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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300일', 돌아보니 또 눈물만…

[이랜드 파업 300일 현장] "다시 이 옷을 꺼내 입게 될 줄이야…"

방금 전까지 대학생의 몸짓을 보며 박수를 치고 웃었던 그였다. 그의 눈에서 순식간에 또로록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그저 "파업 300일을 맞는 마음이 어떠냐"고 물었을 뿐이었다. 그 질문에 천천히 말을 시작하던 그가 조용히 울었다.

지난 300일 동안 그는 몇 번이나 이렇게 울었을까?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한 손으로 닦아내면서 동시에 그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제가 이 티셔츠를 지난 겨울에 여름옷을 정리하면서 버렸거든요. 내년 여름에 이 옷을 또 입게 될까 싶어서요. 그런데 또 입게 됐네요."
▲지난해 여름, 홈에버 월드컵점 점거당시 입었던 파란색 반팔 티셔츠를 다시 꺼내 입었다. 19일 서울 홈에버 월드컵점에는 지난해 여름처럼 '파란 티셔츠'들이 그때처럼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랜드 비정규직의 파업이 이날로 302일째였다. ⓒ프레시안

19일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점 앞에서 만난 김미자 씨(가명, 47)는 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비정규직 차별과 해고를 중단하라'는 글귀가 가슴에 써 있는 그 옷은, 지난해 여름 이랜드일반노조가 바로 이 곳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했을 당시 '아줌마 부대'의 유니폼이었다.

이랜드 비정규직 파업의 300일 기념 문화제가 열린 이날 홈에버 월드컵점 앞에는 지난해 여름처럼 다시 파란색 티셔츠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설마 내년 여름에는 안 입어도 되겠지' 싶어 버렸던 반팔 티셔츠를 동료 조합원에게 빌려 입고 나오면서 김 씨는 "마음이 참 착잡했다"고 털어놨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것을 원했나요?"

다시 여름이 오고 있었다. 이날 낮 기온은 28도까지 올라갔다. 꼭 그때 그 여름처럼 300여 명의 사람들은 뜨거운 햇살 아래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다. 21일 만에 농성장에서 경찰에 의해 끌려나온 뒤 수도 없이 그랬던 것처럼, 매장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이 출입구와 저 출입구를 뛰어다녔다. 그때마다 이들을 가로막았던 경찰도, '차벽'도 여전했다.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김 씨는 되물었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것을 원했나요? 이렇게 오래도록 길 위에서 파업을 해도, 회사가 입는 타격이 심각해도 절대 들어줄 수 없을 만큼?"

지난해 7월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법 시행 전부터 비정규직의 계약해지와 외주화를 시작한 이랜드 그룹이었다. 이는 차별시정과 2년 고용 후 정규직 전환 규정을 피해가기 위해 쓴 '편법'이었다. 790명이 거리로 내몰렸다.

법 시행 하루 전날인 지난해 6월 31일, 아줌마 조합원들이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편법을 쓰지 말라'는 것이 요구사항이었다. 월드컵점의 농성이 시작되고 나서야 비로소 회사는 교섭장에 나왔다. 그렇게 시작된 파업이 지난 17일로 꼭 300일을 맞았다.

"너무 억울하고 분통해" 생긴 마음의 병
▲ "우리가 그렇게 많은 것은 원했나요? 이렇게 오래도록 길 위에서 파업을 해도, 회사가 입는 타격이 심각해도 절대 들어줄 수 없을 만큼?"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는 묻고 있었다. ⓒ프레시안

까르푸 시절부터 벌써 10년째 일해 온 곳이라고 했다. 비록 100만 원도 못 받았지만 그 10년의 세월보다 지난 300일이 "정말 너무 힘들었다"고 김 씨는 말했다. "무엇이 제일 힘들었냐"는 질문은 어리석은 것일까?

"여름에는 물대포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 그 물줄기에 맞아서 왼팔이 모두 시퍼렇게 멍이 든 적도 있었거든요. 겨울에는 너무 너무 추워서 집에 돌아가면 동상이 걸린 것처럼 얼굴과 손발이 가려웠고요."

몸의 병은 치료하면 낫는 것이었지만 김 씨는 "마음의 병까지 얻었다"고 덧붙였다. "너무 억울하고 분통한 게 쌓여서 사람이 점점 공격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고 했다.

더 현실적인 문제는 '먹고 사는 일'이었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 한 달에 140~160만 원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했다.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인 자식들 학원비가 없어서 모두 그만두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김 씨의 눈가에는 다시 눈물이 번졌다.

"마이너스 통장도 한계가 왔다"

결국 김 씨는 지난 17일, 복직했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하는 것도 이제 한계가 왔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남아 있는 동료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김 씨는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다들 먹고 사는 문제로 너무 힘들어서 많이들 복직했다"고 말했다. 김 씨가 일하는 홈에버 중동점의 50여 명 조합원도 거의 다 복직했다. 그나마 복직도 정규직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미 계약이 해지된 비정규직은 도리가 없었다. 생계 문제로 음식점 등 다른 일을 하면서 간간히 파업 집회에 참석하는 조합원들도 있다.

한창 대화를 나누던 저녁 7시, 김 씨의 중동점 동료들이 일을 끝내고 집회장을 찾았다. 김 씨를 보면서 다들 "신발 잃어버렸다며?" 한 마디씩 건넨다. 이랜드일반노조와 집회 참석자들은 이날 매장 진입을 시도하며 두 차례나 경찰과 대치했다. 2층에서 벌어진 격렬한 경찰과의 몸싸움 과정에서 신발 한 짝을 잃어버렸다 되찾았다고 했다.
▲ '이랜드 파업 300일 기념 집회'에 모인 이들은 매장 진입을 시도했다. 홈에버 월드컵점 2층에서 경찰과 참석자들이 30여 분 격렬한 실랑이를 벌였다. ⓒ프레시안

월드컵점으로 오는 길에 그 소식을 전해들은 동료들이 보자마자 "다친 덴 없냐"고 걱정하는 것이었다. 비록 월급은 100만 원도 못되는 저임금이긴 하지만 고용은 보장된 정규직들이 왜 아직도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것일까?

"처음에는 조합원이니까 잘 모르고 했죠.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계약이 해지되고 전환배치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요. 회사가 전 직원을 모아 놓고 '비정규직은 직원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괘씸하기도 했어요."

하다 보니 "격한 마음이 됐다"고 김 씨는 말했다. 차별시정, 18개월 이상 근무자의 고용보장 요구를 들어주기는커녕 회사는 지난해 연말 노조 간부 35명을 또 무더기로 징계해고했다.

노조를 상대로 회사와 입점주들이 200억 원 넘게 손해배상소송을 걸었다. 이미 선고된 벌금은 모두 6억 원이 넘었다. 국회 국정감사 출석을 거부한 박성수 이랜드 그룹 회장에게 법원이 내린 벌금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서 고작 1000만 원이었다.

"'민주노총 깃발 내리시라' 말하고 싶다"

김 씨는 "우리끼리 했으면 이미 진작에 쓰러졌다"고 말했다. 함께해준 사람들이 정말 고맙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이날도 조합원들 외에도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 홍희덕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당선자 등 200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 자리했다.

그러면서도 김 씨는 민주노총(위원장 이석행)에 대한 섭섭함을 털어놨다. 지난해 여름 이랜드 파업이 사회적 주목을 받던 때, "이랜드 투쟁을 승리하지 못하면 민주노총 깃발을 내리겠다"고 말했던 이석행 위원장이었다.

김 씨는 "그 말을 듣고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며 "그런데 지금은 '깃발 내리시라'고 말하고 싶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복귀한 조합원들의 가장 큰 원인이 생계비였어요. 우리가 먼저 해달란 것도 아니고 민주노총이 먼저 해준다고 하더니 10개월 동안 50만~150만 원씩 겨우 3번 받았습니다."

비록 일터로 돌아가 일하고는 있지만 김 씨는 "가슴 펴고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홈에버가 존재하는 한 계속 일할 사람들이 정당한 권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이잖아요. 내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는 날이 오면 더 당당하게 손님을 맞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말은 이날 홈에버 월드컵점 앞에 다시 모인, 수많은 '김 씨들'의 목소리기도 했다.
▲ "내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는 날이 오면 더 당당하게 손님을 맞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날 홈에버 월드컵점 앞에 다시 모인, 수많은 '김 씨들'의 목소리였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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