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갑 "이명박, CEO 대통령의 한계 보인다"

이재오에겐 "나서지 마라", 박근혜에겐 "나서라"

정계를 떠난 '원조보수'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이 29일 자신의 지난 정치인생을 회고한 에세이 <굿바이 여의도>를 펴내며 이명박 대통령에게 "당선 후 지금까지 인수위 논란, 내각인사 혼란, 공천 실패 등을 거친 이 대통령을 보면 CEO 대통령의 한계를 보는 것 같다"며 쓴 소리를 남겼다.

"CEO와 대통령은 다르다"

김 의원은 이 책에서 "기업의 미덕이라는 것은 CEO의 생각대로 일사분란하게 밀어 붙여서 단기에 이윤을 창출하는 것인 반면, 한 나라의 대통령은 더디 가더라도 전 국민의 뜻을 받들어서 가야 한다"며 "단기에 성과를 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어 "성공한 CEO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혹독한 체질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며 "앞으로 걱정 반 기대 반"이라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에 과반을 줬지만, 내용면에서 측근 실세들(이재오, 이방호 등)을 낙마시킴으로써 원칙도 기준도 모호했던 이번 공천파동에 대해 이 대통령에게 엄중한 심판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며 공천 파동의 책임이 이 대통령에게 있음을 주장했다.

"민중당 출신 이재오는…"

'원조 보수'를 자처하는 김 의원은 '민중당 출신'의 이재오 의원에 대해 한나라당 당권이나 차기 대선후보 꿈을 접으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인간적으로 이재오 의원을 좋아한다"면서도 "이 대통령의 초실세인 이재오 의원이지만 과거 민중당 경력을 가진 그가 무리하게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의 대표나 차기대통령까지 구상을 한다고 하면 국민이 수용하기 어렵다"며 "이번 총선의 결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이 의원이 보다 겸허하게 이번 총선 결과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며 "성급하게 정치적 제스처를 또 다시 취하려 한다면 큰 낭패가 우려되고 이 대통령이 향후 정국을 풀어나가는 데에도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지난 1월 친박계 의원 모임에서 박근혜 전 대표와 악수를 나누고 있는 김용갑 의원. ⓒ연합뉴스

"아름다운 박근혜, 강해져야"

반면 박근혜계로 분류되는 김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서는 칭찬과 함께 애정어린 충고를 해 눈길을 끈다.

김 의원은 "해외 국감 차 함께 여행을 하게 됐는데, 모든 일정을 계획한대로 소화하자는 그녀의 주장에 따라갈 수밖에 없었고,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화장에서 머리 손질까지 마치려면 시간이 더 걸릴 텐데도 불구하고 항상 남보다 먼저 일정에 참석하는 성실성을 보여줬다"고 칭찬했다.

김 의원은 "향후 그녀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원칙을 위한 원칙이 아니라 파워를 발휘할 수 있는 원칙과 때로는 강한 승부수가 절실하다"며 "박근혜 그녀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이제는 좀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고 '행동'을 주문했다.

"6.29 선언은 항복이 아니라 전두환의 통치행위"

김 의원이 1987년 6,29 선언 당시를 회고한 부분도 눈에 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었던 김 의원은 "1987년 6.10 항쟁 등으로 긴박했던 시국 상황 속에서 시위대 한복판에서 최루탄 가스로 범벅이 되면서 도출한 시국 수습 방안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며 "6.29 선언은 6.10 항쟁에 항복한 것이 아니라 당시 비상시국을 해결하는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통치행위였다고 봤다"고 주장했다.

"다른 의원들 18대 총선에서 선거운동하고 있을 때 국회의원 12년 정치를 정리하는 글을 썼다"는 김 의원은 "이 책은 내가 원조 보수주의자로 살아온 이력을 증언하고, 왜 그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자를 자처하고 나섰는지에 대한 담담한 기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