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목에서 온갖 예측이 춤춘다. 박 전 대표가 탈당할지도 모른다는 예측부터 당분간 잠행을 할 것이란 예측까지 나온다.
전혀 상반된 예측이 난무하는 이유는 하나다. 최고위원회의의 '결론 유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탈당 가능성을 점치는 쪽은 '결론 유보'를 '복당 불가'로 해석한다. 잠행 가능성을 내다보는 쪽에선 '결론 유보'를 그냥 그대로 '유보'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정리가 필요하다. 박근혜 전 대표의 심중이 아니라 어제 열린 최고위원회의부터 정리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복당 결론'을 묵살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최고위원회의는 박근혜 전 대표의 요구를 묵살하지 않았고 외면하지도 않았다.
박 전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 '결론'을 요구하면서 시한을 못 박지 않았다. 언제까지 결론을 내 달라고 명시적으로 요구한 적이 없다. 그러니까 7월 전당대회 때까지 결론을 유보하기로 한 최고위원회의의 '결론'은 박 전 대표의 요구를 묵살한 게 아니다.
외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누그러뜨렸다. 정형근·김학원 최고위원이 박 전 대표의 요구를 받아 복당문제를 거론했다. 공론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건 진전이다. '복당 불가'를 외치면서 최고위원회의에서 논의조차 하지 않던 이전 태도와 비교하면 많이 누그러진 것이다. 일단 눈길은 준 셈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알 길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진을 빼는 행보다. 맞붙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피하지도 않는 유격전식 행보를 놓음으로써 박 전 대표를 오도 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게 만들었다.
왜 그랬을까?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최고위원회의에 '결론'을 요구할 때 시한을 못 박았으면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실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 마디 한 마디를 꼼꼼히 챙기는 박 전 대표의 스타일이나, 요구사항의 엄중함에 견줘볼 때 시한을 설정하는 걸 깜빡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미필적 고의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퇴로를 열어둔 공세라고 보는 게 맞다.
박 전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의 '대답'을 익히 예상하고 있었다는 흔적도 발견된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 격인 유정복 의원이 전한 "일단 좀 지켜보자"는 박 전 대표의 말이나 "(최고위원회의에서) 논의됐다고 하는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라는 측근의 말이 그것이다.
박근혜의 목표는 복당이 아니라 복당 분위기 조성
이렇게 보면 박 전 대표의 목표가 뭔지 대충 헤아릴 만하다. 그의 목표는 '복당'이 아니다. '복당 분위기'가 목표다. 그의 대상은 한나라당이 아니다.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연대가 대상이다. 지금은 그렇다.
비례대표 공천비리 의혹으로 어수선한 친박세력의 분위기를 다 잡고 결속을 도모하는 데 복당처럼 유력한 카드는 없다. 그렇다고 당장 밀어붙여 관철시킬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친박세력에 보낼 수 있는 메시지는 하나다. 자신이 복당을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으니 동요하지 말고 당분간 진중히 있으라는 메시지다.
박 전 대표는 실패하지 않았다. 그가 친박세력을 향해 던지려 한 메시지는 속달로 전달됐고, 친박세력은 조용히 있다.
그렇다고 만사가 해결된 건 아니다. '당분간'이 문제다. 당분간은 '당분간'을 얘기할 수 있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친박세력을 향해 '당분간'의 시한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동요가 나타날 수 있다.
잘 보면 보인다. 박 전 대표는 이미 정했다. '당분간'의 시한을 7월 전당대회 때까지로 정했다. 그가 복당을 요구하면서 그 조건으로 7월 전당대회 불출마를 언급했다. 최고위원회의도 그에 맞춰 대답했다. 결론 유보 시한을 7월 전당대회 때까지로 잡았다. 그러니까 7월까지는 휴전 상태가 지속된다는 얘기다.
휴전 이후의 상황은 예측하기 힘들다. 다시 교전으로 돌입할지 아니면 종전으로 귀착될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현 지도부에 비해 전당대회에서 새로 뽑히는 지도부가 복당을 결정할 명분과 여지가 더 크다는 점에 주목하면 종전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그건 일면이다. 현 지도부나 새 지도부나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을 살펴야 하는 처지에선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종전 가능성을 쉽게 점칠 수 없다. 지도부 교체는 변수일 뿐 상수가 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결정적 요인은 당내 사정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어차피 상수일 수밖에 없는 이명박 대통령의 처지, 즉 국정수행 성과와 국민 지지도가 더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그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달라지고, 정치적 입지가 달라지면 세력 재편의 필요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 이 글은 김종배의 뉴스블로그 '토씨(www.tosee.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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