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추가 협상을 했다는 건지 알 수 없다. 한국과 미국 양측이 주고받은 서한 어디를 봐도 '수입 금지'라는 표현이 없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20일 미국산 쇠고기 추가 협상 결과를 발표하자마자, 곧바로 기자 회견을 자청한 시민·사회단체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마치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병하면 수입 중단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했던 정부의 태도가 거짓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수입 금지'라는 표현 없어…광우병 발생해도 수입 중단 못해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비판하는 전국의 1700여 개 시민·사회단체, 누리꾼 모임으로 구성된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옥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 회견을 통해 앞서 김종훈 본부장이 발표한 추가 협상 결과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한미 양측 대표가 주고받은 서한을 살펴보면 '수입 금지'라는 표현을 찾아볼 수 없다"며 "사실상 추가 협상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미국 대표의 서한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한국에 검역 주권이 있다는 것을 언급하는 수준"이라며 "이런 언급만으로는 절대로 수입 위생 조건에 효력을 미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김종훈 본부장도 분명히 인정했듯이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했을 때 수입을 중단하려면, 한국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 위험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한국 정부는 결코 수입을 중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송기호 변호사도 동감을 표시했다. 송 변호사는 "국제법상 양측 대표가 주고받은 서한이 효과를 가지려면 양측이 서명한 서한 모두에 동일한 표현이 들어있어야 한다"며 "그러나 미국 대표는 '한국 정부가 시민의 건강에 최우선권을 둔다', '한국 정부는 GATT, WTO가 보장한 검역 주권을 가지고 있다' 등의 일반적인 표현만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국제수역사무국(OIE)의 판단만을 따르도록 한 수입 위생 조건의 해당 조항을 삭제하지 않는 한, 이 서한만으로는 결코 한국 정부는 수입 중단과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가 언론·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특정 위험 물질 기준 정할 권리도 미국 측에 넘겨"
송기호 변호사는 "이번 양측 대표가 주고받은 서한 탓에 더 심각한 검역 주권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송기호 변호사는 "양측 대표가 주고받은 서한을 보면 '미국은 내수용, 수출용에 같은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SRM) 기준을 적용하고, 한국은 미국의 기준에 맞춰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검역을 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이것은 한국 정부가 정해야 할 특정 위험 물질 기준을 미국에 넘기려는 시도"라고 지정했다.
송 변호사는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타이 등 전 세계는 자기만의 특정 위험 물질 기준을 가지고 있다"며 "그런데 양측 대표가 주고받은 이 서한 때문에 이제 한국 정부는 미국의 특정 위험 물질 기준에 맞춰서 검역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미국이 특정 위험 물질 기존을 대폭 완화하면 한국은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베트남, 타이, 타이완보다도 낮은 기준…재협상해야"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도 '추가 협상' 운운한 정부의 발표를 강하게 성토했다. 그는 "김종훈 본부장이 발표한 오늘 추가 협상 결과를 결코 인정할 수 없다"며 "양측 대표가 각자의 입장을 확인한 수준의 서한을 놓고 추가 협상 운운한 이명박 정부에게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상표 국장은 "일본, 베트남, 타이, 타이완 심지어 멕시코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모든 연령에서 특정 위험 물질을 제거하도록 돼 있다"며 "30개월 이하의 특정 위험 물질과, 더 나아가 광우병 감염 가능성이 큰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 국장은 "미국 측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한 지난 4월 18일의 수입 위생 조건의 핵심 문제를 그대로 놓아둔 채, 몇몇 문구를 수정하는 정도로 국민 여론을 호도하려 든다면 국민의 분노는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 국장은 "정부는 미국 측에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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