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거 회귀 현상이 발생한다. 최루액과 각목을 놓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란이 빚어진다. 어느 쪽 주장이 설득력이 있느냐는 주장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 논란이 조성할 지형이 중요하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형성되면 흡수한다. 이념공세를 흡수해 버린다. 그게 과거 독재시절 확인한 원리다.

이 두 가지 현상이 어떤 결과를 빚을지는 자명하다. 소수화다. 이명박 정부가 소수화 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모조리 장악하고 의회마저 석권했다 하더라도 고립된 섬이 된다. 민심의 바다 한 켠에 유폐된 무인도가 된다. 그와 함께 '실용'엔 용도폐기 딱지가 붙여진다.

반박 소지가 있는 두 문제를 마저 짚고 마무리하자.

하나. 왜 단정하느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변질된 촛불집회를 강경진압하는 게 오히려 국민 지지를 끌어낼 수 있지 않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전제가 성립돼야 한다. 촛불집회가 변질됐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설득해야 한다. 그 한 예가 강경진압의 맞은편에서 '극렬 저항'하는 사람들의 면모다. 이들이 극렬 좌파·반미 전문의 전력을 갖고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택배기사와 20대 여성이 등장한다. '극렬저항'한 사람은 택배기사였고 '강경진압'에 팔이 부러진 사람은 평범한 20대 여성이었다.

둘. 성격 규정이 잘못 됐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은 애초부터 정체성이 모호한 '자화자찬'에 불과했다고, 이명박 정부의 본체는 본래 우파였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따라서 반박할 여지가 별로 없다. 다만 이 점만 강조하련다. '우파 본색'으로 표현하지 않고 '실용 변질'로 표현한 이유가 있다. '변질'이 '본색'을 더욱 명징하게 드러내는 작용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 게 그 이유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