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쩡하게 끼어든 민주당이나, 그 민주당을 바라보는 시민들이나 모두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명색이 제1야당인데 대중집회를 주도하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한 채 장외로 나앉은 형국이 됐으니 말이다. "길거리에 앉아 있으면서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는 손학규 대표의 탄식도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야당대표가 길거리에 앉아서 촛불집회를 하는 모습을 보고 사회지도층의 한 사람으로서 저 스스로 부끄러웠다"는 정진석 추기경의 발언 또한 통합민주당의 곤혹스러운 처지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답답한 심사를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다.
손학규 대표가 느끼는 답답함과 그래서 어떻게든 계기를 잡아 원내로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절박함과 초조함은 비공개 일정이었던 동교동 방문, 그 중에서도 즉각적 등원을 촉구한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을 적극 공개한 데서 잘 드러난다.
민주당의 설명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은 "국회에 들어가서 경찰 폭력진압 등을 따져 책임자를 처벌할 수도 있고, 재협상도 끌어내고 대운하도 저지하고 물가대책도 세워야 한다, 등원의 계기를 보고 있지 말고 무조건 등원 하라"고 했다는데, 이 정도면 통합민주당 81명 의원 전원의 등원결의보다 훨씬 강력한 등원촉구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므로 통합민주당의 등원은 이제 손학규 대표의 등원선언만 남은 형국이라 할 수 있겠다.
문제는 통합민주당의 처지가 김대중 대통령을 끌어들여야 할 만큼 궁색하게 됐다는 것이다. 누가 통합민주당을 이렇게 만들었나. 어떤 몹쓸 "배후세력"이 통합민주당을 이토록 궁색하고 곤혹스럽게 만들었나.
통합민주당이 이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책임이다. 어느 국민도 통합민주당에게 정운천 장관 해임결의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통합민주당이 그토록 큰소리치던 해임결의안이 부결됐을 때, "저런 야당을 어떻게 믿나, 우리가 직접 해결할 수밖에 없다"며 촛불을 더 높이 들었을 뿐이다.
통합민주당에게 촛불집회에 동참하기를 요구한 국민 또한 한 사람도 없었다. 국민들은 그저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통합민주당 81명 의원보다 민노당 강기갑 의원 한사람이 더 낫다."
사정이 이러했으므로 통합민주당이 촛불집회현장을 찾아 나선 후에도 통합민주당은 내내 집회의 중심에 서지 못했다. 그저 촛불의 곁불만 쬐었을 뿐이다. 손학규 대표가 자괴감을 느꼈다면 아마 이 대목에서였을 것이다. 곁불이나 쬐고 있는 제1야당 대표의 한심한 모습에서 말이다.
그러므로 만약 통합민주당이 등원을 결정해 놓은 채, "그쯤 하면 됐다. 이제 국회로 들어가 해법을 찾으라"는 국민의 주문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그 기대를 접는 것이 좋을 듯하다. 통합민주당에게 새삼스레 그런 기대와 요구를 할 만큼 한가하고 순진한 국민이 한 사람도 없으리라는 것은 국민도 알고 통합민주당도 아는 것 아닌가 말이다.
차제에 통합민주당과 손학규 대표가 자괴감도 불안감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두는 것이 좋겠다. 이미 국민의 관심영역에서 사라졌는데, 마치 아직도 상당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뜻에서다.
통합민주당이 등원하고 싶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등원할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마따나 국회의원이 국회로 들어가는데 무슨 계기를 기다릴 일도 아니고 무슨 명분을 찾을 일도 아니다. 그러기에는 그간 통합민주당이 보여준 우왕좌왕과 눈치보기가 임계점을 넘어서지 않았던가. 통합민주당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 때문에 절망하는 사람은 혹 있을지 몰라도 그 누구도 이제 와서 통합민주당이 아무런 계기도 명분도 없이 등원한다고 새삼스레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만약 통합민주당 내에 아직도 국민의 이 같은 무관심과 냉소야말로 통합민주당이 민심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 받고 있는 형벌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다. '지금이라도 민심의 바다에서 길을 찾고, 국민과 함께 길을 만들어 가라'고.
이 와중에도 전당대회는 해야 하고 당권경쟁은 피할 수 없으며 후보단일화와 대세론 대결로 전대흥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민심의 바다와 참으로 멀리 떨어진, 오뉴월 땡볕에 말라가는 작은 웅덩이 속의 올챙이 떼와 같은 '타성의 정치'와는 이제 제발 제대로 결별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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