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코카콜라 게이트>(이희정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등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탐사 보도 전문 기자 윌리엄 레이몽이 쓴 <독소>(이희정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는 이런 자신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조목조목 반박한다. 레이몽이 보기에 쇠고기를 비롯한 미국산 먹을거리는 '죽음을 부르는' 독소와 다름없다.
'단백질 수프'의 실체
최근 정부가 미국의 새로운 동물 사료 조치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쇠고기 협상을 타결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매번 언론에 오르내리는 이 동물 사료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레이몽은 동물 사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사실을 가감 없이 전달한다.
동물 사료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면 우선 '랜더링(rendering)'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랜더링은 "가축을 도축하고 남은 부산물에 ??가해 지방, 단백질 등 유용한 물질을 회수하는 과정"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의 축산 현장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재처리하는 과정이다.
랜더링은 크게 두 단계를 거친다. 우선 거대한 톱니바퀴가 설치된 커다란 통 속에 가축의 부산물을 들이부어 분쇄한다. 이렇게 분쇄한 혼합물을 135도에서 1시간 정도 끓이면 표면 위로 지방 덩어리가 떠오른다. 레이몽은 이렇게 말한다. "이 지방 덩어리는 립스틱, 데오드란트, 비누 등의 원료로 소중히 쓰인다."
지방을 제거하면 랜더링의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된다. 수프처럼 된 나머지 부분은 건조 후, 다시 분쇄된다. 최종적으로 남은 회색 가루가 바로 단백질이 풍부한 동물 사료다. 이 동물 사료야말로 살코기 사이에 박힌 지방을 일컫는 이른바 '마블링(marbling)'이 만들어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물론, 초식동물을 육식동물로 만든 결과는 광우병의 확산으로 나타났다.
쓰레기 중의 쓰레기, 동물 사료
이 정도 사실은 다 안다고? 레이몽의 폭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단백질 수프' 속에는 가축의 부산물만 들어가는 게 아니다. 그의 증언을 직접 들어보자.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감자를 튀기고 남은 기름이나 음식 찌꺼기 등 지방이 들어간다. 슈퍼마켓에서 팔다 남은 유통기한이 지난 고기도 들어간다. 작업을 빨리 해야 하는데 일손이 부족해서, 직원은 포장이나 스티로폼 그릇도 제거하지 않은 채 분쇄기에 그대로 집어넣는다. (…) 초록색 비닐봉투도 던져진다. 그 안에는 안락사한 개와 고양이의 사체가 들어 있다."
"(죽은) 도로에서 차에 깔려 죽은 여러 종류의 동물 사체까지 넣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마지막 '양념'으로 가금류 퇴비가 있다. 10년 전부터 닭 사육장 바닥에 쌓여 있는 배설물과 깃털까지 모아서 '랜더링'에 사용한다. 사육하는 닭 83%가 식중독균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이는 매우 위험하다."
"빼먹은 것이 있다. 수의사는 동물을 안락사할 때 펜토바르비탈나트륨을 주사하는데, 이 약물은 열을 가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또 (애완)동물 사체 중 대부분은 목걸이형 벼룩, 기생충 구제약을 건채 들어온다. 이 살충제 성분 역시 열을 가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가금류 퇴비, 돼지·소의 내장에서 발견되는 호르몬, 항생제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사료가 쓰이는 이유는 뻔하다. 이것은 1톤(t)당 가격이 45달러로 같은 양의 알팔파와 같은 곡물 사료와 비교했을 때 3분의 1 수준이다. 또 도축업자는 이런 랜더링을 통해서 매년 24억 달러에 가까운 매출액을 올린다. 동물 사료 덕에 그들은 주머니에 돈을 채운다. 레이몽의 비유를 빌리자면 소비자는 배 안에 독소를 채운다.
미국산 곱창…치명적 세균의 '온상'
이번 쇠고기 협상으로 미국산 쇠고기의 부산물 중 소장이 수입된다. 우리나라 사람이 즐겨먹는 바로 곱창이다. 그러나 소장의 끝 부분(이른바 '회장원회부')은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이다. 많은 전문가는 이 부분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소장 자체를 수입 금지하라고 촉구해 왔다.
이렇게 불안한 상황에서 레이몽은 한 가지 잊고 있었던 사실을 알려준다. 미국의 소는 동물 사료를 섞어 단백질을 보충한 옥수수 사료로 살을 찌운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 사료를 먹였을 때, 소화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단백질이 섞인 옥수수 사료의 일부는 소화되지 않은 채 소장에 남는다. 레이몽은 이렇게 설명한다.
"소들의 위는 (단백질이 섞인) 곡물을 소화하기 부적합하므로 일부가 소화되지 않은 채 소장에 남는다. 소장에 남은 옥수수는 발효하여 장내 미생물을 '약산성의 걸쭉한 액체'로 변질시킨다. 이는 대장균 O157:H7이 증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 미국 농무부는 1998년 이 대장균에 감염된 소의 수가 5%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대장균 O157:H7은 독소를 분비해 신장, 뇌, 장 세포를 파괴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세균이다. 특히 어린이와 같은 노약자가 이 세균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정 때문에 미국은 2007년 9월 8개 주에서 (햄버거를 먹고) 이 대장균에 감염된 이들이 나타나자 1000만㎏의 햄버거용 쇠고기를 회수했다.
각성의 순간이 왔다
광우병, 대장균 O157:H7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동물 사료를 금지하고 소의 본성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소가 광우병 병원체를 옮기고, 대장균 O157:H7의 배양 장소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축산업계는 절대로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레이몽이 정확히 지적했듯이 그들은 "현재의 상태와 수입을 유지하려는" 욕망을 결코 꺾지 못한다. 그리고 그 피해를 국민이 감수한 결과는 치명적이다. 레이몽은 미국의 근간을 뒤흔드는 비만의 확산에서 페스트, 에이즈에 버금가는 신종 전염병의 탄생을 본다. 한국은 바로 이런 미국의 길을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레이몽은 더 늦기 전에 각성을 촉구한다. 이번 미국산 쇠고기를 둘러싼 논란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지금 각성의 순간에 들어선 것이다.
"쓰레기 음식이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 우선 우리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소비자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우리는 매일 먹는 세 끼 식사를 투표하듯 선택해야 한다. 그 투표에 세상이 독성물질로 가득 찰 것이냐 아니냐가 달려 있다. 우리는 환경, 건강, 윤리를 생각한 쪽에 표를 던져야 한다."
(미국인, 교포·유학생이 아무런 문제없이 먹고 있다고 반론하는 사람이 있을 듯하다. 불행하게도 미국인 대다수는 자신이 먹는 먹을거리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았겼다. 레이몽이 사는 텍사스 주를 포함한 12개 주에서는 '식품비방법(Food Disparagement Laws)'으로 식품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봉쇄한다.
이런 사정 탓에 미국의 먹을거리에 관한 이 책은 정작 미국에서는 출간되지 못했다. 레이몽은 2007년 이 책을 프랑스에서 출간했다. ☞관련 기사 : "한국이 좇는 미국 먹을거리 시스템은 붕괴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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