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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시민들의 유쾌한 불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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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시민들의 유쾌한 불복종

[현장]'재협상' 시위, '정권 퇴진' 운동으로 확산

5월 31일부터 6월 2일 새벽까지 2박 3일 동안 서울 도심에서는 수만 명의 시민들이 운집해 촛불문화제와 함께 대규모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번 시위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과거 단순 '쇠고기 재협상' 수준의 구호들이 부쩍 줄어든 반면, '이명박은 물러가라', '독재 타도' 등의 정권을 직접 겨냥한 구호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특히 1일 새벽 진압 과정에서 경찰의 군홧발에 여학생이 머리를 짓이기고 차이다 간신히 버스 밑으로 숨는 동영상과 물대포에 직사로 맞은 한 남학생이 그대로 꼬꾸라져 중상을 입는 영상이 TV와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지난 31~2일 새벽까지 기자가 목격한 모습들을 모아 봤다.
▲ 1일 밤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과 경찰 버스와 물대포. ⓒ프레시안

○…저긴 뭔데 경찰버스가 저렇게 많아요? 31일 밤 광화문 세종로가 뚫렸다. 그런데 차선의 절반만 뚫렸다. 동쪽 절반 차선은 수십 대의 경찰 버스와 병력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서쪽 차선을 걸으며 경복궁 쪽으로 향하던 한 40대 남성이 기자에게 물었다. "저긴 뭔데 경찰이 저렇게 많아요?", "미국 대사관입니다", "아 그래요." 그 남성은 관심없다는 듯 '청와대로 가자'며 달려갔다. 한나라당이나 일부 보수세력은 '반미'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으나, 이번에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미국에는 관심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오로지 목표는 청와대와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주차신공 경찰버스. 5월 31일 집회에 이어 1일 집회에서도 경찰은 광화문 일대에 경찰 버스를 겹겹이 세워 청와대로 향하는 시민들을 막았다. 이순신 동상 앞의 세종로 대로는 물론 골목골목마다 경찰 버스를 세우고 좁은 틈은 경찰 병력으로 틀어막았다. 이렇게 경찰 버스를 동원해 길을 막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 효순.미선 촛불시위 때부터. 이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던 한 운수노조원은 "예전엔 골목은 사람으로 막았는데, 이렇게 차를 가로로 집어넣는 걸 보면 경찰의 주차신공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고 한 마디.

○…불복종의 줄다리기 한 판. 광화문 네거리 이순신 동상 앞에 겹겹이 쌓여 있던 경찰 버스에 시민들이 밧줄을 매고 한 두 대 씩 끌어내기 시작했다. 경찰은 "경찰 버스 탈취는 중대한 불법행위"라고 거듭 경고했지만, 시민들은 불복종으로 맞섰다. 오히려 경찰 버스에 시민들이 자체 제작한 '불법주차'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인 뒤 "불법 주차 버스는 시민의 힘으로 견인한다"며 수백 명이 밧줄에 달라붙어 한 밤의 줄다리기를 펼쳤다. "의쌰, 의쌰" 구호와 함께 "이명박은, 물러가라"를 두 박자로 외치기도 했다. 시민들은 쇠고기 재협상 요구에 꿈쩍하지 않고 어설픈 사과 담화문을 내놓은 이명박 정권에 대해 '가두 시위' 정도는 불법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1일 새벽의 물대포와 의경의 군홧발에 여학생의 머리가 짓이겨지는 모습을 보고 난 뒤에는 경찰 버스는 그저 '불법주차 차량'일 뿐이었다.

○…망치 청년의 퇴출. 시민들은 스스로 불복종해도 된다고 판단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밀어붙였지만, 과도한 폭력행위는 스스로 단속하는 모습이었다. 한 흥분한 30대 남성이 망치를 구해와 경찰 버스의 유리창을 내리쳤다. 순간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그를 제지하며 경찰 버스에서 멀리 떨어지도록 했다. 경찰 진압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날 때도 시민들은 '비폭력'을 외쳤는데, 이는 경찰과 시민 모두를 향한 외침임이 분명했다. 경찰에게 욕설을 하는 시민들을 말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려왔다.

○…헬멧과 우비에 우산까지. 경찰의 '물대포 공격' 경고 방송이 시작되자 오히려 시민들이 경찰의 저지선으로 몰려들기도 했다. 우비를 꺼내 입은 사람들이 상당수였고, 인라인스케이트 때문에 구입했음직한 헬멧을 꺼내 쓰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산을 펴드는 모습은 보통 시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 다가오는 경찰 병력 앞에 맞서고 있는 시민들. ⓒ프레시안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사실 동네에서 깡패들과 싸움을 할 때도 가장 무서운 사람은 '죽을 각오로 덤벼드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시위 현장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들은 "날 잡아가라"며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이다. 2일 새벽 경찰들이 진압을 위해 대열을 정비하자 일부 시민들은 경찰들을 막겠다며 오히려 경찰 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경찰이 몰려들어올 때도 사람들은 스크럼을 짜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뒷 편으로 물러난 운동의 선수들. 이날 집회 현장에서는 이른바 '데모의 선수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들은 거의 대부분 경찰 저지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위 현장을 바라보는 입장이었다. "우리가 나설 경우 보수 언론의 공격 표적이 된다"는 이유도 있고, 현재의 시위 양상 자체가 이들 단체들이 주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렇게 하면 다치는데"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 방패 날을 세워 시민들을 가격하는 경찰. ⓒ프레시안

○…경찰의 무력 앞에서는. 이렇게 맞서던 시민들이었지만 경찰의 막강한 무력 앞에서는 비무장한 시민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경찰을 막아보겠다고 인근 보도 공사장의 펜스를 갖다 쳐봤지만 순식간에 무너졌고, 한 부부가 유모차로 경찰을 막아보겠다고 했지만 경찰은 순식간에 유모차를 돌아가 시민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경찰은 1단계로 광화문 네거리를 점령했고, 차례차례 밀고 나와 시민들을 인도로 밀어냈다. 전날 과잉진압 논란 때문에 이날은 물대포를 사용하거나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방패 날을 치켜 세워 시민들을 공격하는 경찰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이 과정에서 한 여대생이 이가 부러지고 코뼈가 주저 앉는 중상을 입어 병원 응급실로 급하게 후송되는 모습이 <프레시안> 기자의 눈에 목격됐다.
▲ '확성녀'의 탄생. ⓒ프레시안

○…'확성녀'의 탄생. 경찰 측 해산 경고 방송을 하는 이름 모를 여성 경찰에게 시민들은 '확성녀'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확성녀가 "여러분은 지금 불법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이명박이 불법이고, 우리는 헌법이다"라고 응수했고, 확성녀가 "여러분의 불법 도로점거로 인해 서울 시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하면 "우리가 시민이다"고 장단을 맞췄다. '확성녀'의 방송이 뜸해지면 시민들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합창한 뒤 확성녀에게 "노래해! 노래해!"를 외치며 "우리 동네 명가수 확성녀를 소개합니다.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 마저쉬고 하나 둘 셋 넷~"이라며 한껏 유쾌하게 흥을 돋웠다.

○…쓰레기 줍는 사람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집회 현장의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을 찾아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인근 편의점에서 "가능한 큰 쓰레기봉투를 주세요"라며 자비로 쓰레기봉투를 구입해 담배꽁초며 전단지며, 음식물 포장지까지 일일 줍고 다녔다. 한 여대생에게 '왜 쓰레기를 줍느냐'고 물으니, 그런 걸 왜 묻느냐는 식으로 "깨끗해지라고요"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누가 시킨 것이냐'고 물으니, "저기 보세요. 쓰레기 줍는 사람들 많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어떤 30대 여성은 결정적인 한 마디를 했다. "예전에 <조선일보>에 시위 뒤 쓰레기 천국이라는 기사 났었잖아요." 한 40대 남성은 경찰들을 향해 울분을 토하며 "이 자식들아. 나 꼬투리 하나 안 잡히려고 쓰레기 다 내 주머니에 넣어갖고 다녀"라며 자신의 주머니에서 각종 쓰레기를 꺼내 보여줬다. 결국 '쓰레기 줍는 시민들'의 배후는 <조선일보>?
▲ 쓰레기를 줍고 있는 시민. ⓒ프레시안

○…사회부 기자들 다 뻗었어. 이날 시위 현장에는 '정치부' 기자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정치부 기자들은 마주치면 "어, 당신도"하다가 이내 같은 말을 나눴다. "연일 밤샘 취재로 우리 사회부 애들 다 뻗었어." 통합민주당이 '장외투쟁'에 나서면서 민주당 출입기자들은 여의도를 벗어날 일이 더 많이 생기기도 했다.

○…무질서 속의 자발적인 시위 공동체. 보건의료단체들과 의사, 의대생 등으로 이뤄진 '의료진'이 현장을 누비며 쉴새없이 환자들을 보살피고, 서울광장에는 '베이스 캠프'가 마련돼 식수와 약간의 식료품 등 필요한 물품을 시민들에게 공급했다. 주머니 가득 먹을거리를 싸와서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격려하기도 했다. 기자도 취재를 하며 식사대용 3명에게서 곡물 스낵과 물 2통, 캔커피를 건네받았다. 자전거를 타고 나온 시민은 신문로와 종로를 오가며 경찰 병력의 이동 현황을 파악해 시민들에게 보고를 했고, '스타'가 된 예비군들은 때론 '경찰의 폭력을 못 막는다'고 욕을 먹었지만, 여전히 현장을 숨가쁘게 누비고 있었다. 행진의 진로를 정하는 사람도 없었다. 어떤 무리는 종로구청 앞에서 경찰들이 다 보는 데서 '종로 안내도'를 보고 진로의 방향에 대해 토론을 하기도 했다.
▲ ⓒ프레시안

○…57분 교통정보를 들으세요. 이렇게 단일한 '지도부' 없이 시민들 자발적으로 나오다 보니 현재 가두시위 행령이 어느 어느 곳에서 열리는지 파악하기 힘들 때가 있다. 그 때 시민들이 이용하는 것이 라디오의 '57분 교통정보.' 한 시민은 "시위 행령의 위치를 정확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57분만 되면 라디오를 켠다"고 말했다. DMB는 주로 언론의 보도 동향을 파악하는데 이용된다. 시위 도중 방송 뉴스 시간이 되면 DMB를 켜고 뉴스를 시청한 뒤, 시민들에게 유리한 보도가 나와 '엠비시'를 연호하기도 했고, 불리한 뉴스를 하는 방송사에 대해서는 "OOO랑은 인터뷰도 하지 마세요"라고 하거나 해당 방송사 카메라 기자를 향해 "어이 OOO! 보도 똑바로 하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2008만남의 광장. 시위 현장이 때 아닌 만남의 장이 되고 있다. 서로 약속을 하고 나온 것은 아닌데 우연히 만나거나 심지어 10년 넘게 만나지 않아 연락이 끊겼던 지인들을 이번 기회에 만나게 된 것.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쟤가 이런 데 나올 친구가 아닌데"라는 것. 한 대학원생은 "대학 동기를 경복궁 앞에서 만났는데, 경찰 저지선 앞 쪽에 있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 "경찰이 인도까지 올라와도 되느냐"고 항의하고 있는 영화배우 김부선 씨. ⓒ프레시안

○…시민 모두가 기자. 경찰이 소화기를 발사하거나 물대포를 쏠 때 어김없이 여기저기에서 시민들의 팔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손에는 휴대전화나 디지털카메라, 캠코더 등이 들려있고 연신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재치 있는 구호나 경찰 버스에 부착된 시민들의 '불법주차 스티커'를 지날 때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찍혀진 사진들은 광활한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에 옮겨진다. 또 '촛불문화제 후기'와 같이 시민들이 직접 발로 뛰어 보고 들은 훌륭한 '르포'들이 삽시간에 퍼진다. 심지어 '경찰 유치장 체험기'를 올려 인기를 얻은 블로거도 있다. 누군가 그랬다고 한다. '디지털 시위대에 아날로그 경찰.'
▲ ⓒ프레시안

▲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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