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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해진 경찰, '칼날 방패' 뒤로 숨은 MB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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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해진 경찰, '칼날 방패' 뒤로 숨은 MB정부

[현장] 21일 새벽, 광화문로는 다시 전쟁터

밤이 되자 경찰은 초조해진 듯 보였다. 오랜만에 늘어난 시민을 대상으로 경찰은 다시 전투경찰을 투입했다. 해산 과정에서 시민 몇몇이 부상을 호소하기도 했다. 어처구니없게도, 횡단보도를 막아서 지나가는 행인의 통행을 막았다.

이상한 일이다. 경찰은 특히 토요일 밤이 되면 과격해진다. 꼭 교보문고 근처에서 인도에 있는 시민을 방패로 내려찍는다.

다시 방패 뒤로 숨은 정부

20일 밤 10시 40분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서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이 세 번째 경고 방송을 했다.

"차량 통행을 위해 인도로 올라가십시오. 3차 해산을 명령합니다."

상황은 오래 가지 않았다. 직업 경찰들은 별다른 폭력 행사를 하지 않고 조용히 시민을 인도로 올렸다. 시민들도 순순히 따랐다. 곧 경찰 차량이 길을 벌리고 광화문로에 차량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광화문로 안쪽으로 들어가자마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다시 경찰 차량이 길을 막아선 것이다. 헬멧과 방패를 갖춘 전투경찰이 갑자기 도로로 쏟아졌다. 방패에는 부대마크가 사라졌고 명찰과 부대 표찰도 모두 가려져 있었다.

방송 카메라 조명이 도로를 환하게 비췄다. 곧 이순신 장군 동상 뒤편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 불과 10여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시청 앞 광장에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를 본 시민이 광화문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이 이유였다. 시민이 조금 더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경찰은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아마추어' 전투경찰을 다시 도로로 내몰았다.

늘어난 시민이 다시 광화문로를 점거했다. 경찰의 반응은 재빨랐다. 지난 1일 강경한 진압 후 여론 반발이 커지자 새벽까지 광화문 '광장'을 허용했던 경찰의 모습이 아니었다. 곧바로 강제 해산 작전을 펴기 시작했다. '우루루'하는 군홧발 소리가 도로 위를 울렸다.

21일 새벽 0시쯤 곳곳에서 시민들이 연행됐다는 소리가 나왔다. 여중생이 다리를 접질러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렸다. 물대포와 소화기만 없을 뿐, 광화문로는 순식간에 지난 1일 새벽을 떠올리게 했다.

왜 꼭 토요일일까

강제 해산은 순식간에 끝났다. 새벽 1시가 지나자 시민들은 완전히 인도로 밀려났다. 전투경찰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도로를 막으려다 횡단보도까지 막아버렸다.

횡단보도를 지나가려던 여성 한 명이 전투경찰 때문에 길을 건너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 못 이겨 경찰은 횡단보도를 열어줬다.

시민들의 말에 따르면 오랜만에 전투경찰이 마음껏 방패를 휘두른 것으로 추측된다.

한 여성은 크게 화를 냈다. 그는 "춤을 추던 고등학생이 힘들어 주저앉아 있었다. 그런데 전투경찰이 몰려드니 시민 몇몇이 놀라 아이들을 감싸 안았다. 그런데도 전투경찰은 보호하던 시민을 발로 밀어내고 아이들을 끌어냈다"며 "너무 화가 나는 상황인데도 누군가는 '비폭력'만 외치는데 말이 되나"고 따졌다.

꼭 토요일을 낀 날이 말썽이다. 물대포를 쓰고 여대생의 머리를 짓밟는 등 경찰의 과잉진압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 달 31일과 이번 달 1일 사이는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던 날이다.
▲지난 6일 현장 기자들의 카메라에 포착된 '칼날 방패'. 고무 패킹을 제거하고 방패날을 날카롭게 갈아냈다. 옆에 플라스틱 방패와는 확연히 다르다. ⓒ프레시안

지난 6일과 7일 사이에는 전투경찰이 날을 날카롭게 세운 방패를 들고 나온 사실이 여러 기자들에게 목격됐다. 지난 2005년 농민 대회에 참석했던 전용철·홍덕표 씨 사망 원인의 하나로 꼽히는 게 '칼날 방패'다. 이날 역시 경찰은 유해성이 논란이 된 하론소화기를 시민에게 뿌리는 등 말썽을 부렸다.

경찰의 이런 과격 대응은 시민의 강한 반발로 이어졌다. 1일 경찰이 그렇게 강하게 나오자 시민은 끝까지 청와대 진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청수 경찰청장이 경찰특공대까지 투입시킨 이유기도 하다. 6일에는 분노한 시민들이 경찰버스에 밧줄을 묶어 끌어내기도 했다. 이는 어김없이 '시위대의 폭력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경찰은 인도도 고른다

인도에서 시민을 폭행하는 일도 잦다. 그런데 꼭 특정한 장소다. 교보문고 앞 인도에서 폭행사건이 일어난다.

지난 8일 경찰은 인도 위에 있던 14세 최 모 학생의 뒤통수를 방패로 찍었다. (☞ : 바로보기) 당황한 경찰은 최군이 입원한 병원 근처의 은평경찰서 정보과 경찰까지 보내 사과를 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시민에 따르면 역시 교보문고 앞 인도에서 폭행이 일어났다. 한 예비군은 이마에 찰과상을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경찰에 맞았다고 주장하는 한 여성은 "전투경찰이 사방을 다 가로 막고 나보고 나가라고 요구하더라. 어이가 없는 일"이라며 "교보문고 앞 인도 위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옆에서 '퍽'하는 소리가 나더니 건장한 남자가 배를 잡고 앞으로 쓰러졌다"고 했다.

그는 "너무 화가 나서 경찰 지휘관에게 왜 인도에서 시민을 폭행했냐고 따졌는데 그런 일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더라. 여러 사람이 목격한 일이다. 이게 우리나라 경찰이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경찰의 무자비…"고맙다. 정부에 대한 분노를 잊지 않게 해줘서"

곧 끝날 것 같아 보이던 상황은 오전 2시가 넘어서도 끝나지 않고 있다. 경찰이 시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는 많은 시민이 "경찰이 정말 지능적으로 때린다. 꼭 방송이 없으면 때리고 사람들이 몰려 있을 때 옆구리를 몰래 때린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다른 한 시민은 "오늘 특히 경찰이 채증을 많이 해서 우리를 화나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찰이 강경하게 나오면 시민은 흥분한다. 이날 처음 직업경찰이 시민을 인도 위로 올릴 때만 하더라도 큰 충돌이 없었다. 시민은 전투경찰이 나오는 사실 자체에 흥분하고 전투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 더 강하게 저항한다. 당장 이날도 분노한 시민이 경찰 차량을 공격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진압이 과연 시위대를 '폭력집단'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인터넷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이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조·중·동의 '시위대와 시민 분리시키기'는 이제까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시민은 경찰의 폭력이 강경해질 때마다 더 많이 모인다. 당장 지난 1일 새벽 경찰의 강경진압 이후 집회는 더 달아올랐다. 6일 집회는 '6·10 촛불항쟁'으로 이어져 100여만 명이 전국을 메우게 했다.
▲청와대로 향하는 길인 경복궁역 안쪽 도로는 모조리 봉쇄돼 있었다. 시민과 전투경찰은 광화문로에서 대치하고 있다. 이 길을 지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역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도대체 왜 이러냐!" ⓒ프레시안

현장에 있던 김 모 씨(31. 서울시 도봉구)는 "정말 화나지만 한 편으로는 멍청한 경찰에 고맙기도 하다. 인터넷 방송을 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 경찰의 대응을 똑똑히 지켜본 채 내일 도로로 나설 것이다. 이는 결국 이명박 정권을 무너뜨리는 힘이 될 것이다"고 경고했다.

분노를 못 이겨 인도 위에 앉아 울먹이던 한 여성은 "너무 슬프다. 왜 우리가 이래야 하나. 집회에 나오는 것도 힘들고 대통령에게 얘기를 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전투경찰과 싸워야 하는 현실이 괴롭다"고 했다.

분노가 분노를 낳은 밤이었다. 지휘관들은 계속해서 전투경찰에게 도로를 봉쇄하라고 명령했다.

시민들의 항의에도 아랑곳없이 경찰은 여전히 횡단보도를 막은 채 "해산하라"고 말한다. 전투경찰의 일그러진 눈에도, 시민들의 지친 어깨에도 허탈함이 내려앉는다.

여전히 횡단보도를 막고 선 경찰 때문에 파란불이 켜져도 건너지 못하는 한 시민이 화가 나서 외친다.

"집에 가려 하는데 왜 막어? 도대체 뭐가 무서운거야? 뭐가…"

시민과 대치한 전투경찰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버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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