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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폭력 앞에 예외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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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폭력 앞에 예외는 없었다"

[구타 체험기]쭉 뻗은 물대포와 은밀한 구타들

26일 새벽 2시께 광화문 네거리. 새문안교회 방향에서 밀고 들어오기 시작한 경찰이 순식간에 시민들을 도로 밖 인도로 밀어내며 네거리를 점령했다. 예전에는 "5보 앞으로", "천천히"라고 구호를 외치며 서서히 들어오는 경찰이었지만, 이날 대부분의 전의경들은 '뛰었다'. 이 과정에서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과 황급히 밀려나던 사람들이 뒤엉켜 부상을 입었다.

기자는 이 장면을 네거리 모퉁이 편의점 앞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네거리를 점령한 전의경 대열 속에서 '슁~'하며 플라스틱 생수통이 날아왔다. 한 젊은 여성의 머리에 맞았지만 다행히 빈 생수통이어서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곧 이어 '슁~' 소리를 내며 또 다른 생수통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물이 반 쯤 차 있는 듯 날아가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결국 한 노인이 그 생수통에 맞고 말았다.

이에 흥분한 시민들이 경찰 대열 앞으로 가 거세게 항의를 했다. 기자도 그들을 쫓아가 현장 상황을 살펴보는데, 두 번째 줄에 있던 전경 한 명이 항의하는 시민들의 면전에 손바닥만한 디지털 카메라를 들이대며 연방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이에 기자가 "당신 불법체증하는 것이다. 소속을 대라"고 하자, 카메라를 들고 있던 전경은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이어 앞줄에 있던 전경이 "들어와서 얘기하시라"며 기자를 안으로 유도했다. 당시 기자는 현장에 추가투입된 직후였기 때문에 미처 기자증을 패용하지 않고 있었다. 기자증을 패용하고 있었어도 소용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날 <시사인>의 사진기자가 연행됐다. 하긴 국회의원까지 신분을 밝혀도 연행되는 마당인데.
▲방패로 시민들을 가격하고 있는 전경. ⓒ프레시안

계획적인 은밀한 구타

그런데 경찰 대열 안쪽으로 들어간 순간 "연행해!"라는 고함과 함께 사방팔방에서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때리는 액션을 크게 하지 않기 위해서였는지 무릎 아래쪽을 집중 가격했다. 밖에서는 눈치챌 수 없는 '은밀한 구타'였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기자 신분증을 보여주며 거세게 항의했다. 지휘관 면담을 요구했으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마침 현장에 중대장으로 보이는 듯한 경감을 발견해 항의하기 위해 다가갔다. 그러나 그는 등을 돌려 자리를 피했고, 동시에 전경이 나를 막고섰다. 막아서는 전경을 뿌리치고 경감을 쫓아갔으나 그는 계속 피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 경감이 소속과 성명을 밝히지 않아 가슴의 명찰 이름이라도 확인하려 했으나 그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듯 왼손을 가슴에 올려 명찰을 가리고 다시 도망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반드시 부대와 지휘관을 알아내 정식 항의할 생각이었으나, 명찰을 가리고 도망다니는 모습이 웬지 우습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해 그냥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 경찰병력은 시청 방향으로 뛰어가는 바람에 상황은 종료됐다.
▲ ⓒ프레시안

상황이 종료된 후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전경들이 "들어와서 얘기하시죠"라고 유도를 한 뒤 "연행해!"라고 태도를 바꾸고 발길질을 하는 것은 매우 계획적인 행동, 혹은 익숙한 행동으로 보였다. 연행 과정에서 이와 같은 '은밀한 구타'가 얼마나 많이 자행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또 경찰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항의하려 했으나 자신의 이름조차 밝히는 걸 꺼려하며 전의경 대열 뒤에 숨어 도망 다니는 경찰 간부를 보며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위 현장을 취재하다보면 정말 '훌륭한' 지휘관도 많이 목격한다. 뒤에서 "밀어버려 XX들아"라고 윽박만 지르는 게 아니라 전의경 대열 맨 앞에 서서 지휘를 하며 시민들과의 충돌을 최대한 자제시키는 모습 말이다. 어디서 싸움이라도 나면 가장 먼저 와 말리고, 방패 날을 들어 가격하는 대원이 있으면 가차 없이 꾸짖는 모습도 봤다.

흔히들 군대에서 "부대 분위기는 어떤 간부를 만나느냐에 달려있다"고들 한다. 가장 기본적인 '군기 빠진 행동'이 생수통을 시민들을 향해 던지는 등의 짓이다. 만약 현장 간부가 그런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 부대라면 절대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확 달라진 경찰의 진압 태도

그런데 26일 밤 목격한 전의경부대의 분위기는 단순한 현장 간부 차원 이상을 넘어선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강경 대응' 천명이 현장에서 그대로 구현됐다. 그동안 과잉진압 논란을 일으켜 경찰이 사용을 자제하던 물대포를 시민들을 향해 직사했고, 전의경 부대의 발걸음도 훨씬 빨라졌으며 날을 세운 방패도 부쩍 많이 눈에 띄는 등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곧게 땅을 향해 뻗어가는 물줄기가 "이제 과잉진압 비판 따윈 의식하지 않겠다"는 경찰의 확고한 의지 표현으로 보였다.

아무래도 요즘 전의경들은 '간부'를 잘못 만나 고생 좀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26일 새벽 5시 광화문 네거리에서 누워 자고 있는 전경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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