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사원으로 일하는 진성민 씨(31, 인천시 계양구)는 "물가 오른 걸 언제 느끼나"는 질문에 기름값 얘기부터 꺼냈다. 물론 영업을 할 때 주유비는 회사에서 지원하지만, 출퇴근길 35㎞정도는 자기 부담이다. 총 기름값에서 40% 정도는 자기 돈이 나가니, 한 달 월급에서 기름값으로만 20만원 가까이 쓰는 셈이다. 두 달 전에는 10만원 초반대였다.
물가 오르는 게 피부로 느껴지는 요즘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 아니라 잔인한 달'이라는 문구가 언론 지면을 매일같이 장식하고 있다. "안 그래도 빠듯한 살림에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맬 여유가 없다"는 아우성이 들린다.
기름값, 밥값…부담 높아지는 생활비
대부분 소비재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분식집 볶음밥 가격은 일반 식당에서 잘 차려져 나오는 찌개류와 큰 차이가 없다. 라면·과자류 등 먹거리의 가격이 모두 오르거나 양이 줄어들었다. 특히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민감하게 느낄 기름값과 밥값 지출이 늘었다.
"밥 사먹을 때 조금 부담스럽긴 해요. 당장 김밥 1000원 짜리가 없어졌잖아요? 뉴스보니 원재료비가 많이 올라서 그렇다던데…"
진 씨의 말 대로다. 유가 상승과 식품 원재료비 상승이 물가 상승의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기름값 비교사이트인 '오일프라이스와치'에 따르면, 9일 현재 휘발유값이 리터당 최고 2000원선을 넘었다. 제주 추자도 인양주유소의 휘발유값이 이틀 전 리터당 2005원까지 오른 것이다. 휘발유값이 2000원선을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휘발유값이 이렇게 비싸진 이유는 지속적인 국제유가 상승 때문이다.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는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했다. 우리나라의 주 수입유인 두바이유도 115달러선을 넘었다. "200달러를 연내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밀가루값 상승도 심상찮다. 당장 지난 달 21일, 동아제분의 가격 인상을 신호탄으로, 28일에는 국내 최대 제분업체인 CJ제일제당이 4개월만에 20% 가량 가격을 인상했다. 이 때문에 라면, 과자, 피자 등 간식 가격이 모조리 올랐다. 2000원으로 라면 세 봉지를 사기가 어려운 시절이 됐다.
금융업종에서 일하는 박모 씨(33, 서울시 동작구)는 "한 달 단위로 분식값이 오르다보니 요즘에는 차라리 비싼 돈 주고 밥을 사먹는 게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밝혔다.
그나마 진 씨와 박 씨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혼자 살기 때문에 개인 지출 관리가 어느 정도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필수적으로 지출해야만 하는 물품 가격이 큰 폭으로 뛰기 때문이다.
전모 씨(서울시 마포구, 36)는 이번 달 들어 3000원이 오른 분유값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일주일에 한 통 가량을 사용하니, 한 달로 따지면 1만 원 정도 지출이 늘어난 셈이다.
"O사 제품을 먹여요. 마트마다 가격 차이가 좀 있긴 한데, 이번 달에 보니 2만3000원 가량 하더라구요. 지난달에는 1만 9800원 주면 살 수 있었는데…. 그나마 저는 중간 정도 가격의 제품을 쓰는 거에요. 다른 엄마들은 저보다 더 비싼 것 많이 먹일걸요?"
4월 생산자물가지수 9.7% 상승…IMF이후 최고치
물가 상승 추세를 보여주는 지표가 발표됐다. 한국은행은 9일, 지난 달 생산자물가 지수가 작년 같은 달에 비해 9.7%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998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폭이다. 지난 달보다도 2.6% 오른 수치로, 역시 1998년 1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특히 음식료품 가격의 상승 폭이 컸다. 밀과 대두 등의 국제 거래가격 상승으로 된장은 22.2% 올랐고 밀가루가 4.2% 비싸졌다.
이와 관련, 이성태 한은 총재는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쪽을 보면) 최근에도 국제 원유가격이 계속 상승하는 데다 환율도 오르고 있어 상당 기간 동안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 상한선 3.5%를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물가 상승세 때문에 올해 물가상승률이 4%대 후반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물가 상승은 내수 경기에 부담을 주기 마련이다.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 성장률을 정부 전망보다 훨씬 낮은 4.5% 이하로 전망하게 된 요인이기도 하다.
정부의 예상 수준을 벗어난 물가 상승세 때문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전날 회의에서 연 5%인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했다. 9개월째 그대로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의 '성장 압박'이 계속됐음에도 지속되는 물가 상승세를 잡는 게 더 중요하다고 금통위가 판단한 셈이다.
"임금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오르고…내수 위축세 지속될 것"
문제는 부정적인 경기 전망이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수 위축 추세가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정부가 경제 성장을 이끌 것으로 기대하는 수출 전선에도 먹구름이 드리울 수 있다는 예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대우증권 이효근 경제금융팀장은 "물가 상승이 소비심리를 위축시켜 구매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며 "임금이 따라오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수 위축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또 "지금은 수출에 이상이 없지만 유가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세계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쳐 우리나라의 수출 경기도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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