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얼마나 모여야, 대통령이 항복할까요?"
이들이 왜 모였는지는 묻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여덟 번째 촛불 집회다.
집회가 회를 거듭할 때마다, 모인 이들의 수는 오르락내리락했다. 하지만 일렁이는 촛불에 담긴 간절한 기운은 늘 한결같았다. 곳곳에서 무전기를 든 사내들이 서성이는 풍경까지 매번 그대로였다. 이날 역시 청소년들의 집회 참여를 막으려는 경찰과 교육청 관계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집회는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는 대학생 윤성훈 씨는 "우리가 얼마나 모여야, 대통령이 항복할까요"라고, 오히려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수첩에 볼펜을 끼적이며 대답을 궁리하는 사이에, 옆을 지나던 청년이 대신 대답했다. "계속 모여야죠. 계속 퍼 나르고." 수만 명이 모이는 집회가 계속 열리고,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수입하려는 정부 정책의 부당성을 설명하는 글이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진다면, 이명박 대통령도 결국 고집을 꺾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들렸다.
"내가 이명박 탄핵 카페 주인이다. 나를 잡아가라"
이날 서울 광장에 모인 이들은 거의 한목소리로 촛불 집회 주동자를 사법처리 하겠다는 경찰의 방침을 성토했다.
집회가 열리는 내내, 서울광장으로 향하는 지하철 역 입구 앞에서는 한 대학생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이명박 탄핵투쟁 연대 카페 주인이다. 내가 탄핵 서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를 잡아가라!"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정말 카페 주인이에요?" 물론 아니다. 수많은 카페 회원 중 한 명일 뿐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다는 그는 광우병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는 집회에 참석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경부 운하 건설 계획이 영 못마땅해서, 이명박 대통령을 반대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한 게 그가 경험한 최초의 '정치 활동'이었다. 어쩐지 구호를 외치는 품새가 영 어색하다 싶었다.
"촛불이 참 아름다워요"…"친구들은 왜 안 와요?"…"취직 준비 하느라요"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한 30대 남성은 자신을 '매국노 저격수'라고 소개했다. 그는 할 말이 목에까지 차 있는 듯했다. 기자가 다가가자, 쉼 없이 말을 쏟아냈다. 광우병에 대해 공부를 꽤 한 모양이었다. '이런 이들을 가리켜, 누가 비과학적 선동에 넘어갔다 하는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그는 "OIE(국제수역사무국)는 자신들의 기준을 '참고만 하라'고 말했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OIE 기준을 꼭 지켜야만 하는 것처럼 설명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조선, 중앙, 동아 등은 지난해에는 국내 수입된 30개월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에서 뼈가 검출됐을 때 크게 문제 삼더니 정권이 바뀐 올해에는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까지 안전하다고 보도한다"며 보수 언론의 '말 바꾸기'를 질타했다. 또 그는 "정부에서 고시를 미룬다고 했지만 재협상 자체가 아니기 때문에 이는 임기응변적 접근 형태"라며 "국민이 밀어붙여 재협상으로 끝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대학 신입생 정맥 씨는 "촛불집회가 폭력 시위가 아니라서 나왔다"라고 했다. 2만여 개의 촛불이 그의 눈망울에서 일렁였다. 그는 "참 아름답다"라는 말을 거듭했다.
그래서 "이처럼 아름다운 집회에 왜 20대 청년들의 참여가 저조할까"라고 물었다. "취업 고민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느새 익숙해진 문답이었다.
"쇠고기 문제만 잘못? 천만에!"
386 세대 직장인인 김 모 씨는 이날 집회에 참석하려고 김포에서 왔다. 그는 "참 놀랐다"라는 말을 거듭했다. "설마" 했다는 게다. 그는 "한두 번의 집회로 열기가 식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처럼 열기가 계속 고조되는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라고 했다. 그가 이야기한 "많은 생각"은 주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관한 것이다. 그는 "친재벌, 친보수, 엘리트주의가 현 정부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단지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만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많았다. 역시 386세대 직장인인 정윤수 씨는 대뜸 "이번 정권에서 득을 보는 것은 병원뿐이죠"라고 말했다. 쇠고기 집회에서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기자에게 그는 영화 '식코' 이야기를 했다. "건강보험 민영화, 의료 산업화 정책만큼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아야 합니다. 병원과 보험회사만 배를 불리는 정책이에요"라고 또박또박 내뱉는 그의 표정 위로 열기가 번졌다.
그는 "지금은 우리가 촛불을 들지만, 미국식 의료 정책을 도입하면 횃불을 들 것"이라고 말했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에 대한 반발 여론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 전체로 번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강기갑 "국민이 든든하고, 자랑스럽다"
이날 집회의 절정을 장식한 것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었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시민들 사이에서 그는 이미 '스타'였다.
강 의원은 "당장 내일 쇠고기 수입조건이 고시되면 부산 항구에 쌓여 있는 쇠고기가 우리 식탁으로 올라올 판국이었다. 그런데 여러분의 힘으로 그걸 막았다"며 "든든하고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정부가 왜 고시를 연기했는지 확실히 밝히지 않았다"며 "재협상을 위해서 연기했다고 정부가 발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 안심하기에는 한참 이르다는 이야기다.
강 의원이 "온 국민의 80%가 반대하는 이야기를 못 듣는 청와대를 국민의 힘으로 바로잡자"고 외치는 순간, 일렁이던 촛불이 일제히 치솟으며 "강기갑"을 외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또 다른 '스타'는 미국에서 건너온 주부 이수연 씨였다. MBC 백분토론에 출연해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던 재미교포 이선영 씨와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한다고 했다. 조리 있는 언변으로 큰 호응을 얻었던 이 씨는 미국인 친구가 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 씨는 "미국 소의 사료로도 쓰지 않는 30개월 된 소를 어느 바보 나라가 수입하느냐는 이야기를 미국인 친구에게서 들었다"라며 "바보 같은 대통령 때문에 우리나라 전체가 국제적인 바보가 돼 버렸다"라고 말했다.
"재미로 집회 나왔다고요? 우린 진지합니다!"
이 씨의 이야기를 계속 깔깔대며 듣던 이성미(가명) 양은 고등학교 3학년이다. "선생님과 부모님 모르게 나왔다"라고 했다. 쇠고기 관련 촛불 집회 참석은 이번이 두 번째라고 했다. 이 양은 이날 집회가 마무리된 밤 10시 30분께까지 자리를 지켰다. 쌀쌀한 날씨 탓에 참가자들의 표정이 딱딱해져 있는 틈에, 슬쩍 물었다. "집회가 지루하지 않으냐"라고. 순간, 이 양의 표정에서 웃음이 가셨다.
"집회에 재미로 오는 게 아니잖아요. 정말 중요한 문제인데, 정치인들이 미국 눈치만 보느라 제대로 못하니까 시민들이 나서는 거잖아요"라는 대답이 나왔다. 약사가 꿈인 이 양은 "대학에 들어가면 책을 많이 읽고 싶다"라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열띤 대답이 돌아왔다. 이런 내용이다.
"신문을 보면, 우리가 광우병에 대해 잘 몰라서 오해한 거라고 해요. 과연 그런가요? 도대체 우리가 오해한 게 뭐죠? 오히려 광우병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기자들 아닌가요? 그들도 양심은 있을 텐데, 설마 알면서 그런 기사를 쓰기야 하겠어요. 정치인과 기자들이 너무 무식한 게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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