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새벽 거리로 나선 시민 4만여 명은 격정적이었다. 경찰이 시민을 어떻게 공격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기 때문이다. 시민이 본 경찰은 적이었다. 눈 앞에서 여성이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경찰은 인도에 선 시민을 강제로 연행했다. 물대포를 이용해 시민과 맞섰다. 소화기를 뿌렸다. 일부 경찰은 돌을 던지기도 했다. 연행 차량 안에서 시민을 발로 짓밟았다.
경찰의 대응에도 시민은 철수하지 않았다. 시민은 지난 일주일 간 새벽마다 경찰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알고 있었다. 경찰은 막다른 곳에 몰렸다.
인도에서 시위하는 시민 연행한 경찰
경찰의 대응 방식은 날마다 달라졌다. 시민의 참여가 늘고 언론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벽 시위 대처 강도를 약화시키던 경찰이었다. 하지만 시민이 청와대로 향하자 경찰은 다시 변했다.
29일 밤 8시 50분, 청운동사무소 앞에 14명 정도 되는 시민이 경찰에 에워싸여 있었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을 하나하나 끌어냈다.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한 여고생은 연행되는 도중 탈진과 격해진 감정에 못 이겨 실신했다. 한 여성은 "가만히 길에 앉아 있는 사람을 왜 잡아가냐"고 따졌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앞으로 인도에 있는 시민은 연행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게 경찰이었다. 이들이 다른 시민들보다 청와대에 가깝다는 것 외에는 특이한 점이 없었다. 경찰의 말과 행동은 전혀 달랐지만 현장에 있던 한 경찰 관계자는 "특별히 입장이 바뀐 점은 없다. 따로 할 말이 없다"고 전했다.
강제 연행이 끝나자 주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이 경찰에 강하게 항의했다. 한 시민은 "왜 죄 없는 애들을 끌고 가냐"고 따졌다. 경찰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다급해진 경찰, 소화기 동원해 시민 행진 막아
청와대로 향하는 시민 역시 경찰과 대치해야 했다. 안국사거리에서 삼청동으로 들어가는 길, 경복궁 돌담을 따라 청와대로 향하는 길, 경복궁역에서 효자동으로 들어가는 길은 모두 막혀있었다.
이날 총 1만1000여 명의 경찰이 청와대 주변을 지켰다. 촛불집회 사상 최대 규모다.
엄청난 수의 경찰이 이중삼중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청와대로 가서 대통령에게 직접 얘기하자'는 시민의 목적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듯 보였다.
초등학교 교사인 정모 씨(34)는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볼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의 대응 방식에 대해 그는 "분명히 과잉 대응"이라며 "지금 진압을 시도한다고 시민을 막을 시기가 이미 지나버렸다"고 말했다.
경찰은 전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경찰이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일부 흥분한 시민이 경찰 차량 위로 올라가 "독재 타도"를 외쳤다.
밤 11시 25분경, 경찰은 소화기를 사용했다. 앞에서 경찰과 대치중이던 시민들은 얼굴 전체에 새하얀 소화기 분말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더 많은 시민이 차량 위로 올라섰다. 총 7명 정도 되는 시민이 경찰차량을 밟고 "이명박 퇴진"을 외쳤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나온 한 상임활동가는 "경찰이 막는다고 물러설 우리가 아니다"며 "버스 밑으로 기어서라도 청와대에 갈 것"이라고 밝혔다.
"수도세가 아깝다"
시민과 경찰이 가장 격렬하게 대치한 곳은 청와대 정면으로 난 길이었다. 경찰은 한 시간이 넘게 물대포를 사용했다. 차량 위에서 정부를 비판하던 한 시민은 물대포를 정면에서 맞아 기절했다. 오전 4시경 시민들은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은 고교생이 실명 위기다"고 전했다.
물대포가 주로 노리는 목표는 대학생들이 든 깃발이었다. 대학생들도 지지 않기 위해 깃발을 더 높이 들었다.
충남대생들이 물대포에 저항하며 깃발을 든 채 경찰 차량에 더 가까이 이동하자 시민들은 "충남대"를 외치며 환호했다.
자리에 모인 대부분이 난생 처음 물대포를 맞은 사람들이었다. 물대포는 경찰에 일말의 희망을 가졌던 시민들을 더 분노하게 만들었다.
고려대 문과대 2학년인 강태경 씨는 "대통령 편인 경찰에 맞는 것 정도는 각오하고 나왔다"며 "이런다고 물러날 우리가 아니다"고 했다. 주위에 있던 대학생들은 "춥다. 차라리 온수를 뿌려라"고 외쳤다. 다른 한 편에서는 "수도세가 아깝다"는 구호가 들렸다.
법학을 전공하는 최종연(22) 씨는 "물대포를 쏘는 경찰을 보며 '경찰이 시민을 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왜 시민들이 이 새벽까지 거리에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지 생각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 씨의 경찰에 대한 분노는 매우 컸다. 그는 "시청 앞 광장에서 경찰이 유인 작전으로 시민 118명을 연행하는 과정을 생생히 지켜봤다"며 "남대문 경찰서장이 '기자들은 다치니 나가라'고 말했을 때 경찰이 시민이 다치는 것은 전혀 상관하지 않음을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날 거리 시위는 매우 과격했다. 젊은 대학생이 많아서인지 경찰을 끌어내려는 시도가 잦았다. 경찰의 방패와 헬멧이 시민 사이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경찰은 시민들을 닥치는대로 연행했다. 현장을 생중계하던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도 오전 4시 50분경 경찰에 끌려갔다. 진 교수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현재 통화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진 교수와 같이 인터넷방송을 진행한 조대희 씨는 "진 교수가 경찰과 시민이 대치하던 곳에서 방송하던 도중 마이크를 빼앗기고 20여 명과 같이 연행됐다"며 "진 교수 증언에 따르면 경찰이 이동 차량에서 시민을 발로 짓밟는 등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연행자 중 한 명은 크게 다쳤다고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경찰의 강력한 대응이 시민들을 해산시킬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자리에 모인 모든 시민은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의 강경한 대응은 오히려 시민들을 더 자극할 뿐이었다.
극도로 예민해진 시민들은 경찰 차량을 뒤집기 위해 이리저리 흔들었다. 차량 안에서 채증을 하는 경찰을 막기 위해 시민들은 검은색 락카로 경찰차를 도색해버렸다.
갖가지 얘기가 오갔다. 한 시민은 흥분한 채 깨진 기왓장을 들고 "경찰이 던진 기왓장에 사람이 크게 다쳤다"고 외쳤다. 그는 "경찰 차량 주위에 있던 한 대학생이 경찰이 던진 기왓장에 맞아 눈 밑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인터넷방송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여성의 모습을 생생하게 중계했다.
시민들이 외치는 구호는 더 이상 "고시 철회" 따위가 아니었다. 시민들은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시민들에게 경찰은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할 대통령을 보호하는 '적'에 불과했다. 강경 대응으로 경찰과 이명박 대통령은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됐다.
경희대에서 동료 학생들과 같이 나온 이은혜(23·언론정보학과 4학년) 씨는 "살수차가 동원되는 것을 보고 진심으로 대통령을 미워하게 됐다"며 "이제는 타협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아기를 데리고 나온 김병석 씨(37)와 노은영 씨(33)는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경찰의 태도를 보고 '국민을 섬기겠다'던 대통령의 말이 새빨간 거짓말임을 알았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자리에 있는 한 우리 아이들에게 밝은 미래란 없음을 느꼈다"고 밝혔다.
오전 4시 30분, 경찰은 다시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물이 떨어진 경찰은 소방차까지 동원했다. 강제 해산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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