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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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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프레시안-한국여성재단 공동캠페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여성적 상상력

미래학자들은 21세기를 가리켜 여성, 환경, 문화의 시대라 하였다. 이 세 가지는 근대적 권력을 상징하던 남성, 인간, 정치 등과 분명한 대칭을 이루는 요소로서, 단순한 상징 수준이 아닌 패러다임의 시대적 변화를 의미한다. 물론 이때 실천적이라고 하는 것은 여성, 환경, 문화가 그 자체로 새로운 권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적, 환경적, 문화적인 특징들이 사회 곳곳에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지금은 이 두 패러다임이 각축하고 교차하며 새로운 변화를 천천히 이끌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문제에 대하여 우리가 여성적이고 문화적으로 대응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정치적 대변운동보다는 생활문화운동이 가까울 것이라 생각한다. 정치적 실천을 통하여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삶의 문화적 대안을 디자인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미래의 정치를 움직이는 큰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즉, 일상을 영위할 자조적(自助的)인 연대, 사회적 지원망과 지지망을 구축하려는 지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 지난 5월 개최된 제2회 "나의 아름다운 딸, 딸들에게 희망을!" 사진공모전에서 "시민으뜸상"을 수상한 작품 <미소천사> ⓒ한국여성재단

2008 여성희망캠페인은 2007년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빈곤과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여성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여론화하려던 전년과 달리 올해는 자조적 돌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자는데 더욱 초점을 맞추었다. 여성을 남성과 남성적 권력으로부터 억압당하는 피해자로만 규정한 기존의 관점으로부터 탈피하여, 대안적 실천의 새로운 주체로 인지하려고 노력하였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한국여성재단이 지난 5년간 추진해온 여성운동 지원사업이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단적으로 여성인권운동의 영역을 살펴보면, 2004~2005년에는 소외 여성들을 위한 성교육이 중심이었던 데 반해, 2007년에는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한 자기강화 교육 등 자존감 회복이 중요 이슈로 부상하였다. 또한 성교육의 방법도 전문가를 초청하는 특강이나 강독 중심에서 엄마들이 직접 참여하여 시연하는 인형극 등의 문화적 형태로 변화하였다. 그리고 참여하는 여성들 간의 지속적인 모임을 통하여 상호 지지하고 지원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여성 차별 조치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단호하게 저항하고 투쟁해야 하겠지만, 이러한 방법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실천적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결과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여성문제의 당사자인 여성들이 실천 주체로서 참여하는 데에 문화적 실천방식이 매우 유효하다는 현실도 작동한다.

한국여성재단은 빈곤 여성들이 절대적 또는 절망적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지역의 여성단체들과 함께 자금지원과 자조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자조모임은 보유하고 있는 자원(돈, 노동력 등)을 상호 유기적으로 교류하자는 취지도 있지만, 그보다는 같은 환경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가며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하는 데에 더 큰 뜻이 있다.

빈곤은 폭력의 유혹을 거부하기 어렵고 폭력에 노출되면 빈곤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사슬이 여성들을 더욱 비참한 상태로 만들 수 있으므로, 생계의 빈곤보다 자존감의 빈곤을 치유하는 것이 더 우선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치유의 실천은 개별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할 때 그 의미와 효과가 더욱 커진다.
▲ 올해 여성희망캠페인의 일환으로, 지난달 18일 마포의 베니건스 홍대점이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정을 초대하여 만찬을 베풀었다 ⓒ한국여성재단

올해 여성희망캠페인의 일환으로, 마포의 베니건스 홍대점이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정을 초대하여 만찬을 베풀었다. 필리핀, 베트남, 일본, 중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이주해온 여성들의 가족 약 60여명이 참여하였는데, 남편은 남편들끼리, 아내는 아내들끼리 서로 묻고 나누며 매우 즐거워하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서로 흩어져 있는 참가자들을 모아준 마포 건강가정지원센터의 실무자 또한 다 같이 모인 게 처음이라며 앞으로 네트워크 구축 사업을 열심히 하겠노라 하였다.

여성적이고 환경적이며 문화적인 것은 다양성과 개방성, 그리고 관계성을 핵심으로 한다. 다른 것에 우열을 매기지 않고 그 각각을 존중하며, 있는 그대로 열어놓고 서로 나누는 것, 쉬운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은 실천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나눔에서 그치지 않고 돌봄을 지향하자고 말하려 한다. 보듬고 품고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돌봄은 적극적인 관계성의 상징이다. 다른 것을 다르다고 인정하는 것에서 나아가 만나는 것, 열려 있는 공간에 들어가 어우러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여성이 가진 관계성의 고유한 특징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하려는 사회를 여성적 관점에서 상상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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