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수산식품부를 비롯한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놓고도 정작 4월 쇠고기 협상에서는 입장을 180도 바꾼 사실이 확인됐다. 이것은 그간 '국제 기준', '과학 평가'를 들먹이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정당해온 정부 주장과 큰 차이가 있다.
이런 사실을 폭로한 강기갑 의원(민주노동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미국 의회 비준을 위해서 검역 주권을 포기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이명박 대통령 등을 비롯한 정부 차원의 압력이 있었을 의혹을 제기했다. 강 의원은 오는 7일 청문회에서 이런 내용을 적극적으로 공론화할 예정이다.
농림부 "美 쇠고기 불안하다"…정부 해명 대부분 거짓말
강기갑 의원은 5일 오전 한국 측 공무원, 전문가들이 2007년 9월, 10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평가한 결과를 폭로했다. 이 자료는 오는 7일 미국산 쇠고기 청문회를 앞두고 농림부가 강기갑 의원에게 제출한 것이다. 이 자료 내용을 검토해 보면, 그간 정부가 국민에게 얘기한 내용의 대부분은 거짓말이었다.
강기갑 의원은 지난 9월 11일~12일, 24일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 개정 협의 대비 전문가 회의 자료 및 회의 결과 문서'를 공개했다. 11인의 공무원, 전문가 등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농림부는 '미국산 쇠고기 관련 대응 방안 검토(안)'이라는 자료를 제출했다. 이 자료는 그간 미국산 쇠고기를 둘러싸고 제기된 여러 가지 문제점이 그대로 담겨있다.
2007년 9월 농림부, "美 사료 금지 조치 위험…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해야"
"미국의 사료 금지 조치는 특정 위험 물질을 (돼지, 닭과 같은) 비반추 동물의 사료로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지 않아 교차 오염이나 재순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광우병 발생을 위해서는 30개월령 미만 조건 요구가 필요하다."
"30개월 이상의 소에서 생산된 쇠고기의 안전성은 과학적으로 완전히 입증되지 못하였음"
"미국에서 추가 광우병(BSE) 발생 우려도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 30개월 미만 조건 준수 필요", "미국은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에 따라 위험이 높은 소를 놓고 검사하고 있으나, 정상 소는 검사하지 않아 실제 식용으로 공급되는 소를 검사에서 배제함으로써 식품안전을 도외시하고 있음."
최근 정부는 "미국의 사료 정책만으로도 충분히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며 30개월 이상의 쇠고기까지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또 정부는 "위험이 높은 소를 추려서 검사하고 있기 때문에 광우병 검사 체계도 신뢰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불과 수개월 전에 농림부가 발표한 자료는 이런 정부 해명이 거짓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 발표는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을 '광우병 위험 통제 국가'로 지정한 후 별도의 연구ㆍ조사를 통해 마련한 것이다. 또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이런 결론을 얻고자 2005년 5월 2005년 5월 이후 발표된 광우병 관련 논문 9편을 검토했고, "이런 연구 결과를 우리 측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도록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농림부 "한국인 인간광우병에 취약…모든 연령의 쇠고기에서 SRM 제거해야"
"특히 한국인의 '인간광우병(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브병, vCJD)' 감수성이 높은 유전적 특성을 고려한다면 국제수역사무국 기준과 관계없이 모든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SRM)'을 제거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국제수역사무국은 30개월령을 기준으로 특정 위험 물질을 구분하고 있으나, (미국의) 치아 감별 방법은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
"미국 작업장에서 특정 위험 물질인 '회장원위부'를 제대로 제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안전하게 내장 전체를 수입 금지해야 함. 대부분 냉동 상태로 수입되는 내장에 대하여 국내 검역 과정에서 육안 검사로 회장원위부가 제거되었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검사가 불가능하고, 바로 식용으로 사용되는 부위이기 때문에 전수 검사가 필요함."
이런 농림부의 설명도 최근 정부 해명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정부는 지난 2일 기자 회견에서 "한국인이 광우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졌다는 주장은 과장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정부는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대로라면 30개월 미만의 내장은 괜찮다"며 "미국 도축장에서 특정 위험 물질 회장원외부를 잘 제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해명 역시 불과 수개월 전의 설명으로 충분히 반박할 수 있다. 농림부는 "미국산 쇠고기의 치아 감별 방법은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고 분명히 적시했다. 또 농림부는 "수차례의 수입 위생 조건 위반 사례를 염두에 둘 때, 미국 측이 회장원외부를 제대로 제거할지도 의심스럽다가"고 대책 마련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30개월 미만 쇠고기 수입이 애초 입장…제3자의 압박 있었다"
이런 보고를 염두에 두고 당시 한국 측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에서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입하되, 모든 연령에서 광우병 위험이 큰 7개의 특정 위험 물질을 제거한다"고 결정했다. 이런 입장을 뒷받침하는 협상 전략도 마련했지만, 불과 수개월 만에 모든 게 '없었던 일'이 되었다.
이와 관련해 강기갑 의원은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은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할 검역 문제"라며 "그러나 정부는 지난 4월 협상에서 기존에 결정해둔 검역 원칙을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이것은 누군가의 정치적 판단 속에서 변경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강기갑 의원은 농림부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한 내용을 근거로 들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해서 이명박 정부가 검역 주권을 포기하라는 압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농림부가 아닌 제3자의 압박 없이는 이런 식의 졸속 협상은 납득이 안 된다는 것.
박홍수 전 농림부 장관도 이런 의견에 공감을 표시했다. 박 전 장관은 "아주 기초적인 것까지 포기했기 때문에 농림부 공무원이 아닌 다른 압력, 예를 들면 외교통상부 쪽의 압박이 있었을 것"이라며 "이번 청문회에서 이런 제3자의 개입이 있었다면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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