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성장 중시 전략이 안 그래도 취약한 우리나라 복지 수준을 후퇴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현실성 있는 복지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민 퍼주기'는 스톱!
29일 정부는 '2009년도 예산편성 지침'을 발표했다. 과거 노무현 정권 시절 늘어난 복지지출을 구조조정하고 민간의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한다는 게 골자다. 이에 따라 지난 정부의 '4% 후반 성장목표'를 '7% 성장능력을 갖춘 경제'로 바꾸고 양극화 해소 기조를 '성장촉진을 통한 분배개선'으로 전환한다.
이번 정책으로 그간 증가 추세를 보이던 복지지출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해졌다. 이명박 정부는 "성장을 촉진해 일자리를 늘리면 결과적으로 분배 문제가 해결된다"는 믿음을 앞으로 예산편성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복지 부문의 희생도 따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는 앞으로 복지 지출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복지 지출을 축소하겠다는 게 아니라 복지 전달 체계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겠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대신 성장 촉진을 위한 정부 투자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연구·개발(R&D) 투자는 오는 2012년까지 올해의 1.5배로 늘어난다. 감세를 통해 조세부담률을 낮추고 균형재정 유지를 목표로 재정 운용에 나선다는 계획도 세웠다. 지난 정부 때 복지 지출이 과도하게 늘어나 재정 안정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논리다.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와 금산분리 원칙 완화 등 대기업 관련 규제 완화, 법인세 인하, 종부세 인하 등 감세도 정부의 성장 중시 기조 하에서 나온 정책이다. 공기업 민영화와 의료 산업화 등도 같은 철학을 공유하는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직 갈 길이 먼데…
정부의 성장 중시 정책은 안 그래도 취약한 우리나라 복지 수준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성장 중시 전략이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관련 지출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9위로 최하위다(2008년 통계연보). 그나마 지난 5년 간 늘어난 복지예산을 기준으로 산정한 결과다. 복지 예산의 수술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당분간 우리나라가 최하위의 멍에를 벗어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와 관련, 지난 달 28일 열린 한국재정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최병호 선임연구위원과 남상호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국민부담 수준은 북구는 물론, 영미형 국가에 비해서도 낮은 편"이라며 "복지 재정 투입량을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여기서 북구형은 OECD 국가 중 국민부담이 많고 이에 따른 공공지출도 많은 형태를 말한다. 영미형은 상대적으로 부담이나 지출이 적은 국가다.
정부의 사회 복지 지출 비중이 적은만큼 국민의 생활 여건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삶의 질 수준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소득인정액(실제 소득+재산의 소득환산액)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장애인 비율이 28%가 넘는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장애인의 상대빈곤율은 40%에 달해 영국, 노르웨이는 물론 폴란드(19%)보다 높은 수준이다. 전형적인 후진국형 병인 결핵 발생률과 사망률은 OECD 국가 중 단연 1위다. 고령화와 여성의 사회적 참여 증가가 진행되는 추세와는 반대로 사회복지서비스업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정부의 걱정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재정 균형 수준은 비교적 안정된 편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수지는 3.0%로 6위, 정부부채 비율은 27.7%로 26위다. OECD 국가 중 상당히 양호한 재정 수준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재정균형 유지보다 시급한 게 복지비 지출 '확대'라는 점을 시사한다.
정부 나름의 대안은 물론 있다. 성장을 통해 분배를 이끈다는 것이다. "일자리 증가가 최고의 복지"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일자리의 '질'에 대한 해답이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 수가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서 단순히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분배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지난 4년 간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27%에서 37%대로 증가했다. 비정규직의 양산은 오히려 양극화를 더욱 강화시킬 뿐이다.
정부의 경제 철학은 결국 '현실 경제 문제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듯하다.
성장이 곧 복지라고?
대안연대회의 운영위원인 오건호 박사는 "지금은 절대적 복지 수준 자체가 선진국에 비해 낮아 '성장이냐 복지냐'를 논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며 "우리 경제 수준에 걸맞게 복지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 박사는 정부의 '성장이 곧 복지'라는 논리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성장 중시 논리는 노무현 정권 5년의 경험을 통해 이미 '실패'로 드러났는데, 현 정부가 '경기 불황'을 이유로 다시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성장의 성과가 사회 구성원의 복지 향상으로 이어지는 고리가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끊어진 상태"라며 "'잃어버린 고리'를 찾기 위해서는 부의 상위계층 집중 완화, 양질의 일자리 늘리기 등 '경제 민주화' 달성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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