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행된 분들과 나를 이어주는 여러 인연 중의 하나가 식습관이다. 우리 조상들에 소는 주식의 대상이 아니라 필수적 농업 생산 수단이었다. 그래서 어쩌다가 소를 잡아먹을 경우, 내장, 곱창은 물론, 사골까지 우려먹었다.
이러한 한국인의 쇠고기 식습관은 국제통상법에서 어떠한 의의를 지닐까? 다시 말하면, 이것은 무시되어야 마땅한 한국의 내부 사정인가, 아니면 국제통상법상 중요한 고려 기준인가?
결론적으로 국제통상법상 한국은 검역 기준을 정할 때, 한국인의 식습관을 중요하게 고려할 법적 권리가 있다. 그리고 이를 미국에게 당당히 주장할 수 있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은 광우병 위험에 노출될 위험성을 평가할 때, 관습과 문화적 습속, 수입 제품의 용도와 처분 관행을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OIE <육상동물건강규약>).
위험성 평가는 실제 삶의 복잡성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신축적이어야 한다.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없다 (…) (광우병 변형 프리온과 같은) 식별된 위해인자에 노출될 가능성 산정은 구체적인 노출 조건을 대상으로, 노출의 양, 시간, 빈도, 기간 및 노출 경로(식사, 흡입, 혹은 곤충 공격), 동물 혹은 인구의 수, 인종 및 기타 특성에 관해서 하는 것이다. 위험성 노출 평가에서 고려되어야 할 투입 변수 유형의 예로는 (…) 관습 및 문화적 습속, 수입 제품의 용도, 처분 관행 등이 있다. (Risk assessment should be flexible to deal with the complexity of real life situations. No single method is applicable in all cases....The probability of exposure to the identified hazards is estimated for specified exposure conditions with respect to amounts, timing, frequency, duration of exposure, routes of exposure (e.g. ingestion, inhalation, or insect bite), and the number, species and other characteristics of the animal and human populations exposed. Examples of the kind of inputs that may be required in the exposure assessment are.....customs and cultural practices, quantity of commodity to be imported, intended use of the imported animals or products, disposal practices. (1.3.2.3.조, 1.3.24.조) |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회담 이후, 한국인의 식습관을 더 이상 대변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총리실은 <미국산 쇠고기 추가 협상 관련 Q&A>에서 이렇게 국민에게 말하고 있다.
□사골이나 꼬리뼈는 병원성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OIE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도 SRM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음. O 우리 식습관을 근거로 제한하기 어려움(20쪽). |
이 총리실 문서는 쇠고기 협상이 왜 실패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골이나 꼬리뼈를 먹는 쇠고기 주요 수입국은 한국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 병원성을 확인해서 독자적인 검역 기준을 정해야 할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것이 앞에서 본 OIE 규정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OIE 규정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덮어 버렸다. 한국은 자국민의 식습관을 대변하는 대신, 지난 4월의 협상부터 이번 추가 협상까지 일관되게 미국산 쇠고기는 OIE 기준대로 안전하다는 미국의 입장을 수용했다.
그 결과가 바로 합의문도 없는 추가 협상이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1주일 동안 협상을 했지만, 그가 서명한 문서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한국이 고시를 강행하는 대가로 받게 될 슈워브 미국 통상 대표의 편지 초안이 있었다.
한국의 법률가가 다른 나라의 공무원이 장차 보내겠다는 편지 초안에 의존해서, 법적 검토를 해야만 하는 현실이 슬펐다. 그러나 난 편지 초안이라도 애써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편지는 이렇게 끝난다. 그리고 이 마지막 문장은 추가 협상의 모든 것을 말해 준다.
As was recently reconfirmed by Korean beef importers, U.S. beef is safe, and it is consumed by Americans every day. We look forward to the rebuilding of Korean consumer confidence in the safety and quality of U.S. beef. (이번에 한국 쇠고기 수입업체들이 재확인한 바대로, 미국 쇠고기는 안전하며 미국인은 매일 이를 먹고 있습니다.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과 품질에 대한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되기를 학수 고대합니다.) |
이번 추가 협상의 핵심적 전제와 결론은 미국의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 입장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를 일관되게 한국의 법령에 관철시켰다.
한국이 이번 추가 협상의 결과로 장관 고시에 새로 반영되는 부칙 8항은 이렇게 되어 있다.
30개월 미만 소의 뇌, 눈, 머리뼈, 또는 척수는 특정 위험 물질 혹은 식품 안전 위해에 해당되지 않는다. |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도 거듭 안전하다고 확인되었다. 새 부칙 7항에 의하면, 과도기 기간의 기준을 어기고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발견되어도 한국은 이를 그냥 미국 수출업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이 새 조항 역시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전제에 서 있다 왜냐하면 원래 수입 위생 조건 기준을 어긴 제품은 위험하므로 소각 매몰 폐기해야 한다(가축전염병예방법 제 44조). 다음 글에서 자세히 보겠지만, 한국이 30개월 미만 쇠고기 '수출 증명(EV)' 대신 '품질 시스템 평가(QSA)' 프로그램을 수용한 것 자체가 바로 30개월 이상 쇠고기 문제는 안전의 문제가 아님을 수용하고 있다.
추가 협상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에 대한 미국의 주장이 철저하게 관철되었다. 한국 정부는 한국인의 식습관을 대변하지 않았다. 곱창을 먹고 사골을 우려먹는 우리의 식습관은 한국 정부로부터 버림받았다. OIE가 부여해 준 통상법적 지위마저 부정당했다. 국민의 식습관을 대변해 줄 정부가 없는 것이 비극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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