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당 2800원 받고 일했어요. 하루에 열두 시간 이상씩 일한 것 같아요. 제가 원해서가 아니라…. 금요일까지 일하고 토요일도 2시인가 출근해서 밤 12시 넘을 때까지 일했으니까. 주유소가 마감할 때까지 1시, 2시까지 일을 했어요. 그래도 시급은 똑같아요. 나중에 100원 올랐어요. 2900원 받을 때까지 일을 했으니까요."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주유소 등 서비스업계에는 10대 청소년이 주요 인력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들이 받고 있는 대우는 아주 열악하다. 청소년 노동자는 점차 늘어나지만 이들은 고작해야 값싼 인력 정도로 인식될 뿐이다. 더군다나 최저임금, 근로기준법에 생소한 청소년은 고용주의 각종 횡포 앞에 속수무책이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4일 서울시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88만 원 세대조차 될 수 없는 노동자, 청소년-아르바이트 청소년의 임금과 노동인권 실태 보고'라는 주제로 실태 보고회를 갖고 청소년 노동자의 인권 침해 실상을 공개했다.
"수십 번을 전화해도 돈을 안 줬어요"
2008년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3770원이다(2007년 3480원). 그러나 청소년단체가 설문과 면접, 거리 상담을 통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상당수 청소년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청소년단체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전국 청소년 145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의 52.3%가 최저임금도 못 받았고, 시간당 3000원 미만을 받는 청소년도 15.1%나 됐다.
야간수당(근로기준법상 야간노동에 속하는 10시 이후의 노동은 보통 임금의 1.5배를 받는다)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같은 조사에 의하면 청소년의 54.4%가 야간노동수당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이들은 실수나 규칙 위반에 과도한 책임을 물고 임금에서 손해액만큼을 차감하는 일을 비일비재 겪는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고 있는 한 여고생도 그런 경험을 했다.
"미리 달력 스케줄에 내가 언제 안 된다는 걸 써놔야 하는데요, 제가 깜빡하고 시험이 있어서 안 되는 날을 안 써놓은 거에요. 다른 친구랑 바꾸면 됐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바꾸려면 10만 원을 내라면서 월급에서 까는 거에요. 또 실수할 때마다 도장을 찍어요. 근무를 변경할 땐 도장을 10개 받아요. 도장이 10개 쌓이면 하루 5시간 무봉으로 뛰는 거에요."
아예 임금을 받지 못하고 떼이는 경우도 있다. 뷔페에서 일한 여고생은 억울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3일 일했는데 9만 원 아래에요. 그 사람들이 장부에 (출근) 기록을 해요. 근데 하루치를 잃어버렸대요. 못 찾겠다고 돈 못 준다고, 제 것만 없어졌대요. 계속 안 줘서 전화를 했어요. 계좌번호를 불러 달래요. 안 들어와요. 전화를 또 하니까 또 불러 달래요. 그게 수십 번이었어요. 아예 못 받았어요. 받고는 싶은데 더럽고 치사해서. 올해 초 돈 받으러 또 갔었는데요 계좌번호를 불러 달래요. 아직도 못 받았어요."
"화장실 가는 것도, 잠시 앉아 쉬는 것도 눈치 보여요"
노동조건도 열악했다. 사업주는 청소년들을 마음껏 부려먹을 수 있는 노동력으로 보기 때문에 장시간 중노동을 강요했다. 특히 주유소나 패스트푸드점 등은 일의 강도에 비해 거의 헐값으로 청소년들을 혹사시키고 있었다. 현재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고 있는 한 고등학생이 일상을 전했다.
"주방에 의자 같은 것도 없고 테이블이나 쓰레기통 위에 앉았다가 매니저한테 걸리면 엄청 욕을 먹어요. 일이 없다 하면 다른 일들을 막 시켜요. 어디를 닦아라, 청소해라. 절대 쉬는 시간 없이 일을 계속 시키거든요. 정말 힘들어요."
마음 편히 쉴 시간조차 없다는 것에 대해서 청소년들은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4시간 일한 경우 최소 30분 이상의 쉬는 시간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이를 지키는 사업주는 거의 없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학생들은 CCTV로 녹화돼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했고 대형 음식점에서 일하는 학생들은 손님 없을 때 잠깐 쉬는 것조차 많이 눈치를 봐야 했다.
청소년들은 일터에서 안전과 위생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했다.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한 청소년은 "고기를 굽는 프라이팬에 손이 닿아 화상을 많이 입는데도 안전장비 없이 비닐장갑 두 개를 겹쳐 끼고 만지라고 했다"고 말했다.
주유소에서 일했던 한 학생도 상황은 비슷했다. "휘발유 냄새가 워낙 심해 마스크를 써도 되냐고 물어봤는데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장갑을 끼고 주유를 하는 건데 안 쓰고 일할 때가 더 많았어요. 바쁠 때는 그냥 맨손으로 하는 거에요. 일 끝나고 가면요 손등이 다 벗겨져요."
욕설과 성희롱까지
청소년은 인격 모독과 폭력도 감수해야 했다. 나이가 어리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위에 있는 이들은 반말과 욕설 등의 언어 폭력을 자주 경험했다. 이들은 이런 모욕적인 대우를 받는 과정에서 심리적 위축감이나 수치심을 느꼈고, 성인이나 기성 사회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고 전했다. 한 고등학생이 결혼식 출장뷔페에서 일할 때 이런 경험을 했다.
"접시를 떨어뜨린 적이 있거든요. 매니저가 욕을 막 해요. 미쳤냐는 둥, 돌았냐는 둥, 그것도 고객들이 계시는 앞에서…. 되게 놀랐죠. 처음으로 일하는 건데…. 말투도 툭툭 쏘는 편이고요, 매니저 자체가 거칠고 험해요. 반말하고…."
폭력에 노출된 건 남자 청소년만이 아니었다. 주유소에서 일한 한 여고생은 직원으로부터 맞기까지 했다.
"기름 총 쏘다가 몇 방울 흘렸어요. 호스 안에 남아있는 걸 털다가. 근데 차가 가자마자 직원이 발로 허리를 차 가지고…. 진짜 아팠어요. 파스 붙이고 일했어요. 제가 절뚝거리고 다니면 사장님은 오히려 저를 혼내는 거에요."
편의점에서 일하는 한 여고생은 "시간이 지나서 폐기된 삼각김밥 하나를 밥으로 주더라"며 "아예 주지 말든가 주려면 든든하게 배가 채워지게끔 줘야 하는데, 인간적으로 정말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이들은 성폭력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숯불고기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여학생은 사장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하기도 했다.
"(사장님이) 자연스러운 스킨십 같은 거, 딸 같이 여겨져서 그러는 거라고 하면서 팔 같은 데 만지고 허리 감싸고, 처음에는 얼어가지고 말도 못하다가 짜증나니까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계속…. 술 먹고 껴안기도 했어요. 옷 갈아입는 데가 따로 있어요. 거기 들어와서…."
최저임금 현실화와 노동부의 관리·감독 개선이 필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설 민주노무법인의 이수정 노무사는 "아르바이트 청소년의 노동인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의 현실화와 노동부의 실질적인 관리감독이 우선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적은 임금 때문에 청소년의 장시간 노동, 중노동의 구조가 양산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또 그는 청소년들이 노동강도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으며 혹사당하는 측면이 있고 어른과 똑같이 일하고도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부실한 관리 감독 실태도 개선될 부분으로 지적됐다. 지난 1월 2일부터 2월 1일까지 실시된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이 4%에 불과한 것으로 나왔다. 이는 청소년 단체의 조사를 토대로 한 50%와 비교해 크게 동떨어진 수치다.
이수정 노무사는 "노동부가 아르바이트생 등 노동자에 대한 조사 없이 사업주에 대한 형식적인 질의응답으로 근로감독을 대신하고 있다"며 "또 노동관계법 위반 사실에 대한 처벌이나 후속조치가 없어 노동부의 관리감독은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청소년 단체는 최저임금 심의위원회가 열리는 6월 한 달 동안 웹페이지(☞바로 가기)를 통해 '합리적인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서명을 진행하고 최저임금 위반 사례·노동법 위반 사업장을 접수받아 결과를 취합해 노동부에 진정 또는 고소·고발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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