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18대 국회의원 15명이 21일 청와대 앞에서 정부의 쇠고기 수입 추가협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초 10시에 시작하기로 예정됐던 기자회견은 경찰과 국회의원의 몸싸움 때문에 30분이 지나서 시작됐다. 기자회견 후 의원들은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국회의원·기자와 몸싸움하는 경찰
기자회견이 예정됐던 장소는 청와대 앞 분수대였다. 그러나 대기 중이던 경찰은 국회의원과 기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집회를 불허한다"며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해주기를 요구했다.
경찰이 집회를 막아서는 이유는 계속 바뀌었다. 처음에는 "주차가 어렵다"는 반응이었으나 나중에는 걸어서 진입하려는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과 이수호 비대위원 등에게도 제재를 가했다.
이 과정에서 취재를 위해 진입을 시도하던 기자, 국회의원의 보좌관들과 경찰의 몸싸움이 일어났다. 몸싸움 과정을 찍는 기자에게 한 경찰 간부는 "당신이 뭔데 남의 얼굴을 찍느냐"며 멱살잡이를 하기도 했다. 화가 난 최순영 의원이 "책임자가 누구냐"며 따졌으나 경찰은 무대응으로 일관하다 결국 진입을 허용했다.
국회의원들은 분수대 앞에 모인 후 경찰과 정부의 강경한 대응을 비판했다. 최순영 의원은 "분수대 앞에는 프리온 인자가 많은 사람만 들어오는 모양"이라며 경찰의 대응을 비꼬았다. 진보신당 노회찬 상임대표는 관광차 들른 외국인들을 바라보며 "여기는 외국인은 들어올 수 있고 국회의원은 못 들어오는 곳"이라고 말했다.
몸싸움 과정을 지켜본 민주노동당 박승흡 대변인도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전 "현역의원의 기자회견마저 막아서는 이명박 정권의 독선과 오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밝혔다.
경찰은 기자회견 동안에도 간섭을 이어갔다. "현수막은 세울 수 없다"는 방침을 밝히고 나서 현수막을 지지하는 나무를 빼고 국회의원들이 손으로 현수막을 든 채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 동안에도 사복을 입은 몇몇 사람들이 기자회견 과정을 세세히 메모했다.
야당 의원들 "기한 두지 않고 장외 농성 이어갈 것"
경찰과의 다툼으로 다소 늦어진 기자회견은 민주노동당, 통합민주당, 진보신당 등 야3당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됐다. 회견 참석자들은 전날 정부가 발표한 추가협의 내용이 기만적이었다고 규정하고 조속한 재협상을 촉구하고 나섰다.
통합민주당 김태홍 의원은 "정부가 국민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려고 했기 때문에 고등학생들까지 광화문에서 시위하고 있다"며 "야당 의원들이 범국민적인 협상 저지를 위해 모였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미국 검역 체계의 허술함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영국과 일본 등은 모든 소에 대해 도살 전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지만 미국은 2000마리 중 한 마리만 하는 실정"이라며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에 들어온다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진보신당 심상정 상임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은 쇠고기 문제를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빨리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쇠고기 협상에 대해 미국 축산협회에서는 멕시코와의 협정에 비해 '판타스틱(환상적)'하다고 했다"며 "그들의 기쁨을 위해 정부는 우리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축산업자에게 환상적인 대통령이 되지 말고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이 돼라"고 촉구했다.
심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도 비판했다. 그는 "국민을 이기려는 대통령은 독재자"라며 "성난 쇠고기 민심을 받들어 재협상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무소속 임종인 의원은 "이번 협상으로 세계 어느나라도 수입하지 않는 쇠고기를 우리나라만 수입하게 됐다"며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미국에서 사료용인데 이것을 국민에게 먹으라는 것이냐"고 따졌다. 임 의원은 "이번 쇠고기 협상을 통해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도 경제,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과 굴욕적인 협상을 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명박 정부가 국민 건강을 미국에 통째로 넘겨주고 앞으로 어떻게 5년을 유지할 지 걱정스럽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규탄을 하도 많이 해서 이제는 지칠 정도"라며 "정부가 귀를 열지 않고 있어 답답하다"고 한탄했다. 강 의원은 이번 협상에 대해 "우리 국민의 건강권과 검역 주권을 미국이 다 벗겨 갔고, 속옷을 벗긴 것도 모자라 이제는 가죽까지 벗겨 가려고 한다"고 비유했다.
강 의원은 "위험 물질이 들어와도 제재를 못하는 협상 내용을 국민에게 인정하라는 정부, 대통령, 장관이 어디 있나"며 "찾아와야할 게 15가지인데 2개만 찾아오겠다고 장담하고는 그마저도 시늉만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 상태에서 장관고시를 강행하려는 정부를 누가 용납하겠나"며 "야당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정부와 한나라당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야당 인사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한미 쇠고기 협상 책임자 경질 △광우병 쇠고기 전면 재협상을 전면으로 내걸고 농성에 들어갔다.
박승흡 대변인은 "앞으로 농성 수위는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해갈 것"이라며 "원내 대응과 원외 대응을 병행해간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고시를 강행한다면 더 많은 국회의원들이 동참할 것"이라며 "농성은 시한을 두지 않고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날 농성에는 천영세 대표, 강기갑 의원, 권영길 의원, 이영순 의원, 최순영 의원, 현애자 의원, 곽정숙, 홍희덕, 이정희 18대 국회의원 당선자, 정성희, 박승흡, 이수호, 윤금순 비대위원(이상 민주노동당)과 김재윤 의원, 김태홍 의원, 유승희 의원, 정청래 의원(이상 통합민주당), 노회찬, 심상정 상임대표, 이덕우, 박김영희 공동대표(이상 진보신당), 임종인 의원(무소속)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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