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주로 교체 선수로 투입됐지만 컵대회에서 2경기 연속골을 기록중이던 서동현은 이날 선발 출장해 전반 27분 관중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들었다. 서동현은 남궁웅이 오른쪽 측면에서 문전으로 패스한 볼을 다리를 꼬며 오른쪽 발뒤꿈치로 밀어 넣었다. '전반부터 뛰고 싶다' 는 의사를 표시했던 서동현을 믿고 이날 그에게 선발 출격 명령을 내렸던 수원의 차범근 감독이 흐뭇한 미소를 보내며 박수를 멈추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골이었다. 이 골로 서동현은 시즌 4골을 기록했고, 수원은 리그 경기를 포함해 6연승의 콧노래를 불렀다. 3-0의 완승을 거둔 수원은 올 시즌 K리그에서 유일한 무패팀이라는 명예로운 기록도 지킬 수 있었다.
서동현의 골은 수원의 상승세를 이어가는 골이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국내에서는 거의 보기 드문 고난이도의 라보나 킥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크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첼시의 조 콜이 잘 구사하는 라보나 킥은 탱고 댄서들의 아름다운 동작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 일반적으로 다리를 꼬아 슛을 할 때 라보나 킥이라는 표현을 쓴다. 예를 들어 오른 발을 앞으로 내밀고 체중을 싣고 있다가 볼이 오는 순간 왼 발을 써서 슛을 하는 경우다.
선수들이 골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지만 라보니 킥을 사용하는 이유는 자신이 장기로 쓰는 발로 슛을 할 수 없을 때가 경기 도중 종종 나타나기 때문이다. 분명 오른 발로 슛을 할 수밖에 없는 볼이지만 다리를 꼬아 자신이 잘 쓰는 왼 발로 슛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말이다. 또한 16일 서동현처럼 이미 볼이 오는 순간 자신의 몸의 위치가 좋지 않을 때 반대 발로 슛을 하는 경우다. 라보나 킥은 1970년대 이탈리아의 지오 로코텔리에 의해 세상에 처음 소개됐다. 당시에는 그저 크로스드 킥(crossed-kick)이라고 불렀지만, 그 뒤 라보나 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크루이프 턴'과 '마르세유 턴'
1970년대 네덜란드 토털사커 혁명의 사령관이었던 요한 크루이프는 공을 자신의 두 다리 사이에 놓고 드리블하다 수비수가 붙으면 공을 뒤로 빼내며 180도로 방향을 전환해 수비수를 따돌리는 기술을 잘 사용했다. 이 기술은 그의 이름을 따 '크루이프 턴'이 됐다. 구소련의 세계적 무용수 루돌프 누레예프가 왠만한 발레리나보다 순간적인 움직임이 아름답다고 극찬했던 크루이프는 이같은 유연한 몸놀림으로 상대 수비의 중심을 자주 뺏었다.
'크루이프 턴'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드리블 능력도 뛰어 났지만 드리블 하다 잠시 멈춘 뒤 다음 동작에서 수비수를 '바보'로 만드는 데 능했다. 그의 이런 동작은 쉼없는 폭발적인 드리블 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었다. 크루이프의 친정팀 아약스 암스테르담에서 빨래 등의 잡일을 했던 그의 어머니는 감독에게 자주 "내 아들을 한 번 써달라"고 부탁했었다. 크루이프는 훗날 어머니의 그런 열성에 보답하고자 "쉬지 않고 나만의 특별 드리블 훈련을 했다"고 술회했다. '크루이프 턴'도 그의 어머니의 눈물겨운 자식사랑의 산물이었다.
프랑스의 '아트 사커'를 완성한 지네딘 지단의 전매특허는 '마르세유 턴'이다. '크루이프 턴'이 180도 방향 전환이라면 '마르세유 턴'은 360도 전환이다. 한쪽 발로 공을 딛고 올라 몸을 360도 돌리면서 반대 발로 볼을 잡아 돌파하는 기술이다. 이민자들과 뜨내기들이 들끓고, 뒷골목 패거리 문화가 잘 발달된 프랑스의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 지단은 어린 시절부터 이런 동작을 익혔다. 대스타가 된 뒤 지단은 마르세유의 빈민촌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 했다. 그 기억들이 상대 선수에 의해 되살아날 때 지단은 참지 못했다. 2006 독일 월드컵 결승전에서 이탈리아 마테라치의 욕설에 박치기로 응수한 것에도 이런 이유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마르세유 턴' 에 대한 기억은 간직하고 싶어했다. 지단은 "마르세유 턴은 어릴 적부터 내가 즐겼던 축구 기술"이라고 자랑스러워 했다.
'엘라스티카'와 '무회전 프리킥'
헛다리 짚기 동작을 할 수 있는 선수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호나우지뉴의 '엘라스티카'를 할 수 있는 선수는 극히 드물다. '엘라스티카(Elastica)'는 헛다리 짚기 동작의 종합선물세트다. 헛다리 짚기를 2~3차례 하다가 발 바깥쪽으로 볼을 오른쪽으로 보낸다. 그 뒤 상대 수비수가 이 방향으로 이동할 때 호나우지뉴는 볼을 잽싸게 반대 방향으로 보내 돌파를 시도하는 방법이 '엘라스티카'다. 문자 그대로 '엘라스티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발목의 유연성이 필수적이다. 물론 호나우지뉴의 경우는 발목의 유연성은 선천적이다.
하지만 '외계인'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완벽한 기술의 구사하는 그의 비밀은 해변에 있다. 그는 바르셀로나 남쪽에 위치한 리조트 도시 카스텔데펠스에 산다. 그는 새로운 기술 개발을 항상 그의 집 근처에 있는 모래사장에서 실험한다. 다음 스텝을 내딛기도 힘들고 자칫 중심을 잃기 쉬운 모래사장에서 어렵게 익힌 기술은 잔디 구장에서는 식은 죽 먹기로 할 수 있다. 그가 브라질 파도타기 선수들이 하는 인사법을 골 세리머니로 사용하는 것에는 이런 뜻도 숨어있다.
지난 14일 새벽(한국시간) 맨유와 아스날과의 경기. 맨유가 1-1 상황에서 프리킥 기회를 얻었다. 하그리브스와 호날두 중 누가 프리킥을 찰지 모르는 상황. 하지만 아스날은 호날두 쪽에 더 비중을 뒀다. 벽을 쌓은 선수들은 호날두의 무회전 프리킥에 대비했다. 아스날의 옌스 레만 골키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작 프리킥을 찬 건 하그리브스. 하그리브스는 벽을 넘겨 휘어지는 클래식한 프리킥 골을 성공시켰다.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한 레만 골키퍼는 손 쓸 틈조차 없었다.
호날두의 무회전 프리킥은 스핀킥과는 정반대의 원리로 골대로 향한다. 무수히 많은 회전을 통해 휘어져 나가는 스핀킥에 대비하는 골키퍼에게 무회전 프리킥은 너무나 낯선 존재다. 호날두는 볼의 약간 밑 부분을 인스텝으로 찬다. 그리고 임팩트 순간 오른발을 살짝 틀어 볼의 회전을 최소화 시킨다. 거의 회전이 없이 날아가는 볼은 마지막 순간 불규칙한 궤적을 그린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스핀킥의 낙하지점을 파악하는 일은 경험많은 골키퍼라면 가능하지만 무회전 킥은 예측하기 힘들다. 스핀킥 처럼 각이 크지는 않지만 순간적으로 골키퍼의 중심을 뺏는 기술로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그가 무회전 프리킥의 원리를 깨달은 것은 1999년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뛸 때다. 호날두는 어느 날 유소년 감독이던 리오넬 폰테스에게 탁구 라켓을 들고와서 이런 얘기를 했다. "감독님, 이런 식으로 치니까 탁구공이 이렇게 움직이네요". 폰테스 감독에 따르면 공의 회전 원리를 탁구를 통해 터득한 호날두를 탁구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탁구공의 무게는 2.7 g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공을 치는 방식에 따라 탁구공의 궤적은 나비처럼 춤을 추듯 변화한다. 호날두의 무회전 프리킥도 이를 간과하지 않고 유심히 관찰해서 나온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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