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발표했다. 당정협의회를 가진 다음에 경제·민생대책을 쏟아냈다. 저소득층의 통신비를 깎아주고, 수도권 규제를 풀어주고, 창업을 지원하고, 미분양 아파트 취득·등록세를 깎아준다고 했다. 대운하와 공기업 민영화 추진 시기를 늦추겠다고도 했다.
왜 '어제'였는지는 자명하다. 그저께 '100만 촛불대행진'이 있었다. 한 고비를 넘겼다고 보고 다음 판을 깔아놓으려고 한다. 오늘 발표한다. 쇠고기 재협상은 불가능하다면서 수출·수입업체의 자율규제를 한미 두 나라 정부가 문서로 보증하는 방안을 발표한다. 이 걸 기점으로 끝내기 판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래서 꺼내든 것이다.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라도 죽여보려고 '사탕'을 꺼내들고 '사탕발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먹혀들 것 같지가 않다. 민심이 분명하다. '오직'이다. '오직' 쇠고기이고 '오직' 재협상이다. 이런 민심에 '사탕'을 물린다고 울음을 그칠 것 같지가 않다. 울음소리를 죽일 것 같지가 않다.
그럼 뭔가? 정부와 한나라당이 벌이는 일의 정체는 뭔가? 둘 중 하나다. '바보짓'이거나 '꼼수'다.
<조선일보>는 '바보짓'이라고 했다. 오늘자 사설에서 "눈이 펄펄 내리는데 눈을 쓸겠다고 빗자루를 들고 마당에 나서는 인간들은 십중팔구가 바보들"이라고 힐난했다. "얄팍한 수"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 아까운 정책을 왜 무용지물로 만드느냐는 투다.
하지만 이렇게 보면 어떨까? 민심을 잠재우려는 게 아니라 민심을 완화시키려고 하는 거라면 어떨까? '바보짓'으로 볼 게 아니라 '꼼수'로 보면 어떨까?
내칠 수 없는 가정이다. 현실이 그렇다. '오직' 쇠고기 재협상을 원하는 민심을 잠재우려면 그대로 따르는 길 밖에는 없다. 재협상을 선언하는 길이다. 하지만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어제 하루 만해도 미국의 농무장관과 차관, 그리고 상무장관이 일제히 '불가'를 외쳐댔다.
현실이 이렇다면 지구전 태세로 대응 모드를 바꾸는 게 현명하다. 유격전술을 통해 민심의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떼어내는 게 현명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민심이 제 풀에 지치도록 만드는 게 상책이다.
이렇게 보면 경제·민생대책은 '사탕'으로 손색이 없다. 재협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낙담한 국민 일부가 실리에 눈을 돌리기만 한다면 달콤하게 유혹할 수 있다.
대운하·공기업 민영화 연기는 '사탕발림'으로 하자가 없다. 그렇게 바람을 빼면 쇠고기를 넘어 이슈 릴레이를 하려는 국민 일부의 시도를 차단할 수 있다.
그 뿐인가. 청와대와 정부의 인적쇄신을 준비하고 있다. 이 보따리를 풀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연출하면 국민 일부의 노기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
이렇게 나아가는 것이다. '낮은 포복'으로 조금씩 기어가는 것이다. 스타일은 좀 구겨지지만 이처럼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책은 없다. 팔꿈치로 기어 경계선에 다다를 수만 있다면 그 다음은 해볼 만하다. 임계점까지만 나아갈 수 있다면, 굴욕과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임계점까지만 기어갈 수 있다면 그 다음엔 우뚝 설 수 있다. '낮은 포복' 자세에서 '서서 쏴' 자세로 바꿀 수 있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시간이 낙담을 불러오고 패배주의를 유포시킬 것이다. 사회심리가 그렇고 아동심리가 그렇지 않던가. 펄펄 끓다가도 금방 식어버리는 게 냄비 근성 아니던가. 세상이 떠나갈 듯 울다가도 순식간에 방긋 웃는 게 아이 심성 아니던가. 바로 그 임계점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 때까지만 '사탕'으로 달래면 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삐쳐서 우는 게 아니라 아파서 우는 거라면? 부질없는 짓이다. 토라져 우는 게 아니라 목에 가시가 걸려 우는 것이라면 '사탕'이 아니라 '설탕'을 숟가락 째 퍼줘도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없다.
방법은 '오직' 하나, 심리가 아니라 병리에 입각해 푸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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